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알레르기 비염이 재발해 코를 킁킁거리던 도중에 제 몸을 희생하시어 꽃가루 알레르기를 발견한 찰스 해리슨 블랙클리 의 에피소드를 읽었다. 끊임없는 자가실험 에피소드(밀폐된 방에 증기를 피우고 꽃가루를 코에 묻히고 들이마시고 등등등) 를 읽으며 감사하면서도 아찔한 기분. 어릴 적 읽던 성실한 위인전의 느낌이 나는 것이 아쉽다. 조금은 더 비뚤어졌어도 될 터이다.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하는 그 힘이 아직은 유년의 불가해한 충동들을 이기지 못한다. 동물적이면서도 식물적인 충동들, 우리의 뇌리에는 그것들이 몇몇 고통에 대한 기억 이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또 어른들이 다가가며 아이들은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드러남의 현장을 목격하기 어려운 충동들.˝ -11p우리 말로는 중2병. 모호한 정체성과 모호한 가치판단. 감정은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지만 무한한 자유로움. 폴과 리지와는 달리 행동까지 옮기진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만은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하고 근친상간 같은 갖가지 터부에도 자유롭고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도 뛰어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 무위이면서도 작위의 시간들이 내게는 참으로 소중했고 이제는 다시 가질 수 없어서 슬픈데요즘 아이들은 현실세계의 일로 바빠서 머릿속으로라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