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뺏기 - 제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 살림 YA 시리즈
박하령 지음 / 살림Friends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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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와 배려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암 오케이(I'm OK)!"

지금에서야 말인데……. 그때 난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했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했다고 한들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어차피 정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랬어야 했다. 27]

 

[난 계속 분노할 것이고 억지로라도 분노에 풀무질을 해 내 중심을 잡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노는 건강하고 정당하다. 또다시 마음에도 없는 암 오케이!’를 외칠 수는 없다. 그래서 의자 뺏기를 해야 한다면 할 거다. 나도 이젠 앉고 싶으니까. 난 기필코 의자 뺏기의 승자가 될 것이다. 94]

 

첫 목차인 -아니다. 그렇지 않다!-에서 못된 애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있는 쌍둥이 동생 지오의 편에 서주지 않는 주인공 은오를 보고 뭐 이런 의리 없는 애가 있어.’ 싶었다. 하지만 늘 지오에게 밀리는 삶을 살아온 사연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 부산에 있는 외할머니네 집에 놀러갔다가 어른들의 욕심으로 은오는 그대로 외갓집에 남겨져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했다. ‘믿는다.’라는 엄마의 조정을 시작으로 양보를 강요당하는 삶이 계속 이어지는지 고등학생이 되어서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혼과 설상가상으로 엄마와 외삼촌의 죽음으로 인해 두 아이는 서울에서 외할머니와 살게 되지만 외할머니는 긴 시간을 함께한 은오가 아닌 지오의 편을 들곤 하고(지오는 건드려 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게 이유다.) 어른들이 벌여놓은 사업이 무너지자 둘을 대학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은오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취업준비를 할 것을 간접적으로 강요한다.(은오는 노래에 소질도 있고 음악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말이다.) “마이턴!”이라는 이젠 내 차례!”라는 은오의 큰 소리는 더 크게 우는 지오의 울음소리에 묻히기도 한다.

 

작년에 주민 센터에서 서류를 떼는 중에 창밖에서 들려오는 어느 할머니의 바보 같은 발언에 속으로 발끈한 적이 있다.

아이 착해, 언니가 양보하는 거야.”

바로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 저 한 마디 때문에 멋있는 장난감을, 내가 직접 긁어서 만들어낸 판박이를, 사탕 등을 양보하고도 보람이 아닌 뺏긴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특히 고마워 할 줄 모르는 두 사촌 남동생에게 엄마와 외할머니의 부추김으로 억지로 준 퍼즐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인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서 ! 네가 양보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라고 말하고 싶었다.

잠깐 중학교 2학년 때를 떠올려 본다면 수학시간에 담임이 시험문제 많이 틀린 아이들이(그중에 나도 있다.) 사온 초코파이와 음료의 개수를 세더니 초코파이가 하나 모자란다는 것이다. 양보가 몸에 베였던 나는 내가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담임은 서연이 음료수 하나 더 줄게.”라고 말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누가 수학선생 아니랄까봐 너가 한번 그러면 다른 애들은 너는 항상 그런 줄 알아 니꺼 챙겨야 돼.”라고 말하며 진짜로 음료수를 두 개 주었다.(실은 평소에 나를 괄시하던 담임이 처음으로 나를 챙겨주니까 살짝 좋아지려 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담임의 말이 맞았다. 애들이나 어른들이나 한번 양보 혹은 배려를 해주면 고마움보다는 본인들이 받는 걸 당연시하니까 말이다.

내 어린 시절에 양보와 배려를 강요했던 어른들 중에 제일 미운 사람은 외할머니와 엄마다. 책속의 은오는 믿는다는 엄마의 말에 조정 당했다면 나는 외할머니에게는 네가 누나니까.”로 엄마에게는 아이 착해.”로 조정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할머니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것 같고, 엄마는 본인의 엄마인 외할머니 편을 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두 사촌 남동생과 만나는 날이면 나에게만 양보를 강요하면서도 그 애들과 싸움이라도 나면 혼나는 쪽은 항상 나였다. 우리 집에서 큰애가 내 배를 콱 때려서 숨을 못 쉴 정도로 아파하는데도 엄마도, 외숙모도 그 애를 혼내주지 않았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여름휴가로 다 같이 강원도에 외증조할머니네 놀러갔을 때도 작은애가 빠른 속도로 나를 여러 번 있는 힘껏 때려도 아무도 말려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힘이 세다는 둥으로 좋은 말 뿐이었다. 어린마음에 폭발했는지 다음날 어른들과 나와 사촌동생 둘과 시장에 갔을 때 모르는 어른조차도 누나가 양보해야지.”라는 말에 바로 누나면 다에요!”를 시작으로 긴 문장들로 받아쳤었다.(엄마가 옆에 없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또 그 다음날이었던가? 그날이었던가? 나에게 싸움을 거는 작은애를 밀었을 때도 그 애가 어딘가에 부딪쳐 코피가 났다는 이유로 나만 혼났다.(그래도 코피를 낸 건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니 내가 했던 말을 금방 배워서는 미안하면 다야!”라며 대들더군.) 어른이 되어서도 명절날마다 손녀, 손자 셋이 모두 모일 때면 외할머니는 변함없이 그 애들에게 집중적으로 살갑게 대하고 누나가!”를 강조했다. 2년 전에 엄마에게 외할머니의 손녀, 손자 차별에 대한 불만을 몇 번을 털어놓았지만 엄마도 여전히 본인의 엄마편인지 할머니는 외숙모네 눈치 보느라 그런 거라며 할머니가 피아노 너만 사줬어!”라며 내 입막음을 했다. 그래서 30대 초반부터 시작된 내 의자 뺏기는 나도 외할머니에게 돈과 선물로만 잘하고 절대 살갑게 대하지 않는 것과 명절날마다 외숙모네 식구들이 왔다갔다는 엄마의 문자를 받고 뒤늦게 외할머니 댁에 가는 것이다. 사실 후자는 말이 의자 뺏기지 모두에게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외할머니는 손녀, 손자 가운데서 눈치 볼 필요 없고, 나는 차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아서 좋고, 엄마도 외할머니의 편을 들어야하는 부담감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좀 더 덧붙이자면 은오와 지오처럼 어린 시절에 두 사촌 남동생은 공부를 잘했고, 나는 거의 하위권이었기에 그 애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학벌도 비슷하고 작은애는 직장에 다니지만 큰애는 몇 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기에 프리랜서로 살면서도 나름 돈과 선물로 잘하는 나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림Friends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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