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제인 에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만으로 나의 시선을 확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실질적인 주인공은 문학 관련 범죄를 담당하는 특수작전망(리테라텍)에서 수사관으로 일하는 ‘서즈데이 넥스트’이지만, 나는 줄곧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재스퍼 포드의 소설 안에서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을 것인지에 관심을 두었다.

내가 어렸을 때 맨 처음 읽은 사랑 이야기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였다. 연인의 사랑을 비중 있게 다룬 소설들 중에서 《제인 에어》와 같은 고품격 연애 소설을 처음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마음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는지 지켜보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여전히 설렌다. 이 책에서는 로체스터에게 미치광이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제인이 떠나는 것을 끝으로 샬럿 브론테가 《제인 에어》의 결말을 지었다는 가정하에 전개된다.

서즈데이 넥스트가 리테라텍에서 활약하는 시기는 1980년대 영국으로 시간의 틈이 벌어져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이 소설 속 1980년대는 우리 세대가 경험한 상식적인 시간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 현실, 허구가 혼재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에 광적으로 열광하고 유명 작가들의 초판본과 유명 화가들의 원화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된다. 당연히 이것들을 둘러싼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한 시간적 배경 속에서 《제인 에어》 초판본은 도덕적 양심이라곤 전혀 없는 악당 아케론 하데스에 의해 도난당한다. 이미 찰스 디킨스의 《마틴 처즐윗》 초판본을 훔쳐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살해한 적이 있는 그는 끔찍하게도 《제인 에어》에서 제인을 납치한다. 1인칭주인공시점으로 씌어진 《제인 에어》에서 제인이 사라지면 《제인 에어》라는 소설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이제 현실의 모든 《제인 에어》는 제인이 납치당한 순간에서 일그러진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 넥스트가 하데스에 대항하여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에서 넥스트는 《제인 에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망쳐놓았다. 바로 로체스터와 제인의 감동적인 텔레파시 장면이다. 손필드의 화재로 두 눈이 먼 로체스터가 제인을 그리워하며 그녀를 목청껏 부른다. 그의 절절한 음성은 멀리 있는 그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제인 에어》의 행복한 결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재스퍼 포드는 이 부분에 넥스트가 영웅적으로(?) 참견하도록 내버려두어, 그녀를 로체스터와 제인의 ‘사랑의 전령사(?)’가 되도록 했다. 《제인 에어》의 행복한 결말은 모두 넥스트 덕분이라는 듯이…….

물론 그토록 낭만적인 장면이 넥스트의 무례한 개입과 제인의 어이없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재스퍼 포드의 설정임은 알고 있지만, 왠지 내밀한 곳에 숨겨두었던 ‘순수’를 훼손당한 것만 같아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다른 ‘넥스트 이야기’가 나온다면 주저 없이 살 것이다. 어쨌든 ‘문학 텍스트와의 완전한 교감과 직접적인 만남’이라는 재스퍼 포드의 매혹적인 발상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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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7-27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소설 속으로 뛰어드는 불한당 같은 소설이 좋아요. 흥분해서 이 소설에 리뷰를 썼던 게 기억나네요 ^^

zipge 2005-07-27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좋았는데, 역시 진짜 로체스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별이 한꺼번에 세 개로 줄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