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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어항 ㅣ 한무릎읽기
최은영 지음, 박현영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참지 말고 당당하게
[“한두 번 당해 주면 사람들은 그 사람한테는 그래도 되는가 보다 생각해. 그러면서 무시해 버리지. 너는 친구들한테 무시당하며 살고 싶어?” -50쪽 중에서-]
주인공 유리의 5학년 2반에서 어항이 깨져버리고 키우던 거북이 두 마리도 사라졌다. 반장인 세연이와 원희는 유리가 어항담당이라는 이유로 틈만 나면 어항과 거북이를 사놓으라고 몰아붙인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도 타인의 말만 듣고 유리에게 “어항과 거북이 사다 놔.”라는 말을 차갑게 내뱉고, 돈을 건네니 서러울 뿐이다.(이런 부모들에게 묻고 싶은 건 아이의 말을 들어줄 시간은 없으면서 어떻게 타인의 말을 들을 시간은 있는 걸까?)
[“부모님이 언니를 인정하지 않은 거야. 언니가 잘못해서 일본 군인한테 잡혀갔다 왔으니 스스로 책임져라 그런 거지.”
“언니가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104쪽 중에서-]
[“부모님이 언니를 막 대하니까 나도 따라서 언니를 무시해 댔어. 언니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나이 오십이 넘도록 말이야.” -115쪽 중에서-]
유리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갈 때 왜 우냐며 참견하고, 집 앞에서 세연이와 원희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을 때 구세주같이 나타나서 호통쳐주던 앞집 할머니. 어린 시절의 그녀도 가해자였다. 언니를 죄인 취급하는 부모님을 방관만 했던…….
위안부를 다룬 영화 <눈길>을 보면 영애와 종분 두 소녀 중 영애는 일본군의 총에 맞은 상처 때문에 눈길에서 죽고, 종분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없어지고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고향을 떠나게 된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같은 조선인으로서 환영을 받지 못했던 거다. <깨진 어항>속의 앞집 할머니의 언니처럼 말이다. 정말이지 몇 년 전 유행어처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학교생활, 어른들에게는 직장생활에서 이렇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때가 많다.(가족관계도 빼놓을 수 없을 거다.) 내 잘못이 아닌데 당하기만 해야 할 때, 몰아붙이는 강자의 편에 서는 사람들.(직장에서는 갑질하는 손님 앞에서 직원을 나무라는 상사가 대표적일 거다.) 하지만 사회는 참으라고만 한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에도 어른들은 참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며 참을 것을 강요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깨진 어항>속의 앞집 할머니처럼 잘못한 게 없으면 밀리지 말 것을 조언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편에 서지 못하는 건 가해자인 강자를 비난할 용기가 없어서가 아닐까? 어쨌든 인생은 할 말 다하고 사는 게 최고다.
-크레용하우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