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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머리 아저씨와 이상한 약국 ㅣ 도토리숲 저학년 문고 1
강이경 지음, 김주경 그림 / 도토리숲 / 2014년 7월
평점 :
분홍색 약병은 ‘마음의 여유약’
덥수룩한 수염사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폭탄머리 아저씨. 초등학교시절에 보던 <그림을 그립시다.>의 서양 아저씨를 연상케 한다. 그 서양 아저씨를 닮은 폭탄머리 아저씨는 어른들의 결정으로 불안해진 재우의 마음을 꿰뚫고 알록달록 신기한 약들을 권한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먹은 분홍색 약만 행복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잠깐이라도 마음을 꿰뚫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큰 복일 듯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로워진 재우. 아침에 눈을 떠도 엄마는 이미 출근하고 없고, 학교에 가는 것도 싫다. 그리고 아빠하고 셋이서 살았을 때가 그립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아빠 없이 살게 된 자신을 무시하고 일부러 시비 거는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싸우게 된다. 하지만 자신보다 키도 훨씬 크고 힘이 센 친구들을 이기지 못해 형이나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하며 또 외로움을 느낀다.
재우는 하굣길에 강아지를 보기위해 동물병원에 가지만 그 자리에는 동물병원이 아닌 이상한 약국이 생겼다. 그곳에 들어가니 폭탄머리 아저씨가 나타나서 재우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힘셈약’을 권한다. 재우는 다음날 아침에 폭탄머리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힘셈약’을 먹고 학교에 가서 그동안 이기지 못했던 친구를 불러서 싸움을 한다. 하지만 그날도 이기지 못하고 또 이상한 약국으로 발걸음을 한다. 이번에는 재우가 직접 ‘결투약’을 고른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결투약’을 먹고 또 결투신청을 하지만 여전히 이기지 못하고 이상한 약국으로 발걸음 한다. 폭탄머리 아저씨는 재우에게 이름 없는 분홍색 약병을 권한다. 이참에 약 이름 좀 지어 보라면서 말이다. 앞에 ‘힘셈약’과 ‘결투약’과 달리 초콜릿처럼 달콤한 분홍색 약을 먹은 재우는 그동안 싸우기만 했던 친구들을 봐도 화가 나지 않고 친구들이 자신에게 실수를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이혼할 거면서 왜 결혼을 하는지 모르겠다. ]
[“약 이름이 없지? 왜 그런지 나도 몰라. 내가 아는 건,”
그 약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약이라는 것뿐이야.
이참에 약 이름 좀 지어봐라. 그 대신 공짜다.
아무튼 잊지 마라. 식후 삼십 분이다.”]
재우가 마지막으로 먹은 분홍색 약 이름을 나는 ‘마음의 여유약’ 이라고 지어봤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의 나도 늘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엄마, 아빠의 별거와 언니, 동생과의 생이별을 겪은(내가 기억하는 건 눈떠보니까 엄마와 둘이었다는 거다.) 나는 늘 혼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엄마와 같이 산다고 해도 하루 24시간을 꼬박 같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에서 만난 어른들, 친구들 중에 좋게 기억되는 사람들이 정말 극소수이다. 유치원 선생, 학교 선생, 교회 어른들이 나를 홀대할 때면 ‘아빠가 없어서 그래.’라는 생각뿐이었다. 예를 들면 유독 나에게만 양보를 강요할 때, 같은 잘못을 했는데 나만 혼낼 때, 다른 애들이 나를 때리거나 놀리는데도 도와주지 않을 때 등등 말이다. 그리고 상대편 아이가 먼저 시비 걸어서 때렸어도 옆에 있던 그 애의 오빠나 언니가 더 심하게 나를 때릴 때면 ‘나도 서울에 가면 언니하고 남동생 있는데.’라는 생각에 그 상황이 너무 억울했었다. 내가 심하게 맞고 오면 엄마가 가서 그 애들을 혼내주긴 했지만 아이들의 특성상 어른에게 혼나는 것을 무서워하는 건 잠깐뿐, 또래 중에 힘이 세거나 등치가 큰 아이를 지속적으로 무서워하니까 말이다. 만약 내가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에 이상한 약국을 만났다면 재우처럼 ‘결투약’을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복수약’과 ‘공부약’을(공부를 너무 못했거든) 골랐을 것 같다. 지금 이상한 약국을 만난다면 ‘좋은 기억약’을 고르고 싶다.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내 머리 안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게 말이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