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 선생님의 책은 인문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소설을 읽는 듯 재미가 느껴집니다. 일반 책에 비해서 두 배의 두께를 자랑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에 자꾸만 읽게되는 그런 책입니다. 부록에 실려 있는 참고문헌 목록을 헤아려보니 단행본과 논문, 잡지를 포함해서 207편에 달합니다. 방대한 문헌의 핵심을 꿰뚫어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양념이 잘 베인 음식을 먹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저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독서코칭과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고 글도쓰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본질이라고 생각하여 자기 개발서를 열심히 읽고 활용했습니다만 나중에는 문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서사학을 독학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심층적인 도구가 "언어"자체라는 생각에 이르게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언어에 관한 책들을 읽게되었는데 대부분 언어의 속성과 구조, 문법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많이 답답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언어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과 기능이었기 때문입니다. 8020이어령 학당의 강좌 가운데 "말의 힘"편을 통해서 약간의 갈증이 해소되었으나 여전히 충분하다고 느끼지는 못하던 차에 김용규 선생님의 <생각의 시대>를 만났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생각의 도구로서 언어에 대한 안목을 깊고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언어가 사고의 도구라는 것은 이런저런 독서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목록을 배운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데 언어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이 중요한지, 왜그런지 그리스의 고전을 비롯하여 현대의 뇌과학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학자들의 연구와 문헌을 꿰뚫어서 명쾌하게 설명한 내용들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생각에는 감각에 기반을 둔 일차적 사고와 언어를 매개로한 고차적 사고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생각이전의 생각으로서 범주화의 중요성, 언어를 통한 일반화의 힘에 대한 설명은 깊은 공감이 갑니다. 이와 같은 범주화와 일반화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과 작품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라는 것도 알았고요. 또 책을 읽으면서 생각의 도구로서 문장과 은유, 수와 수사학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은 이런 것들을 평생 활용하면서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범주화와 일반화, 은유, 수, 수사학 등의 내용을 다루지만 한마디로 생각의 도구로서 언어의 중요성을 파헤친 책이라고 하겠니다. 결론적으로 언어는 곧 생각이며 생각의 힘을 기른다는 것은 언어의 힘을 이해하고 언어의 힘을 신뢰하며 언어를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가는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 책은 저에게 우리 삶과 언어의 관계를 더 깊이 탐구하도록 이끌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언어는 생각의 핵심적인 도구이자 사람을 사람되게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라는 저자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언어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과 기능은 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언어와 관련하여 어떤 중요한 주제들이 더 있을까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 본다면 첫째 "언어의 관계기능"입니다. 말은 생각의 도구일뿐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도구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자역시 "수사학"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언어의 설득기능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논의했습니다만 언어의 관계 기능은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포함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인들은 설득하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풍요롭게하고 신뢰를 쌓아가며 현재의 행복을 즐기기 위해서 말을 합니다. 저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논리적으로 설득했다가 좋은 점수를 받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논쟁에서 지는 것이 관계에서 이기는 것일때가 더 많지요. 또 관계에서는 반드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만이 가치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이토 다카시의 <잡담이 능력이다>라는 책도 이런 맥락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것입니다. 말의 관계 기능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논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공감이며 유희와 넌센스 이런 요소들입니다. 또 말의 내용이나 형식보다 더 깊이 탐구해야할 것이 말하는 태도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에 다르고 애다르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말에는 사회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물론 언어의 사고기능과 관계기능은 사회적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언어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을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프로토콜, 즉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통신규약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어라는 통신규약으로 운영됩니다. 수 많은 간판들과 광고, 도로의 안내판, 기관끼리 주고받는 공문, 매스컴, 인터넷 등 만약 프로토콜로서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우리 사회는 마비되고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질게 분명합니다. 물론 이런 분야는 신문방송학이나 커뮤니케이션 학쪽에서 연구하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언어가 사람의 정신구조의 틀을 형성한다고 볼 때 한 개인의 사고구조와 인격형성에 사회적 프로토콜로서의 언어는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합니다.

 

말에는 에너지가 있다고 합니다. 감사와 칭찬, 사랑의 언어처럼 긍정적인 말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가 발산되고 불평과 저주, 욕설과 같은 언어에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가 발산된다고 합니다. 믿기지 않았지만 양자심리학의 차원에서는 말이 지닌 에너지 파동을 연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한글날을 기해 MBC에서 만든 <말의 힘>이라는 다큐팀의 실험을 본적이 있습니다. 똑 같은 밥을 두 병에 담고 하나에게는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자 하얀 누룩 곰팡이가 피고 다른 병에는 욕설을 들려주고 몇 주가 지나자 까맣게 썩습니다.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면서 제가 이 내용을 소개하자 여러 사람들이 같은 실험을 따라 해 보았는데 결과는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이밖에도 말은 수 없이 많은 기능이 있지만 "표현기능"에 대해서는 꼭 집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말의 표현 기능은 넓게 보면 사고 기능에 포함할 수 있겠지만 좁게 보면 할말이 아주 많은 영역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정보와 욕구, 감정,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점이 고등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다른 동물과 저와 여러분이 무척 다른 점일 것입니다. 예컨대 자동차를 몰다가 갑자기 끼어들기하는 얌체 운전자때문에 몹시 당황스러운 경험을 여러분도 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때 고릴라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아마 차에서 당장 내려 자기 가슴을 둥둥 두드리며 온 몸으로 화를 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하는 대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 "아이쿠, 저 사람이 갑자기 끼어 들어 충돌하까봐 당황했네. 저렇게 운전하면 자신도 위험하고 타인도 위험에 빠뜨리는데." 이렇게 말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로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표현하기는 자신의 품위를 지키면서 타인을 해치지도 않는 뛰어난 감정관리 방법입니다. 사실 언어를 매개로 수행되는 상담은 말의 관계 기능과 표현기능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한권의 책에서 언어의 모든 면을 다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자가 잘 요리해 준 맛깔나는 정보들을 마중물 삼아 언어의 기능과 힘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해 보기로 다짐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언어가 사고의 도구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무척 행운입니다. 앞으로도 독서를 통해서 사람들의 언어의 세계를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가꿀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만나는 것은 독서가 주는 최대의 축복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http://www.bibliotherapy.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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