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강 -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87
김선희 지음 / 사계절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소제목인 [아버지가 또 지붕에 올라갔다]를 봤을 때는 아버지가 술김에 지붕에 올라갔을 거라 여겼다. 술주정으로 말이다. 알고 보니 2년 전에 이삿짐을 나르다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살이 된 주인공 동이의 아버지가 틈만 나면 지붕위에 올라가서 말()놀이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이 아버지는 이삿짐센터 사장이었지만 말이 사장이지 여느 막일꾼이나 다름없었다. 밖에서는 이사하는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며 성실하게 일하는 아버지이지만 집에서는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존재였다. 엄마에게는 신경질적인 잔소리꾼, 동이 보다 10살 많은 형에게는 폭력꾼, 동이에게는 무관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7층에서 떨어진 서랍장 궤도에 머리를 맞은 아버지는 한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쉰일곱의 몸을 한 7살 아이로 돌아온 것이다. 그 후 엄마는 치킨가게를 열고, 취업준비중인 형은 엄마를 도와 배달을 나가니 어린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동이의 몫이 된다. 그러던 중 친구 희우의 핸드폰 속 여자 친구들 사진 속에 있던 미령이에게 관심이 생겨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들 모임인 더 빨강이라는 카페에 가입하게 된다. 카페 주인장인 미령이의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서이다. 매운 음식이 쥐약이나 마찬가지인 동이는 두 번이나 카페 모임에 나가서 매운 음식들을 억지로 입에 집어넣는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시도할 나이이니까!)

 한 카페회원으로 인해 더 빨강은 자살카페라는 오해가 번지고 미령이와 동이는 학생부의 감시대상이 된다. 미령은 동이를 은밀히 불러내 10월 마지막 날에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데 동이 역시 자살여행으로 오해를 하고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여행당일 날 약속장소로 나온다. 좋아하는 여학생 미령이, 고추조아, 마파두부 이 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부탁한다. 제발 자살은 하지 말자. 아무리 인생이고해라고 해도 한 번 제대로 헤엄이나 쳐 보고 죽어야지. 죽으면 모든 게 끝이야, . 그냥 먼지처럼 사라지는 거라고.”

 

갑자기 마파두부가 웃기 시작했다. , , , , 으아, , , . 미령이는 웃지 않았다. 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기만 했다. 179

 

 역시나 자살여행이 아닌 매운맛 대결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최대한 맵게 만든 음식에 동이가 오해한 청산가리가 아닌 캡사이신 분말, 부트 졸로키아, 하바네로 분말을 넣었던 것이다.

동이의 오해는 미령이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미령이는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유괴당한 경험이 있지만 아무 탈 없이 돌아왔다. 그런데 부모님, 유치원 선생님, 친척들이 필요이상으로 잘해주니 그것들이 가식으로만 느껴진 것이다. 그러니 자살을 막기 위해 여행을 따라온 친구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도 그런 동이가 멋있는 학생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매운 걸 먹기 시작했어?”

미령이가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매운 걸 좋아하게 된 건 그냥 우연이었어. 어느 날 멋모르고 매운 고추를 먹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확 당기는 거야. 지루하게 걷고 있는데 누가 발을 거는 느낌? 그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어. 그냥 걷는 건 재미없잖아. 누가 발도 걸어 주고 뺨도 때려 주고, 그래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지. 또 살아야겠다는 전투력도 생기고. 너희는 나하고 다른 이유로 매운 걸 먹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아 있기 위해서 매운 걸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잖아. 마파두부나 고추조아도 자력으로 고통을 이길 힘이 생기기 전까진 아마 계속 먹지 않을까? 넌 어때?” 191~192

 

그래서 학생들은 떡볶이를 좋아하고 성인들은 고추장 팍팍 넣은 비빔밥을 좋아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