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말 좀 들어줘
앰버 스미스 지음, 이연지 옮김 / 다독임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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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 네 잘못이 아니야

 

<누가 내 말 좀 들어줘>, 나무 아래 앉아 민들레 씨앗을 부는 책 표지속의 소녀 이든의 소리 없는 외침. 1장 열여섯, 2장 열일곱, 3장 열여덟, 4장 열아홉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하고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3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을 시작으로 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고, 잘못된 소문에 맞추며 자신을 포기해 버리기도 하는 십 대 소녀의 일기를 보는듯하다.

 

[나는 잘 모르겠다. 왜 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우선 애초에 왜 망할 문을 잠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의 무게로 매트리스가 짓눌리는 것을 알아챈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너무나도 무자비하게 잘못됐다는 걸- 대체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눈을 뜨니 침대 시트 사이로 그가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왜 그때 소리 지르지 못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왜 나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그에게 맛서 싸워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5쪽 중에서-]

이든은 오빠의 제일 친한 친구, 가족 모두가 신뢰하는, 자전거 사고에서 구해준 은인이기도한 케빈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자기 자신을 탓한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왜 저항하지 않았어?’, ‘왜 그때 신고하지 않았어?’라고 피해자를 탓하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피해자를 2번 죽인다. 난장판이 된 침대 위, 딸의 잠옷에 묻은 피를 보고도 월경으로 단정을 짓고 사건의 현장, 증거물을 치워버리는 엄마의 모습에서 남의 일로만 치부하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는 걸 알게 해준다.

 

[나는 천천히, 반쯤은 혹시 기분 나쁜 장난이라도 치는 건 아닐지 의심하며 그 애에게 다가갔다. 나를 자기들의 영역으로 꼬여내 머리에 쓰레기를 던지거나 하는 식으로 창피를 주려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조심스레 자리에 앉아 노트와 펜, 플래너를 최대한 소리 없이 꺼내려 애썼다. 플래너를 오늘 날짜로 펼쳐 메모해 두었다. ‘웃자’ -72쪽 중에서-]

나도 학교폭력을 12년 동안 당했기에 이 부분도 놓칠 수 없었다. 이든은 학교에서도 친구는 마라와 스티븐뿐이고 점심시간에는 다른 테이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했다. 교내 식당을 지옥으로 비유할 정도로 말이다. 가해자인 케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학교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경에서 콘택트렌즈로 바꾸고, 귀도 뚫고, 약간의 화장을 하는 등으로 자신을 바꾸어가지만 그동안의 상처들로 인해 자습실에서 자리까지 맡아주며 진심으로 다가오는 조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다.

난 오빠 여자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거든.’

 

[그였다. 당연히 케빈의 짓이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나도 공범인 걸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용감하고 똑똑했다. 나와 달랐다.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나약해 빠진 겁쟁이일 뿐이다. 나는 생쥐다. 망할 쥐새끼다. -345 중에서-]

이든은 이번에도 또 자신을 탓한다. 잘못은 소녀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리고, 아무도 네 말을 안 믿어줄 거라고 속삭이고, 말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한 가해자와 타인을 너무 믿어버리고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오빠에게 있는데 말이다.

 

 

-다독임 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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