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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 괴물의 세계로 들어가다
안체 헤르덴 지음, 에파 쇠프만-다비도프 그림, 이상희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쿠르트, 잔드로, 틸다의 끈적끈적한 모험이야기
세계 최고의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조용한 아이 나 쿠르트, 머리카락 커튼 뒤에서만 근사한 말들이 튀어나오는 말더듬이 잔드로, 모든 길이가 똑같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공주처럼 옷을 입는 틸다. 이렇게 세 아이는 평소에 전혀 친하지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마치 사람사이는 아무도 모른다. 라는 말을 증명하듯…….) 이중에 사람들이 제일 피곤해하는 성격인 셈인 틸다의 예민함은 세상을 구하는 시작이었다고 본다. 쿠르트와 잔드로의 달라진 모습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도시락대신 빵이나 케이크를 사 온 반 아이들을 관찰하고 수상한 낌새를 제일 먼저 눈치 챘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한테 관심 없는 어른들만 남아 있는 건지도 몰라. 아이 갖기를 원치 않거나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말이야.”
“결국 모든 부모들이 사라진 거야.” 69쪽]
초등학교 시절 나도 “어른들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어른들은 너무해?”라는 생각을 종종했었다. 사사건건 잔소리하고 회초리를 드는 엄마와 주변어른들을 보며, 숙제를 너무 많이 내주고 매일같이 화만 내는 학교 선생님들을 보면서 말이다. [지난 목요일]에 나오는 아이들 역시 어른들이 없는 세상을 한 번씩은 생각해봤을 것 같다. 특히 수학 성적 D를 보면 아빠가 한바탕 난리를 칠거라며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이며 울던 요하네스!
정말 부모들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으니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집에서 나와서 판잣집을 짓고, 먹을 것들이 떨어지니 슈퍼나 빵집에서 훔쳐 먹기까지 하다가 결국에는 징그럽게 생긴 쥐 사나이가 주는 음식을 만족해하며 받아먹기까지 하니까 말이다.(‘아이들의 행복’이라는 마약이 들어있는 것도 모르고.)
[“어른들이 원했던 게 고작 놀이공원이라고요?”
잔드로가 물었다.
“쇼핑하고, 머리 손질하고, 신나게 기타 치는 걸 흉내 내고, 커피를 마시는 게 전부란 말이에요?”
“충격이지. 안 그러냐?” 236쪽]
혼자 슈퍼에 가다가 양서류들에게 납치당한 틸다를 구하기 위해 하수도로 내려갔다가 만난 두꺼비 노파가 주는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약물이 들어간 차를 마시다 정신이 몽롱해지기도하고 미끌미끌하고 끈적끈적한 게다가 꽥꽥꽥, 꿀꿀꿀, 삑삑 등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커다란 여러 양서류들을 뚫고 옷장, 나무 벤치, 샤워실 등 아이들이 필요할 만한 것들이 갖춰진 방에서 하룻밤 묵고서야 재회한 틸다와 다시 셋이 되어 마주친 난쟁이 교수를 꽁꽁 묶고 알아낸 것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는 즐거움이 아닌 즐거움을 즐기고 있는 어른들만 있는 세상이었다. 난쟁이 교수가 만든 ‘부모들의 행복’이라는 약물이 들어있는 수돗물 때문이었다.
부모들이 쇼핑, 카페, 머리손질을 원했던 거냐고 묻는 잔드로와 반대로 나는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부모들도 사람이기에 그런 소소한 즐거움들을 누리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니까. 쇼핑도 부모들은 본인들이 입을 옷 구입 보다 아이들에게 입힐 옷 구입의 비중이 더 크다. 단 하루가 아닌 몇 년을 자기만의 시간도 갖지 못하고 산다면 어른들 역시 ‘하루만 아이들이 없었으면.’이라는 생각을 해볼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결혼 안하기 잘했다. 생선 한 마리를 먹더라도 몇 년을 ‘엄마는 머리가 더 맛있단다.’라며 양보하는 삶. 뭔가 좀 끔찍하다.(실은 난 진짜 엄마가 생선머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어느 뚱뚱한 부인이 내 무릎에 가방을 올려놓았어. 옆자리가 비었다고 착각한 모양이야. 아무튼 우리 부모님은 카보 산 루카스로 이사를 갈 때도 날 데려가는 걸 잊어버렸어. 그때 난 결심했지.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헤쳐 나가겠다고. 유명한 사람이 되어 내가 당한 수모를 세상에 앙갚음하겠다고 말이야.” 241쪽]
난쟁이 교수와 나 쿠르트의 공통점은 키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점은 난쟁이 교수는 복수심을 갖고 부모들과 아이들의 삶을 뒤죽박죽 만들어놓았고, 쿠르트는 그런 난쟁이 교수의 행동에 잔뜩 화를 내는 정의로운 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점은 쿠르트에게는 먼 나라로 유물 발굴여행을 가서도 집에 남아있는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가 있었고, 난쟁이 교수의 부모들은 아들이 좀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없는 아이 취급을 하며 자신들의 삶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세상이 손가락질해도 부모들만큼은 어렸던 난쟁이 교수를 보듬고 보호해주었더라면 나쁜 목적으로 양서류, 쥐들을 변형하고, ‘아이들의 행복’, ‘어른들의 행복’이라는 마약은 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크레용하우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