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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요즘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쩔 도리 없이 속수무책으로 남게 되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엄마와 오빠가 나를 대신해 지워야 할 물건들, 내가 한때 살아 있었다는 온갖 자질구레한 흔적들, 평생을 애면글면 살아내면서 겨우 남긴 욕망들. 살아서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했던 것들은 아무래도 좋은데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끌어안고 있을까 봐 겁난다. 그 사이에서 예기치 못했던 것들이 발견되면 그것들이 나에 관한 다른 기억들을 전부 제압할지 모른다. 도대체 그이가 왜 이렇게 꽁꽁 쟁여뒀는지 알 수 없는 것들, 엄청난 약봉지, 사탕 봉지, 로또 뭉치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아닌 것 같은 것들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겨지고 싶지 않다.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에는 사후에 그런 것들을 아무도 몰래 감쪽같이 지워주는 ‘딜리터(deleter)’라는 직업이 나온다. 딜리터는 생전의 의뢰인과 계약한 대로 의뢰인이 지정해 놓은 온갖 물건들을 사후에 ‘딜리팅(deleting)’한다. 이 소설에는 전직 경찰이자 딜리터인 구동치가 딜리팅 과정에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으로 등장한다. 딜리터니 딜리팅이니 하는 직업과 일도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딜리터에게 딜리팅을 의뢰하는 물건들을 의뢰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간직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부재하는 자리에 남겨지는 것은 싫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한은 소유해야 하는 것, 그것을 김중혁은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 비밀들 중에는 세상에 공개되면 지금까지의 나를 무너뜨릴 약점뿐만 아니라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 상대와 협상하여 거액을 챙길 수 있는 약점도 포함된다.
김중혁은 자신이 죽은 이후까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딜리팅을 의뢰하는 마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328쪽)
그래, 어쩌면,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살아 있는 한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욕망” 자체는 아직은 살아 있어서 죽음 이후를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자만이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질 수 있는 욕망이 아닌가. 그 욕망에, 같은 한계를 지닌 동류로서 연민을 느낄지언정 추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그리하여 자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알 수 없을, 알 수 없다는 것조차 모를 세상의 일까지 전전긍긍하는 신경이라니……. 만약 그 애처로운 욕망이 추해진다면, 그건 추한 사람이 추하게 욕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동치가 본의 아니게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추한 사람이 추한 욕망으로 딜리팅을 이용하고, 구동치가 의뢰자의 본심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장(천일수, 악당),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동영상이 담긴 태블릿 PC, 그 동영상으로 그의 재력을 탐하다가 살해된 사람(배동훈)과 계속 탐하는 사람(이영민, 악당이나 마찬가지) 사이에 휘말리는 것은 태블릿 PC를 딜리팅해 달라고 배동훈에게 의뢰받은 구동치뿐만이 아니다. 배동훈의 석연찮은 죽음을 파고드는 과격하지만 정 많은 열혈 형사와 원수도장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천일수에게 고용되어 궂은일에 나서는 사람들도, 명예와 부를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무너뜨려 빼앗으려는 자의 추악한 욕망에 휩쓸린다. (‘원수도장’, 인터넷 검색도 안 되는 낯설고 신기한 소재이다. 소설 속에 제공된 정보를 간단히 언급하자면, ‘무공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내세의 삶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하루 종일 무공만 연마하는 일종의 종교, 그러나 1980년대에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려 궤멸됐음.’)
소설은 단숨에 아주 잘 읽힌다. 딜리팅을 하는 탐정과 살해당한 의뢰인,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는 작가가 감질나게 조금씩 던져주는 단서를 좇아 책장을 쉼 없이 넘기게 한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한껏 증폭됐던 궁금증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소설의 커다란 뼈대와 별 상관 없는 곁가지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한다. 특히 정소윤, 그녀는 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꽤 비중 있게 다뤄지고 뭔가 활약할 것 같은 기대감을 주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흥미로운 소재들을 많이 가져왔지만 꼭 그 소재들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졌다는 점이다. 소설 초반에는 구동치가 딜리터였을지 모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딜리터이기보다는 탐정이었고, 원수도장 사람들은 처음에 정체 묘연한 무공의 고수들로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해 그에 걸맞게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실수투성이 오합지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애꿎게 사람이 하나 더 희생됐다. 나는 아직도 왜 그를 죽이기까지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잘 이해가 안 되긴 제목도 마찬가지이다. 제목과 연관된 문장들을 소설 속에서 발견했지만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으로 이 책을 받기 전에 이미 읽었지만, 리뷰는 신간평가단이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