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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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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의 SF(Science Fiction)는 ‘과학’이 아니라 ‘공상’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과거 일본의 해석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퍼져 생겨난 오해일 것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SF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스타워즈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SF의 전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한 것은 요즘 들어 이른바 장르에 대한 편견 자체가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결국 SF라는 장르 역시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과학적 허구로 창조된 세계이며 이것 또한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게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장르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지금에 와서야 좋은 작품 자체가 중요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와 더불어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트렸다는 평판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

지금 이야기할 토머스 핀천 역시 이러한 평가를 받는 작가다.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의 작가”, SF의 선조로 인정받는 작가로 『느리게 배우는 사람Slow Learner』는 초창기 그의 단편 모음집이다. <은밀한 통합>을 제외하고는 핀천이 대학생 때 쓴 작품들로 초창기 작품답게 거칠고 이후 작품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단편 모음이다.

토머스 핀천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엔트로피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량을 가리키는 말로 물질계의 열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의 하나다. 후대의 작가들 가운데서는 과학적 이론을 자신의 메인 테마―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그렉 이건의 『쿼런틴』의 경우처럼―로 사용하고 있는데 핀천은 그의 작품 속에 엔트로피의 개념을 배경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엔트로피>는 제목처럼 이후 그의 작품에 빠지지 않는 엔트로피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된 단편이다. 아파트를 배경으로 3층과 4층의 무질서·혼돈과 규칙·통제라는 극적인 대비와 갈등이 핵심을 이루는 이야기다. 이런 구조는 핀천 이야기의 큰 줄기가 된다. 이후 발표된 <은밀한 통합>역시 이러한 갈등구조를 가진다. 이 작품에는 관습과 규범을 강조하는 어른들과 이에 반발하는 십대들이 등장하는데 신구의 갈등과 더불어 기성의 질서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정 반대인 알코올중독자인 흑인 음악가를 등장시켜 당시의 흑인에 대한 인종문제까지 함께 언급하면서 갈등구조를 심화시킨다. <이슬비>와 <로우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거나 대립하는 이야기들은 핀천 문학의 핵심이기도 하며 이는 엔트로피 이론과 맞물려 폐쇄된 사회에서 무질서로 증가하는 열린사회의 대비가 그 중심을 이룬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SF라는 딱지를 달고 나오는 작품들은 수요가 많지 않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때의 이야기도 결국은 수요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국내의 SF에 관련해서 독자들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너무 유치하거나, 너무 딱딱하거나. SF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우주선이나 나오는 유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반사며 조금 관심이 생겨나더라도 추천 받은 작품들이 의외로 읽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SF는 낯설다. 오락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 진지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수고를 더한다면 SF만큼 즐거운 것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SF는 막연한 공상이 아닌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허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선과 광선검이 쏟아지는 세계가 아닌 멀지 않은 근미래, 현재와 닮은 세계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과학’에 연연하지 말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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