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암울한 견해에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율리아누스(331~363)는 신이 창조한 자연스러운 세상은 끔찍한 연옥이 아니며 근본적으로는 좋은 장소라고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율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에 대한 대립되는 해석을 놓고 장장 12년에 걸쳐 공개적인 논쟁을 벌였다. (58)
"나는 두려웠다. 그렇게 깊은 나락에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힘겨운 시간이었던가!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의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군인들은 우리를 거칠게 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젖먹이 아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버지가 수차례 감옥을 찾아와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기독교를 버리라고 간청했지만 페르페투아는 확고부동했다. (101)
"어떤 종류의 직업을 선택하느냐,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고자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딸들에게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면 그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되지 않을까요." (113)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18세기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성인이 된 메리는 난관에 봉착했다. 재산이나 지위 면에서 난라이 가세가 기울어 가는 가문 출신에다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메리의 앞날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메리는 필사적으로 난관을 헤치고 나아갈 방법을 찾았다.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 미혼 여성이 남부끄럽지 않게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뻔했다. 교사나 가정 교사가 되거나 유한마담에게 고용되어 이야기 상대가 되는 것 중 하나였다. (126)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세 가지를 모두 시도해 보았다. 그런 제한된 선택지를 마주한 보통 여자라면 결국 그럭저럭 보통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는 결혼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여자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란 괜찮은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외모를 가꾸고 연약해 보이도록 연기하고 교태를 통해 남자를 꾀어내고 유혹해 자신의 지배권 안에 가두는 법을 배워야 했다. 메리 울프턴크래프트는‘남성을 지배하는 불법적 권력’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 채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었던 경로에서 이탈해 생기 넘치는 지성과 퉁명한 매력으로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26-127)
인간관계란 복잡하기 그지없고 삶이란 예측불가능한 것이며 정신이 항상 마음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교훈이. (138)
낭만적 결혼이란 허울만 근사한 껍데기인지도 모른다. 존 스튜어트 밀은 결혼을 정치적 결합이라 표현함으로써 페미니즘적 관점을 표명했다. 그가 1869년에 쓴 논설문 「여성의 예속」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겉으로 들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결혼은 양자 간의 상대적 중요도와 욕구의 우선순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확하 ㄴ균형을 이루고 있다." (145)
나는 가진 짐을 모두 싸서 새 아파트로 혼자 이사했다. 항상 혼자 남아 집을 지키며 기다리기만 하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199)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을 이야기한 글은 수없이 많다. 사랑은 카멜레온 같아서 자물쇠도 열쇠도 되었다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사회가 어떻게 여자들을 사랑 지상주의에 빠지게 훈련시키는지 예리하게 고찰했다. "남자들은 너나없이 사랑이야말로 여자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라고 주장한다." (217)
니체는 사랑이 여자를 더욱 여성스럽게 만든다고 말했다. 발자크는 한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남자의 인생은 명성이며, 여자의 인생은 사랑이다. 남자들이 끊임없이 행동하듯 여자들은 끊임없이 내주는 삶을 살 때에만 남자와 동등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 (217)
보부아르는 이 주장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여자들이 자신의 나약함이 아닌 강인함을 사랑하고, 스스로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지는 날, 그날 비로소 사랑은 남자들에게 그런 것처럼 여자들에게도 치명적인 위험이 아닌 삶의 근원이 될 것이다." (217)
보부아르도 『제2의 성』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지 않으며 거기에 담긴 가치 또한 분명하지 않다. 타인의 행복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며 고작해야 어떤 상황이 행복을 불러일읔리 가능성이 높은지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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