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읽는 시간 - 오래 시선이 머무는 66편의 시
권혁웅 엮음 / 문예중앙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시집을 읽었다.

가수가 정규1집, 정규2집 발매하는 것처럼
시인의 작품도 정규 단행본이
가장 그 작가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 믿지만,

가끔 이런 선집을 읽어보는 것도 재미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창시절 교과서에 소개된 시들 위주로 해설이 붙어있는
문제집류의 시선집도 있었고(이렇게 읽어서 시 공부랍시고
언어영역을 공부했었다니)

내 방 서재에 꽂혀있는 문지사 300호, 500호 기념 시인선 같은
해당 출판사의 100권째 발간을 기념하는 출판물도 있고
(권말의 해설 말고는 시편마다의 해설은 따로 없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시인들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른 작가의 작품들 중 골라놓은 시집이 있다.

이 책은 마지막 종류의 선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편마다 작가의 비평이, 독특하게도 시의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굳이 말을 짓자면 ‘댓글‘과 비슷하니 ‘댓시‘라고 불러도 될거같다.
요개 또 해설이면서 감상이면서 시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덧붙이자면,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나는 시집에는 평점을 후하게 준다, 누가 뭐라할 이 없으니,
마음가는 대로

오토리버스


장경린

방사선 끊고
항암제마저 끊고 난 뒤
가족도 끊어진 밤 홀로 있다 보면
냉동배아 은행실의 배아가 된 듯하다고
너는 한숨지었다
이런 몸에서도 손톱이 자라다니

그건 물을 마셔도 올라오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너를 위해
자연이
자연을 다듬어 만들어준
작은 정원이었다

의약분쟁으로 의사들이 파업한 썰렁한 병원
북적이는 영안실에서
오토리버스 되어 흘러나오던 독경 소리
오토리버스 되어 풀리던
저녁노을

너 죽은 후에도
노을은

모든 치료를 끊고
지친 식구들도 자리를 비운 밤.
사고무친의 너는 자꾸 작아진다.
너는 웅크린 갓난아이만 해셨다가
그 아이가 움켜쥔 손아귀만해졌다가
손끝의 손톱만 해졌다.
태아가 아니라 배아라면
다시 세포분열을 시작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을 텐데,
머리칼도 다 빠졌는데 손톱이 자란다.
손가락 끝에 지어진 열 개의 작은 정원이란 자연의 마지막 위로다.
죽은 각질이 만들어낸 인공정원이다.
너는 그 정원에 꼭 맞는 주인이 되려 하는데,
몸 안의 암만이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암은 죽기를 거부한 세포다.
파업도 모르는 이 무서운 불모의 성장을 어떻게 해야하나.
네 소원을 쇠귀에 "독경 소리"로 여기는 저 죽음의 그림자란 대체 무엇이냐.
너 죽은 후에도 노을은 저렇게 아름다울 것이다.
무심하게, 다만 무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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