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양태자 지음 / 이랑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종교적 이기심으로 시작된 마녀사냥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를 모르던 때는 마녀하면 떠올랐던 건 아름다운 공주를 시샘하는 계모,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매부리코를 가진 늙은 여자(마귀 할머니) 정도였다. 중세유럽에 관한 관심이 생겨나고부터 마녀사냥이라는 끔찍한 역사를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을 보면서 종교적 이기심과 군중심리의 위험성이 절로 느껴졌다. 유럽의 왜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는 전통종교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려는 거다.) 점을 치거나 약초를 다루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붙였던 것을 시작으로 남편이 없는 여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주로 붙잡혀서 물 시험, 불 시험, 축성 받은 음식 시험 등의 황당한 시험과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재판관이 원하는 빗자루를 타고 날았다.’, ‘동물로 변할 수 있다.’, ‘마녀집회에 참가했다.’등의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거짓자백을 했지만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중세유럽 사람들은 상상력이 풍부했던 걸까?) 고문을 당하다 죽거나 사형만 당하는 게 아니라 재판비 라는 명목으로 재산까지 몰수당했다. 마녀혐의로 붙잡힌 사람들이 살길은 눈물 시험에 통과하는 것뿐이었다. 눈물을 펑펑 흘린다면 마녀가 아니라며 풀어줬으니까 말이다. 광기어린 어른들의 영향으로 마녀사냥은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퍼져 혼자 거리를 떠돌며 구걸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서라도 배불리 먹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마녀라고 주장하며 찾아온 아이도 마녀재판에 넘겨지는 순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단다.

 

[풀려날 것이라는 내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다. 이들은 다시 나를 사형집행인에게 보냈다. 내 옷을 전부 벗기고 털이란 털은 모두 깎은 뒤 다시 나를 고문대에 앉혔다. 나는 살기 위해 또 엉터리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죽여 마귀에게 바치려고 하다가 그 대신 말 한 마리를 죽였으며 교회에서 모신 성체를 땅에 묻었다고 했다. 이렇게 상상으로 짜낸 이야기로 거짓 자백을 했더니 이들은 흡족해하며 일단 나를 고문대에서 풀어 주더구나. 164]

마녀재판에 넘겨지고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덕망 높은 정치인이었다고 한다.) 옥졸을 매수해서 딸에게 보낸 1628724일 날짜가 적혀져있는 편지로 남녀노소 없이, 귀족도, 멀쩡한 사람도 마녀사냥을 피해가지 못하고 억울하게 희생되었음이 절대 허구가 아닌 중세유럽의 잔혹한 역사임을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는 주로 인터넷상에서 사건이 터지면 사이버수사대인양 신상을 털고 자신은 도덕적인 사람인양 악성댓글을 쓰며 몰아붙이는 행위들을 마녀사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현실에서도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마녀사냥은 존재한다고 본다. 학교생활을 예로 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따돌리거나 여러 아이들이 한 아이를 폭행하고 폭언을 퍼붓는 왕따라 불리는 집단 괴롭힘 역시 마녀사냥의 형태라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세상에 마녀가 정말 존재한다 해도 한 사람을 다수가 몰아붙이고 짓밟는 비겁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만큼 무섭지는 않을 것 같다.

 

 

-이랑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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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3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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