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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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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다 내음이 물씬 나는 산문집이 또 있을까. 바람과 파도로 빚은 듯한 산문. 책을 비틀어 짜면 금방이라도 소금기 가득한 물이 후드득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새벽 어시장의 활력이 느껴지는 것 같은 생생한 표현과 맛깔스러운 사투리, 걸쭉하고 능청스러운 입담,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야무진 기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 '한창훈'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소설이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어느 책을 살펴보아도 '바다와 섬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눈에 띄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문도에서 태어나 바다 곁에 머물며 그곳에서 얻은 언어와 정서로 글을 지었으니 그의 글에서 바다 내음이 짙을 수밖에. 그가 쓴 산문집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는 그의 글쓰기가 어디에서 출항하여 닻을 내리는지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한창훈의 소설을 읽는 맛은 냉동식품이나 방부처리된 포장식품만 먹다가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를 먹는 맛과 같다고나 할까. 도시적인 감수성을 여유있게 비껴가면서도 재미가 여간 아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이렇게 정면으로, 능청스럽고도 건강하게 그릴 수 있다는 건 그의 작가적 역량도 역량이지만 남다른 체험의 소산일 듯싶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그의 소설을 읽고 평한 말이다.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 같은 맛. 해녀의 말간 맨 얼굴처럼 수수하지만 진솔하고 건강한 문장을 뜻하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전에 본 적 없는 말간 문장에 반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밑줄을 그었다.

 

p.34

항해와 노동으로 채워졌던 이십대 후반의 시절은 기억 속에 촘촘한데, 삶의 매 시기마다 닻 주었던 자리는 이렇듯 흔적이 없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저 들어온 식혜 그릇'(p.59)으로 표현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 일은 '얼마 되지 않은 영토를 둘러보는 가난한 왕처럼 길을 나선다'(p.101)고 표현한다. 그의 이런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 같은 문장의 맛은 바다를 표현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p.97

바람 불지 않는 바다는 적도뿐이다. 그래서 바다의 특산품은 대구나 참돔이나 돌김보다 바람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다.

 

p.109

당신이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중에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

몇 년 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유학 온 여학생에게 내가 물었다. 흔히 가족이나 친구, 또는 연인 중에 하나를 댈 텐데 서울 생활 삼 년째라는 그녀는 바람이라고 대답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독한 바람. 극도로 추웠던 바람. 너무너무 지겨웠던 그게 가장 그리운 거란다. 허락한다면 고향에서 한 사흘 그 바람만 맞다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가 됐다.

하매, 여인네는 서울 가는 기차에 몸 실었겠다. 4년 동안 그녀를 감싸고 있었던 바람과 파도와 소금기가 문득 아득한 먼 옛날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불현듯, 이곳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면 울란바토르 출신의 여학생이 그러했듯, 그 사나운 바람과 거친 파도가 그립구나, 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는 한창훈이 글을 통해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 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비옥한 땅이 되어주고 햇볕과 물을 제공해준 창작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다. 우리는 뇌나 심장과 같은 신체기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하나만 썩거나 발톱 하나만 빠져도 잠을 못 잔다. 그에게는 썩은 이, 빠진 발톱 같은 존재가 바로 섬사람인 것이다. 있는 자의 얘기를 하면 그건 정치지 문학이 아니라고, 그래서 이 땅에서 가장 소외받은 섬사람을 소재로 글을 쓰는 거라고 말하는 작가 한창훈. 자신만이라도 잊고 사는 변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자꾸 확인시켜서 중심만을 위한 삶이 아닌 온전한 한 덩어리가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삶을 궁리하는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p.322 초판 작가의 말

각자 다른 주민번호처럼 그들은 자신만의 율법과 국경과 보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걸어다니는 공화국들이여 만나주어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흔적이자 이력입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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