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붉은 치마 파랑새 사과문고 81
이규희 지음, 양상용 그림 / 파랑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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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종, 아니 친구가 증언하는 비운의 왕비이야기

 

<왕비의 붉은 치마>는 가상의 인물 다희가 몸종, 벗 그리고 궁녀로 등장해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윈 것을 시작으로 고종과 가례를 올린 지 몇 년 만에 태기가 왔지만 첫아기는 항문이 막힌 채 태어나 나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분노한 반란군들에게 쫓겨 도피하다 다시 궁궐로 돌아왔지만 40대 중반 나이에 일본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 비운의 왕비이야기를 들려주는 허구가 섞인 역사동화이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 누가 양반 딸이고 누가 머슴 딸인지 모르겠는걸?’

다희는 흘끗 자영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자갈밭에 널어놓은 자영의 진빨강 치마와 노랑 저고리를 입으면 자신이 주인집 딸 자영이 될 것만 같았다. 21]

비록 신분은 달랐지만 갓난쟁이 때부터 다희와 자영은 자매처럼 자라고 민 대감의 배려로 함께 글공부를 했지만 나고 자란 능말을 떠나 한양으로 가니 노비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엌을 드나들며 잔시중을 들어야했고, 명복도령을 마음에 담고부터는 자신과 자영의 처지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희도 어린아이이기에 당혜를 신는, 선녀가 내려온 듯한 고운 한복을 입는 자영이 부럽기만 하다. 그리고 문서에 있는 노비가 아니기에 더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천주학쟁이라는 게 알려지면 우리 모두 죽고 말 거예요. 그런데도 꼭 그 서양 귀신을 믿어야겠어요? 제발 저를 생각해서라도 그만두셔요! 102]

천주교 박해에 관해 찾아보았다. 흥선대원군은 처음에는 천주교를 받아들였지만 정치적 위기감을 느끼고부터 천주교인들을 잡아다가 학살했다고 한다. 자영이 왕비가 되자 궁녀가 되어 함께 궁궐로 들어간 다희의 부모도 천주교 신자였다. 옥사에 갇힌 부모님을 향해 창살을 붙잡고 서양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천주학 따윈 모른다고 하라고 울부짖었지만, 그들은 더 좋은 곳으로 간다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만큼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었던 건 걸까? 아니면 새로 믿게 된 신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거라 믿고 싶었던 걸까?

 

[다희는 가물가물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문지방을 넘어 엉금엉금 왕비를 향해 기어갔다. 마루 끝으로 간신히 기어 나오자 장안당과 곤령합 사이의 마당에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왕비가 보였다. 왕비와 다희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왕비는 슬픈 눈으로 다희를 보며 떠듬떠듬 말했다. 202]

을미사변 자료를 찾아본 중에 제일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할 시해방법은 왕비를 두세 번 칼로 찌르고 밖으로 끌고 나와서 옷을 모두 벗긴 후 일본낭인 20명이 돌아가면서 윤간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시신을 불에 태웠다는 거다. 자료를 읽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고 동화로 봐도 눈물이 핑 도는데 어린 시절부터 궁궐에 들어와서까지 분신처럼 붙어 다니던 다희, 주변에 있던 신하들과 궁녀 혹은 상궁들은 참혹한 살해현장을 직접 목격했으니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트라우마 속에서 살았을 것 같다.

 

나름대로 많은 자료를 찾아보니 명성황후가 아닌 왕비로 가장한 상궁이 대신 시해 당했다는 설도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의 후손인 나로서는 어느 설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신분을 떠나서 한 여성을 20명이라는 다수의 낭인들이 살해하고 증거인멸을 했다는 건 절대 용서받지 못할 만행이라는 건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명성황후와 흥선 대원군이 서로를 앙숙이 아닌 정치적 동반자로 여기고 합심했다면 을미사변이라는 역사적 수모는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파랑새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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