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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달에 읽었던 구작가의 <그래도 괜찮은 하루>가 떠올랐다. 마흔세 살의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15년간 투병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 병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이 책의 저자는, 청각을 잃은 것도 모자라 시각까지 잃어야 하는 불행 앞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감각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구작가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파킨슨병에 걸려 몸이 점점 굳어가지만, 청각을 잃은 걸로도 모자라 시각까지 잃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기며 재미있게 살고 있는 그녀들.

 

문득 올초 신랑과 떠난 오키나와 여행이 생각났다. 오키나와는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한 자동차 중심 사회라 짧은 일정 안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려면 렌트카를 빌리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신랑이 운전면허를 딴 지는 꽤 됐지만 평소 운전을 할 일이 없어 운전석 위치가 바뀌는 일본에서 운전을 하는 것이 심히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다른 여행객들의 렌트카 이용 후기를 샅샅이 찾아보고 일본 영화에서 운전하는 장면까지 찾아보면서 운전대 방향이 바뀌는 상황에 대비한 후 오키나와로 떠났다.

 

첫날은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켜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왼쪽 차선에 바짝 붙여대는 습관 때문에 고생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이 풀려서일까, 여행 셋째날 주차를 하다가 벽에 살짝 차를 박고 말았다. 그때부터 신랑은 얼음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나는 핸드폰으로 오키나와 여행 카페에서 사고 발생 시 물어야 하는 위약금에 대해 찾아보았다. 신랑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고, 나 역시 위약금 걱정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아직 우리의 여행은 하루가 더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위약금이 얼마나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렌트카 안심 보험도 가입해두었고, 다른 차와 부딪힌 게 아니라 주차하다가 벽에 긁힌 거라 추가 피해 상황도 없다. 게다가 살짝 부딪힌 거라 차량 기스도 크지 않고. 어차피 사고는 일어났고 신랑도 낯선 환경에서 운전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것 때문에 내가 잔소리를 해서 남은 하루를 망친다면 그건 더 속상하지 않을까?

 

까짓 꺼 위약금은 내면 되고, 사고 신경 쓰지 말고 남은 하루 재밌게 놀자!”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되려 큰소리를 치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신랑도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우리 둘 다 위약금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미 일어난 사고에 대해 전전긍긍하기보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면서 화끈하게 받아들이고 나니 남은 일정도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아무런 위약금 없이 안심 보험으로 사고를 처리하고 홀가분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p.19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는 거지?’

 

p.21

만약 그때 침대에 계속 누워 병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지냈다면 어땠을까.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치매에 걸리고,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상상하며 그 시간을 보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고, 그저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똑같은 12년이라도 그 결과가 확실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내가 2001 2월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깨달은 삶의 진실이다.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렌트카 사고와 파킨슨병을 진단 받은 저자의 상황을 비교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똑같지 않을까. 여행지에서의 하루든, 12년의 투병생활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는 똑같으니 말이다. 낼 지 안 낼 지도 모르는 위약금 때문에 신랑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시간을 망쳤다면 우리 부부에게 오키나와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여행지에서 운전을 하게 될 때마다 쓰린 기억이 떠올라 싸움으로 번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자세.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그리고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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