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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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을.”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도 삶은 계속 된다.

상실감과 좌절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위로와 갈채.

『64』 이후 7년 만에 출간된

거장의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

『빛의 현관』

/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빛이 들어오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포근한 이불을 폭 덮고 잠이 들면

어느새 아침이 되어

마주한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투명한 커튼 아래로

따뜻한 햇살이 방을 환하게 밝히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과

나는 이렇게 망설임 없이

‘나의 작은 세계’를 떠올린다.

 

 

 

 

 

* 먼저 내 마음에 남는 문장들

   그때, 처음 시작했던 그 아파트로 돌아갔더라면.

    그때, Y주택을 ‘우리 집’으로 제안할 수 있었다면.

    “늦어서 미안.”

    “방금 엄마 전화지? 안 받아도 돼?”

    아오세의 말에 히나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아빠 아냐? 나한테 전화했잖아.”

    히나코는 휴대전화를 조작하더니 아오세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거 아빠 번호잖아.”

    “<사자에 씨> 벨소리라서.”

    무슨 소리야, 하고 히나코는 웃었다.

    “그룹에 설정해둔 벨소리야. 이거 봐.”

    히나코가 화면을 움직였다. ‘그룹 등록, 가족’. 그곳에 ‘아빠’와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가 등록되어 있었다.

    “봤지? 그러니까 아빠가 전화해도 <사자에 씨> 벨소리가 나와. 알았어?”

    “알았어.”

    눈은 아직도 ‘가족’이라는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로 돌아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 밤하늘보다 짙은 어둠은 만들 수 있었지만 그것이 마음 놓고 달아날 보금자리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이번 번개는 모든 것을 비추었다.

    이번에 튀어오른 사고는 착지할 곳을 찾아냈다.

    알았다. ‘처음부터’의 의미를. ‘이미 시작되어 있던 것이다’의 의미도.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그것은 유카리의 말이었다.

    유카리가 아오세에게 보내는 메세지였다.

    뒤늦게 깨닫고 보니, 이 세상에서 오직 유카리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합장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온몸에서 열기가 사라지고 감정은 한없이 무뎌졌다. 눈앞에 있는 건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인데, 조금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핏줄이 전부가 아니야. 함께 보낸 시간이 중요하지. 그건 나와 잇소 둘만의 시간이야.’

오사카의 의뢰인 부부에게 말해야지. 고객님 가족만을 위한 집을 지읍시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삐, 삐삐.

    아오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제비 한 마리가 보였다. 둥지를 지을 재료를 그 부리 사이에 꼭 물고 있었다.

 

 

따스한 빛이 만드는 아늑한 공간

그리고 아름다운 미스터리

그렇게 마음이 동하여 시작했지만

건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거리감과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꽤 지루한 전개

게다가 아오세의 집착이라고 해야 될까

그들을 찾으려는 그 집요함까지

처음에는 사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애써 붙잡아

자꾸만 남은 페이지를 확인해 가며

심드렁한 눈길로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Y주택을 서성이는 내 모습

건물의 아래쪽에 조잡한 검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두 번째 장으로 넘기자 멀리 보이던 건물이 가까워졌다. 검은 동그라미가 옆으로 늘어나 타원형이 되었다. 세 번째 장에는 더욱 가까워져, 타원형이 직사각형이 되었고, 그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장으로 넘겼다.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져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 스토리가 있었다. 그 작은 창문을 향해 똑바로 난 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기념관을 찾은 사람은 새하얀 건물을 보며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어, 하고 생각하겠지. 멀리서 봐서는 창문이라는 건 모를 것이다. 거무튀튀한 벽의 얼룩처럼 보일 것이다. 궁금해져서 길을 따라 걷는다. 이내 그것이 창문이며 벽돌로 쌓은 벽이라는 걸 깨닫겠지. 더 가까이 가면 낡고, 초라하고, 서글픈, 사람들은 모르는 파리의 한 단면과 맞부딪치겠지. 그리고 그곳에 까맣게 뻥 뚫린 창문이 바로 고독한 화가의 준열한 영혼이 깃든 곳임을 알리라.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질 것이다.

아오세는 오카지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후지미야 하루코 기념관’의 초안을 보고

감탄의 한숨을 내뱉는데,

그것은 작가가 7년 동안 공들여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에 놀란 내 모습과 겹쳐졌다

초입에는 지루함과 어려움 사이에서 헤맸지만

먹먹함에 목이 메이면 잠시 멈춘 채 숨을 고르고

앞을 향해 뻗은 길 하나를 묵묵히 걸었더니

마침내 벅찬 마음을 안고

타우트의 의자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집’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벗어나

‘내’가 ‘살고 싶고’

또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감상과 별개로 타우트를 보면서

한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크 테토가 떠올랐다

귀를 기울이면 어디에선가

히나코의 맑은 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 옆에는 이제서야 도란도란

행복을 나눌 아오세와 유카리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Y주택을 찾아야겠다

*

부드럽게 나를 감싸는

고요한 북쪽의 빛

계단을 한 단 올라갈 때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다

마지막 발걸음이 멈추면

마침내 그 너머로 펼쳐지는

하나의 거대한 풍경

당신이 사랑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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