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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2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이 책은 원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에게 천형처럼 주어진 원죄.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으나 어느 누구도 그 속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원죄.
인간의 모든 죄악을 가장 악랄한 형태로 타고난 듯한 캐시, 형을 질투하며 거칠고 잔인한 본능을 내보이는 찰스, 선하고 순수한 인물의 대표이나 또한 나약하고 흔들리는 연약한 인간인 애덤,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아비의 선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한 형 아론과 어미의 악을 타고난 듯한 동생 칼. 그리고 그 주변을 살아가는 새뮤엘 일가의 다양한 인물들과 조용히 주변에 머무르나 핵심을 일깨우고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중국인 하인 리. 이 모두가 나름의 천형을 안고 태어나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에이브라, 우리 어머니는 창녀였어."
"알고 있어. 네가 말했잖아. 우리 아버지는 도둑놈이야."
"내게는 어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어. 알겠어, 에이브라?"
"내게는 아버지의 피가 흐르지."
창녀인 어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는 죄투성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칼의 자의식. 칼은 형이 죽고, 어머니가 자살하고,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 고백하지만, 그 모든 불행의 사건을 자신 속에 흐르는 어머니의 피 때문이라고 여기는 칼은 비겁하다. 그가 저지른 모든 잘못은, 눈앞에 벌어져 있는 모든 잘못된 상황들은 칼 스스로는 헤어날 수 없는 그의 원죄 때문이다. 가장 비겁한 변명 아닌가. 가장 간편한 변명 아닌가. 이 모든 잘못을 나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돌릴 수 있다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천형으로 주어진 원죄 때문이라고 간편하게 탓할 수 있다니.
그러나 이 책은 인간 삶을 이런 비겁함 속에 숨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나, 그 앞에 펼쳐진 모든 삶의 순간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알려준다. 아니 단순히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3대에 걸쳐 펼쳐지는 애덤 일가와 그 주변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선포한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 인물인 새뮤엘 해밀턴과 칼의 아버지 애덤, 애덤을 곁에서 충실히 보필한 중국인 하인 리가 카인과 아벨에 대한 성서 속 한 구절을 두고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작가는 인간 삶에 대한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진리를 전한다.
"모르시겠어요? 미국 표준성서에는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라고 '명령'을 내려요. 여기서 죄는 무지로 볼 수 있죠. 그런데 흠정역 성서에는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약속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팀셸(timshel)'이라는 히브리어는 'Thou mayest(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로,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니까요. 요컨대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는 곧 '너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의미이지요. 잘 모르시겠어요?"
"[…] 교과서나 교회에서 '너는 다스려라.'라는 말에서 명령조를 느끼고, 그 말에 복종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너는 다스릴 것이다.'라는 글 속에서 신의 예정설을 느끼는 사람들이 또 수백만 명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미래를 좌지우지할 순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는 말은 다릅니다!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인간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리의 목소리는 승리의 나팔소리처럼 우렁찼다.
애덤이 말했다.
"리, 자네는 그것을 믿나?"
"그럼요, 믿고말고요. 게으름 때문에, 혹은 나약해서 신의 무릎 위에 주저앉아 '어쩔 수 없었어요. 길이 정해져 있는걸요.'라고 말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선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죠. 고양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꿀벌은 꿀을 만들어야 하죠. 거기에는 신성함이란 없습니다. […]"
신은 '너는 다스려라.'라고 명령하지도 않았고, '너는 다스릴 것이다.'라고 운명을 못박아 놓고 예언하지도 않았다.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여 인간에게 중대한 선택권을 주었다. 삶을 살아가는 순간순간 수없이 뻗어있는 길들 중에서 어느 길을 갈 것인가는 신의 명령에 의한 것도 아니고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카인과 아벨의 분신같은 애덤과 찰스 형제의 삶이, 그리고 아론과 칼 형제의 삶이 천형처럼 내려진 원죄에 의한 어쩔 수 없음이 아니고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에 의한 각자의 선택의 모습이라는 것을 작가는 분명히 한다. 우리네 삶의 모든 선택은 신의 명령이나 예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어리석고 미약한 인간들에게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자 했으나 실패하자 아론에게 창녀인 어머니, 캐시의 존재를 알리는 잔인한 선택을 한 칼. 그 여파로 캐시는 조용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길을 선택하고 믿기지 않는 사실에 맞닥뜨린 아론은 그 충격으로 군대에 입대한다. 아론의 입대 소식에 가벼운 뇌졸중을 일으킨 애덤은 결국 날아온 아론의 전사 소식에 다시 쓰러져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칼은 이 모든 상황의 전개가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하며 좌절하지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악에 의헤 정해진 길이라 여긴다.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그는 죄의식에 파묻혀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고 파멸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 자신의 핏속에는 천형처럼 주어진 악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피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라는 생각에 빠진다면 그 삶은 더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진창에 빠지는 것이다. 악에 지배받는 자신이 치욕스럽고 적의를 느끼고 경멸하게 되지만 그 악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에게는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원죄라는 비겁함 뒤에 숨어 자신의 삶을 죄의식에 파묻고 파멸의 길을 걸으려는 칼에게 애덤은 구원의 손길을 던지고 눈을 감는다.
"팀셸……."
애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너는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원죄라는 허명 뒤에 숨어 비겁하게 살지 말아라. 너에겐 네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갈 자유가 있단다." 바로 이런 말을 애덤은 '팀셸'이라는 한 단어에 축복처럼 담아 칼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죄를 타고났을지 모르지만 지금껏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삶의 모든 길들은 어쩔 수 없음이라는 운명의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제 칼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