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로 징계를 앞둔 상동고 이용석 교사의 심경 고백…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된 자신을 돌아보며 전체주의에 반대하기로 결심

▣ 이용석 부천 상동고 교사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아침이다. 교문지도를 해야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아 참! 오늘은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잖아.

아침 7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의 수업 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교문으로 나간다. 난 학생생활지도 담당 교사이다. 내 손에는 이미 나에게 잘 길들여진 단단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다. 교문에서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진입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봐야 한다.


△ 지난 7월 징계위에 불참한 이용석 교사는 고민 끝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8월4일 출석에 앞서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 교사의 모습.

등교하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 교복 상태, 운동화 종류, 왼쪽 가슴에 부착돼 있어야 하는 이름표, 남학생의 넥타이와 여학생의 리본 착용 여부 등 이 모든 걸 한눈에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 개개인을 모두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왼쪽으로 일렬을 지으며 들어온다. “너, 머리!” “너, 운동화!” “너, 야! 너 말이야! 왜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엉?” 색출된 아이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손 들고 서 있게 한다.

가장 싫어하는 인간과 닮아버린…

아침 7시50분. 등교 시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모두 지각생이다. 지각생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일렬로 ‘엎드려뻗쳐’를 시킨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제정신이냐?” “넌 또 지각이야?” 지각생들은 엉덩이를 맞는다. 잘 부러지지 않게 다듬어놓은 몽둥이로 초범과 재범 등을 가려내어 엉덩이를 때린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벌이니까. 지각했으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바로잡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직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사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아침 9시.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시작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저 뒤에서 시시덕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서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지금 국기에 대한 경례 하는 거 몰라?”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중이다. 아이들의 줄이 흐트러지고 여기저기서 잡담이다.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정강이 차기, 뒤통수 치기, 꿀밤 주기 등 온갖 잡기를 동원해서 ‘질서’를 잡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장, 시작하자”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교사 1년차 때 나의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1년 내내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다. 국기 경례에 대한 다른 의견도 다양성으로 포용하지 못한다.

군대 시절에 많이 맞았다. 군기를 잡기 위해, 부대가 원활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 상명하복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많이 맞았다. 그때 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느꼈다. 인간으로서 존중이 아니라 오로지 계급에 의해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고 치를 떨었다.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그 폭력이 내면화돼 있었다. 당연히,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각인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똑같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사가 된 뒤 1년을 보내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가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그로부터 1년 뒤,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몽둥이를 들지 않은 손과 입과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말이다.

‘하지 않는 것’으로 출발하다

여학생들에게 여자다움을, 남학생들에게 남자다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성적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꾸중을 듣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을 해서 교무실에 불려와 교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수치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돌아가는 모습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머리 모양과 똑같은 복장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라고 힘있게 말하는 마이크 소리에서 군대식 복종 문화가 자리잡은 학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들지도 않은 학생 두발 규정에 의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아이들의 인권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에 모두가 국기만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국가주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화된 가치관과 그것이 반영된 제도가 ‘상식이고 정상’이라고 말하는, 단지 차이일 뿐인 것을 차별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소외된 약자(없는 자, 여성, 청소년, 성적 소수자, 장애인)의 권리는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미덕’이고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획일화된 상식’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획일화된 상식의 폭력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아마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장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금의 학교 구조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몇 명의 학생이 남았는지가 교사의 학생지도 능력으로 이해되는 입시지옥 학교 현실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인권은 사치가 되어버린 학교의 몰인권적 문화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무기력함이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것인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주입시키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삶으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삶에서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나의 삶이 획일적 상식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대상에게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말이다.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을 강요하는 모든 경향성을 반대한다. 그 경향성은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결국 모두에게 개인의 삶을 부정하는 억압과 폭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경향성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획일화된 문화와 규범에 반대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개인과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학교장의 지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학교 구조에 반대한다. 그것은 일방적 복종만을 통해 이 사회를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힘들 것 없는 동작과 몇 마디밖에 안 되는 문장이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 이 교사의 행동은 수구보수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에 이용되고 있다. 8월4일 집회에 나온 민주노총 조합원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은 과연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지금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나는 내 삶에서 작은 것이라도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하고 싶다. 국기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나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시켰고,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은 나를 교단에서 영구 퇴출할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나를 ‘편향된 가치관 교육’의 문제 교사로 낙인찍었다. 그리하여 나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의결 예정을 통보받았다. ‘획일화된 상식’의 벽이 아직 매우 높다는 것에 마음이 우울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나 자신에 대한 시험장이 될 것 같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

이 교사 사건은 수구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와 연결돼

▣ 수원=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이용석 교사의 징계위원회가 열린 8월4일 오후, 수원은 섭씨 35도까지 올랐다. 경기도교육청 앞에서는 40여 명의 동료 교사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땡볕 속에서 장시간 집회를 벌였다. 이 교사는 고민 끝에 징계위 출석을 결심하고 나왔다. 그는 “위원회에 들어가 징계의 부당성을 말하겠다”며 집회 군중을 뒤로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징계위는 오후 2시께 시작됐다.

국기 경례를 하지 않고 ‘편향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 회부까지 이어진 이용석 교사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수구보수 세력의 일련의 ‘전교조 죽이기’ 속에서 돌출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도교육청의 ‘장학지도’로 해결되던 사안이 <조선일보>에 의해 대서특필돼 사회 문제화되고, 급기야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가 개입하기 시작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조선일보> 등 수구보수 세력들은 전교조 부산지부의 통일교재 사건 등과 함께 이 교사를 지목하며 사상 공세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사 사건은 근본적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 개인에게 과연 불이익을 줄 수 있느냐는 논쟁적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은 이 교사의 행위가 공무원의 품위 유지와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화인권연대 등 39개 단체가 모인 인권단체연석회의는 8월3일 성명을 내어 경기도교육청의 징계 시도를 “우리 사회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검열하고 교사가 소신 있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징계위는 5시께 끝났다. 온도는 2도밖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 교사는 “가치관에 관한 문제는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답변을 했다”며 “이 때문에 징계하려면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해 이 교사에게 통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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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3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공무원법을 정말 해쳤을까

이용석 교사의 징계 근거가 된 두 조항, 법적으로 타당성 없어 … 징계가 오히려 교권과 자유권에 대한 침해가 된다는 사실이 심각

▣ 김진 변호사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과장된 말인 줄 알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겠다고 한 교사를 징계하겠다니,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지. 과장하기 좋아하는 기자가 부풀린 이야기겠거니 했다. 보나 마나 다른 징계 사유들이 잔뜩 있고 그중의 하나일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징계요구 사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수업시간에 한 몇 마디 말 때문에 징계를 요구한다는 것이 전부다.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한 말, 군대는 되도록 안 가는 게 좋다고 한 말,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 이란다.

국기에 관한 ‘법령’ 어긴 적 없다

그래서 당연히 초등학교 교사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이라면 이런 말에 나쁜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테니까.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사라는 것이다. 그것도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르쳐줘야 하는 ‘독서’ 선생님이란다. 징계 결과가 경징계도 아니고 정직 3개월(겨우 3개월이라는 생각은 금물, 보직·연금이 제한되고 교원 징계 가운데 해임 다음으로 중한 징계이다)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문제된 언급이라는 것이 사실과 다르고, 그동안 금지된 모의고사를 진짜 못하게 하고 ‘튀는 언행’으로 학부모들과 긴장관계를 빚어왔다거나, 부장교사가 학부모 명의의 진정서를 대필했다든가 하는 주변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순전히 “18살 학생들 앞에서 수업시간에 이런(그들이 주장하는 그대로)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 본다면, 이것이 과연 징계 사유가 될 수 있을까.


△ “‘곰표 씽크빅’으로 머리를 키우면 뭐하겠는가. 논술교사조차 전체주의와 소수자 권리를 이야기했다가 징계를 받는 교실에서 12년을 갇혀 살아야 하는데”. 8월7일 고려대에서 수시 1학기 논술고사를 치르고 있는 학생들.(사진/ 한겨레 윤종규 인턴기자)

경기도교육청이 법률상 근거로 인용하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는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법령 준수 및 성실의무이고, 제63조는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품위유지 의무이다.

먼저 법령 위반이라는 부분. 어떠한 법령인지 징계요구 사유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일단 ‘국기’에 관한 법령을 생각해본다. 우리 헌법은 국기에 대해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국기에 관한 규정으로 국기를 모욕할 목적으로 이를 손상시키거나 비방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 제105·106조가 있고, 법률상의 근거는 없지만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한 대통령령인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과 역시 법률상의 근거는 없이 국무총리가 훈령으로 정한 ‘태극기사랑운동 실천지침’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뒤의 두 가지는 모두 법률에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내용 역시 관리나 운동에 관한 지침 정도에 불과해 누군가를 징계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이 교사가 태극기를 모욕할 목적으로 손상하거나 비방한 일도 없으니 형법도 적용될 수 없다. 공무원법에도 청렴과 성실의무, 정치활동 금지 규정은 있지만 국기를 존중해야 한다거나 국기 경례를 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법령을 위반했다는 것인지.

두 번째 징계 사유는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품위’라는 것이 보는 사람과 계층에 따라 다를 수 있기는 하지만, 교육공무원에게 요구되는 ‘품위’란 “국민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직책을 맡아 수행해나가기에 손색이 없는 인품(대법원 2000년 6월9일 선고 98두16613판결 등)”을 말하지, 학교 관리자나 학부모들의 취향에 맞는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국기 경례나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이 법에서 말하는 품위유지 의무에 위반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교권의 핵심 ‘교육 내용 결정권’ 흔들어

그러나 이렇게 법률상 징계 사유가 없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두 가지 더 있다. 그 하나는 이것이 교육 내용에 관한 제한으로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존중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내용 결정권’은 교권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이를 헌법에서 특별히 보장하는 이유는, 교육이 외부 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교육자 내지 교육전문가에 의해 주도되고 관할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서 비롯되며, 인간의 내면적 가치 증진에 관련되는 교육문화 관련 분야에서는 개입이 가급적 억제되는 것이 온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헌법재판소 1992년 11월12일자 89헌마88 결정).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대학 교수와는 달리 교육의 ‘자유’를 가지지 않는다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교육 내용을 마음대로 정하는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문제 삼은 것은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교육과정의 틀 내에서 한 구체적인 수업 내용을 문제 삼는 심각한 수준이다.


△ 7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가운데)이 보수신문의 색깔 공세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독서를 지도하는 교사가, 전체주의와 소수자의 권리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것을 가지고 징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바로 이런 식의 국가적 개입이 주입식·획일적 교육의 폐해를 낳는다는 것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아무리 ‘곰표 씽크빅’으로 머리를 키우면 뭐하겠는가. 이런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교실에서 12년을 갇혀 있어야 하는데).

또 하나의 문제는 교육 내용의 결정권 문제를 떠나 이 교사가 자연인으로서 가지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도 침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문제로 삼고 있는 발언은 이 교사가 행한 수업의 전체적인 흐름도 아니고 자신의 견해를 아이들에게 말한 ‘표현’ 부분이며, 사회적 이슈에 대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의견’이다. 교사 역시 한 시민으로서 시민이 가지는 모든 권리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교육 목적에 위반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

“교원은 그의 수업 또는 교육활동에 있어서는 종속적 행정 집행자나 법규의 적용자가 아니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사립학교의 설립·경영자나 학생들의 부모 및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자들의 지시에 단순히 복종하는 사람도 아니다. 미래지향적, 가치창조적 입장에서 홍수같이 밀려드는 정보를 학생들이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학생들에게 사고방식을 길러주며 학생들로 하여금 이해력과 통찰력을 개발하도록 하여 지적인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하고, 학생들이 사물에 대한 자기 나름의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가치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학생을 지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헌재의 91년 판결을 다시 보라

내가 하거나 어느 무정부주의자가 한 말이 아니다. 바로 15년 전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이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동조합을 가질 수 없다”(헌법재판소 1991년 7월22일자 89헌가106 결정)고 하면서 근거로 단 말이다. 이제 이 말을 그대로, “전교조 교사의 편향 교육”이라는 일부 학부모 단체의 진정과 일간신문의 기사를 근거로 한 징계 앞에 되돌린다면 어떨까?


해콩 2006-08-3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 합니다

▣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이용석 선생님께

지난 8월4일 보충수업을 하기 위해 학교에 가 있던 중에 쉬는 시간마다 <연합뉴스> 사이트를 들락날락했습니다. 그날 선생님에 대한 경기도교육청의 징계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보도를 보았기에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어느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마침내 뉴스가 떴더군요. “국기경례 거부 교사 정직 3개월 중징계….” 혹시 파면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했던 터라 약간 안도가 되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노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당한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경쟁과 배제야말로 편향 교육

선생님, 실은 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습니다. 교직에 들어선 이후 한 번도 국기 경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가슴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바라는 행위 자체가 사무치게 싫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1년에 몇 번 전체 모임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노라’는 맹세의 주문 속에 고요히 가라앉은 아이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저는 사람들 눈에 띄기 싫어 대열 맨 뒤쪽으로 빠집니다. 얼마 전까지는 김선일, 전용철, 홍덕표씨가 생각났고, 이제는 마흔 살 나이에 장가도 못 가보고 경찰 방패에 머리가 짓이겨져 한 많은 ‘노가다’의 삶을 마감한 하중근씨가 떠올라 마음 아플 것 같습니다.

선생님, 알량한 게 양심입니다. 제가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한 곳은 경기도였습니다. 사립학교 공채에 합격해서 발령 통지를 받고 학교에 들렀을 때 교감 선생님이 대뜸 제게 “전교조에 들 거야, 안 들 거야?” 하며 재우쳐 묻더군요. 공교육과 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분이 우리 반 아이들을 불러서 제 수업 내용을 물어보는 일도 심심찮게 겪었습니다. 학교에 있다 보면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저는 혼자서 지킬 수 있는 게 있다면 끝끝내 지키고 싶었고,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 것도 그 일부였습니다.

선생님, 저도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수많은 세상 이야기를 나눕니다.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의아해합니다만, 선생님처럼 저도 그런 아이들에게 저처럼 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생이란 얼마나 복잡한 여정입니까. 그 숱한 계기 속에서 길어올린 제 세계관을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직선으로 뒤쫓아오게 하는 것은 제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입니다.

도둑질을 가르치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교사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거짓 없이, 자기 생각을 드러낼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교단에 로봇을 세우지 않고 사람을 세운 이유입니다.

<조선일보>가 편향적 교육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지만 12년의 학교 교육이야말로 곧 경쟁과 배제, 침묵과 타율을 내면화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편향적 교육이 아닙니까. 아이들끼리 쓰는 말로 ‘니 코나 닦을’ 일입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지난 수십 년간 온 국민을 상대로 해온 ‘극우 편향 세뇌 교육’도 이 기회에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나도 고발하라

선생님, 얼마나 비열하고도 무서운 일입니까. 한국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언론이 일개 고교 교사 한 사람을 지면에서 뭇매를 때리고, 결국 징계로까지 몰아가는 이 형국은…. 선생님,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일개 교사에 불과하지만 저도 선생님과 연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조선일보>가 최장집 교수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소동을 피울 당시의 홍세화 선생 흉내를 좀 내야겠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나 또한 이용석 교사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니, 나도 고발하라. 나 같은 교사가 제법 될 텐데, 다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이런 것도 당신들 양심의 발로라면 할 말은 없는데, 당신 양심이 소중한 만큼 남의 양심도 소중하다는 것만은 좀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당신들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하늘도 감복하고 있으니 이제는 좀 자제해주기를 바란다.”


프레이야 2006-08-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담아갑니다.. 교련까지 받았던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별로 나아진 것 없는 상황입니다. 고1때 싫은 걸 강요하시는 담임선생님과 붙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교무실에서 설교를 들었죠. 싫어도 해야하는 게 있다고. 개인의 선택권은 주지도 않고 말이죠. 상대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그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