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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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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해버렸다. 세상은 더 이상 수줍음을 바라지 않고 머뭇거림을 용납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더 튀어야 살 수 있고, 남들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주목받는다. 세상이 이러니 사람들도 카멜레온처럼 변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를 겁내지 않는다. 아니 모든 것을 겁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부일 뿐 세상은 여전히 ‘신중함’으로 가득하다. 그 신중함은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애쓰는 것, 남들과 충돌을 하지 않고 자기가 손해를 감수하는 것, 포기하고 조용히 사는 것.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다. 신중한 사람, 남들에게 ‘싫다’고 하지 못하고 자기에게서 그 이유를 찾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얼핏 신중한 사람이 아니라 우유부단하거나 소심한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닌, 무언가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현상을 받아들이고 자기 가슴만 쿵쿵 치는 신중한 사람들.

표제작이기도 한 [신중한 사람]은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Y의 이야기다. 그는 아내와 결혼할 때부터 전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단월에 집을 지었다. 하지만 스물 한 살 된 Y의 딸은 시골에서 사는 것을 거부했고 신중했던 Y는 신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자신의 집을 이웃에게 관리를 맡긴 후 해외로 떠난다. 3년이 지난 후 돌아온 집은 아끼던 정원이 엉망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낯선 남자가 살고 있었다. 자신의 왕국이 무너진 Y는 장팔식을 내쫒지도 못하고 엉망이 된 정원만을 신중하게 복구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무너진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그럴 때 먹은 것이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해서 가끔 쿵쿵 소리 나게 가슴을 때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신중한 사람 p46)


유는 곧 대도시로 이주할 예정이었다. 회사를 옮기며 일이 잘 풀리지 않던 유에게 외삼촌의 제안은 삶의 돌파구였다. 유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살던 집을 정리했다. 외국의 삶에 대비하기 위해 여관방에 자리를 잡고 비자를 신청했다. 비자 업무가 늦어지고 여관 주인의 일처리 때문에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늦게 비자를 받게 된 유는 떠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했지만 유에게 집행관이 찾아와 목을 누른다. 예전의 범죄로 감옥에 있다 풀려난 유였지만 행정착오로 형기가 남았다는 것이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여관 주인은 그에게 아무 말도 도와주지 않고 야릇한 미소만 남길 뿐이었다.


이승우의 이번 이야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며 또한 그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잃는다. 익숙한 곳, 있어야 할 곳을 잃고 주변에서 자신의 자리를 바라만 보는 이야기, 그곳에 가기에는 너무나도 신중해서 가슴만 치고 애처롭게 바라만 보고 있다. 자신의 집을 두고 월세방을 전전하거나 외국의 삶이 눈앞에 있는데 여관방에서 붙잡혀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신중함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이승우는 집요할 정도로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여기에서 필요한 장치는 우유부단한 주인공만이 아니다. 제아무리 신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울릴만한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대화가 통하지 않는 타자다. 대화는커녕 침묵하기까지 하는 타자다. 끔찍한 소통의 부재는 부자간에 칼을 품게 만든다. 이런 세상의 불합리에 소설의 주인공들은 묵묵히 견디며 자신은 신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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