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부서진 마음에게 전하는 말
허지원 지음 / 홍익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존감에 집착하지 말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평생친구라고 믿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 자신을 끝내버리려는 걸 방해받은 기분이 들던 때 그저 눈에 띄었다. 특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표지속의 여자 그림이.

 

[그러나 나를 출산했을 당시 부모님의 연령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어렸고, 얼마나 미숙하게 우리를 통제하려 했는지 그 전체적인 광경을 그릴 수 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주로 양육했던 세대는 따뜻한 애정을 경험하거나 표현할 기회를 박탈당했거나 어린 나이에 사회적 압력으로 결혼을 결정하여 자기 앞의 생조차 어쩌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을지 모릅니다. -28쪽 중에서-]

엄마를 향한 내 첫 기억은 엄마 죽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가 버린 거다. 잠긴 문고리를 당기면서 엄마를 몇 번을 부르고 나서야 엄마가 나왔다.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혼자 나를 양육해야했던 엄마로서는 그것이 나를 통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정말 삶이 버거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너무 무서웠다.

 

[오늘의 숙제는 이렇습니다.

누구도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당신의 버튼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생각해 볼 것.

그 뿌리 깊은 역동은 어디서 기인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까요?

관계에서 학대받고 수치감을 느끼던 그때의 기억들은 내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159- 중에서]

나를 거부하는 발언, 거부하는 행동 혹은 분위기 이게 내 버튼이다. 학벌을 높이고 내가 원했던 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나는 그대로 머물러있으니까.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건 기본으로, 놀이에 끼지도 못하고 모둠수업을 할 때면 모두가 거부했던, 반 아이들에게 재수 없어!’, ‘꺼져!’라는 폭언과 우리 반 왕따로 불렸던 어린여자애로. 그때는 벗어나고 싶었을 뿐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화가 난다. 그래서 올해 여름날 수화통역 수업에서 그거(그날 배운 내용을 금방 적용 못했다는 뜻이다.) 안하려면 이 수업 올 필요 없어.”라는 남자 강사의 한마디에 다음날로 해당 수업을 취소했고, 작년에는 영상독해 시간마다 거의 한달 반을 나를 순서에서 재끼더니 언제부턴가 서연씨 할래요?”라고 물어보는 강사의 행동에 화가 나서 그 후부터 수업에 가지 않았다.

 

배우고 싶은 거 다 배우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부모님의 선택이 아닌 내 선택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면 나는 나 스스로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습관적인 자살충동으로 보면, 타인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걸 보면 나는 나를 너무 무례하게 대한다. 저자는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하지만 애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과거의 가해자들보다 훨씬 나은 지금의 내 모습이.

    

 

 

-홍익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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