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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보이는 세상 ㅣ 한무릎읽기
배정우 지음, 홍자혜 그림, 정영은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6년 5월
평점 :

한 번 더 세상을 믿어볼게
<믿는 만큼 보이는 세상>은 뉴질랜드에 사는 지금은 고등학생인 한국인 소년이 열네 살 때 중학교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첫 영문 동화이다. 음악으로 길을 안내하는 듯한 책표지를 보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예상이 되었고, 내 예상이 맞았다. 하지만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심정,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세상이 보이지 않는 8살 아이의 두려움 등을 표현해낸 부분에서는 놀랍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눈이 보인다면 더 쉽게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거예요.”
루이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이 보여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네게는 피아노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92쪽 중에서-]
루이스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후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아빠의 친구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프랭크 아저씨와 함께 살며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음악가였던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능과 프랭크 아저씨의 차근차근한 설명 덕분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곡은 빠르게 배워나간다. 하지만 수없이 연습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곡을 만나자 절망하는 루이스가 공감되면서도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던 건 나도 어린 시절에 손등을 맞아가며 6년이라는 시간동안 피아노를 배웠지만 결국엔 재능이 없다는 나만의 합리화로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은 있으나 비전이 없는 것이다.”
-헬렌 켈러
‘헬렌 켈러’의 명언을 인용한걸 보며 저자와 내가 존경하는 위인이 같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비전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뜨끔해지는 명언이다. 나도 유아기 때 ‘헬렌 켈러’를 삼중고로 만든 병으로 긴 시간동안 누워서 지내고 학교도 다른 아이들보다 2년 늦게 들어갔지만 나는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의 학교폭력으로 인해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마음의 눈과 귀를 감아버리고 닫아버리기 시작했다. 담임의 도움으로 조금씩 떠보고 열어보려 했지만 30대 중반인 지금도 온전히 열려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한 번 더 세상을 믿어보겠다는 마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