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자라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 그때 꼭 원하는 일들이 있다. 어릴적에는 '그저 맛난거나 많이 먹었으면' 싶었고, 중학교때는 '공부 안하고 놀기만 하면 안되나'라는 욕심, 그리고 고등학교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했으며, 대학때는 졸업후 '좋은데 취직 됐으면' 하는 마음과 취직을 해서는 '돈좀 많이 벌었으면' 하고 원했었다. 시험을 보면 '단 한번에 합격하길' 바랬고, 친구들과 미팅에 나가면 소위 말해 '킹카'와 파트너가 되기를 마주하고 있는 내내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곤 했었다. 사회생활하면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나의 음치에 가까운 노래솜씨때문에 늘 '노래좀 잘했으면' 하고 몇번이고 되네이곤 했었다. 몇가지를 제하고는 -킹카만나기, 노래를 잘하는 것 등- 대부분 원하는대로,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졌다.

지금 가장 하고싶은 것,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멋진 소설을 한번 써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단 한페이지도 쓰기 힘든 글들을 어떻게 수백장씩 쓸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것도 1년에  한 두 작품 쓰기도 힘든데, 마치 '화수분'이나 '억만장자의 금고'와도 같이 퍼내도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작가들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스티븐킹이나 온다리쿠같은 작가를 좋아한다. 끝없는 샘물처럼 이야기가 펑펑 쏟아져 나오는 그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과연 비결은 무엇일까?

책은 사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수만가지의 책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좋은책, 재미있는책을 골라낸다는 것이 여간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서점에나가 책을 일일이 뒤적일 수도 없고, 한두푼도 아닌 책을 무조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요즘은 예전과는 다르게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있어 클릭 한 번만으로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으니 그나마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고 있음을 다행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이러한 소위말해 검증된 작가의 책은 그저 의심없이 집어들어도 왠만해서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작가의 작품은 내용은 볼것도 없이 소장하기위해서라도 구입을 하게된다.

나는 일본소설은 눈여겨 보는 편이다. 아니 주로 일본소설을 즐긴다. 일본소설이 주는 재미는 우리네 소설이 주는 무게감보다는 가볍고,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소설보다는 덜 완성된 듯 하지만 일본소설에는 독특한 맛과 향이 느껴진다. 그들만의 색(色)이 물씬 베어있어 빨아도 빨아도 절대 탈색되지 않는 진함이 있다. 때로는 덜 떨어진 바보스러움이 등장하고, 때로는 기이하면서도 야릇한 기운이 감도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읽고나서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함이 일본의 색(色)을 듬뿍담아 그들 나름대로 그들만의 이야기로 재탄생되는 힘이 있다.

또하나 일본소설이 빠른 시간안에 우리의 독서문화에 자리하게 된 데에는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이야기꾼들의 여러가지소재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것도 우리네 정서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매력을 담고 있으니 어느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리고 막대한 지원이 있으니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격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소설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다양한 상(賞)에 있지 않나 싶다. 장르별로 주어지는 상과 이곳저곳에서 수여하는 상.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작가들의 역량을 무한히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거기다가 최근 눈에띄는 젊은 작가의 출현이 앞으로 일본문학가가 밝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다양한 경력을 지닌 작가의 출현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작가로 데뷔 시 자신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되고, 결국은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지 않나 싶다.

일본의 많은 작가들 중에 온다리쿠의 경우가 위에 열거한 여러항목에 가장 근접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91년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데뷔한 경력과, 다양한 수상경력, 그리고 짧다면 짧은 16-7년의 기간동안 적지않은 작품들을 발표한 것을 보면 역시 일본내에서 다른 몇몇 작가와 더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온다리쿠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로 알게 된 작가다. 그 이후로 우리나라에는 그의 작품이 거의 20여편이 소개가 되었다. 온다리쿠의 작품은 모두소장하고 있으면서도, 많이 읽지는 못하고 있다. 그냥 작가가 좋아, 책을 소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 작가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는 그럼 느낌이 좋아 유독 온다리쿠의 작품만은 꼭 구입하게 된다. - 다른 작가의 작품도 물론 구입은 하지만 대부분 리뷰모집이나, 도서관을 통해 빌려보거나, 선물을 받는다.

온다리쿠의 특징은 다양한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이리저리 연결고리처럼 연결되기도 하고, 관계를 갖기도 한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그 연결고리에 턱하니 걸치기만 하면 될 듯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녀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온다리쿠의 작품은 처음부터 소장을 하던지, 읽던지 하지 않게되면 그녀는 소위말해 물건너간 작가처럼 잊혀지게 되는 단점도 있다. 예를 들면 그녀의 작품 중 어느편 하나만 읽으면 무슨얘기를 하는지 흥미를 잃을수도 있고, 연결 연결 또는 비슷한 주인공의 출현으로 자칫 그녀의 작품은 모두 구입해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온다리쿠의 이야기는 생경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섬뜩함과 쭈삣함 그리고 때로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받게된다. '그럴수 있어'라는 이야기보다 '에이, 그럴수가 있나?'라는 느낌이 더 잘 어울리는 작가가 바로 온다리쿠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온다리쿠의 작품은 무엇부터 시작해야할까?' 그렇게 묻는다면 단연코 이 책 '도서실의 바다'를 권해주고 싶다. 구성이 독특하다. 마치 저 유명한 스타워즈처럼 에피소드 4-6을 먼저 만들고 후에 에피소드 1-3을 만든 것처럼 이 '도서실의 바다'는 이미 나와있는 - 물론 독자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 이야기의 전편에 해당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시말해 예고편이라고나 할까,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의 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라고나 할까...하여간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예를들면 '피크닉' 과 '여섯번째 사요코'를 읽고 이 책을 읽고나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온다리쿠의 엉뚱한 발상같기도한 '도서실의 바다'에는 모두 열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단지 '예고편'의 역활만 담당하고 있지 않다는데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한편이 나름대로 충분한 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친구들의 우정과 죽음을 다른 몽환적분위기의 '봄이여 오라'와 마지막 결말이 멋진 두번째 이야기 '작은 갈색 병'이 그리고 '밤의 피크닉'의 전편 '피크닉 준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 바로 이러한 힘이 온다리쿠만의 저력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충분히 받게된다. 물론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책 한권 더 만들기 위해 억지를 부렸구나'  라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온다리쿠를 새로이 시작하고 싶다면 우선 '도서실의 바다'로 간단히 입을 축이고 시작하라고 일러주고 싶다. 아마도 온다리쿠의 바다에 한번 빠지면 제대로 헤엄쳐 나올 수 없음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책꽂이에 싸여가는 그녀의 책을 보면 마음과 머리는 든든해지는 반면 지갑은 가벼워짐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온다리쿠의 '도서실의 바다'는 멋진 만찬 즐기기에 앞서 들뜬 마음으로 받아든 한잔의 '와인'과 '에피타이저' 같은 작품이 아닐까?  에피타이저를 맛보고 메인요리는 각자 취향에 따라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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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12-14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백년고독 2007-12-14 18: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멜기세덱님
저야말로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