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4년 푸거는 베를린 근방을 다스리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알부레히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이 빚을 갚으려는 계획은 역사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종교개혁을 촉발했다. 종교개혁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교황청의 부패, 성직자의 탐욕, 교회의 세속개입 등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저항에 일조했다. 하지만 도화선에 불을 붙인 사람은 푸거였다. 그는 유명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공사비를마련하기 위해 면죄부 판매의 산파 노릇을 했다. 교회는 신자가 돈을바치는 대가로 구원을 약속하며 자금을 마련했는데, 이는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푸거가 알브레히트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또 다른 성직 판매를후원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주임신부나 부제 정도가 아니라 독일에서 가장 막강한 지위, 바로 마인츠 대주교 자리였다. 신성로마제국의 일곱 선거후 중 마인츠 주교가 가장 강력했는데, 이는 제국의회를 주재했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표는 하나였지만 그에게는 의제를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 이 덕분에 독일에서 황제를 제외한 그 누구보다 더 큰 권위를 누렸다. 잉글랜드로 치면 대법관 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