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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감사함을 느끼기보다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오늘 하루.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열병을 앓고 청각을 잃은 사람에게 이제 눈까지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위인전에서 읽었던 헬렌 켈러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5년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누군가의 이야기. 바로 귀가 큰 토끼 캐릭터 '베니'를 그린 구작가의 실제 이야기다.

 

P.24-27

귀가 들리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었던 저는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했어요. 엄마는 말을 해보지 못한 제 혀가 굳을까 봐 설탕을 입 주변에 묻혀 빨아 먹는 연습을 하게 했어요. 계속 움직여야만 혀가 굳질 않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소리를 낼 수 있게 제 손을 엄마의 목에 갖다대고 그 울림을 느끼게 해주셨어요. 그러고선 다시 제 손을 제 목에 갖다 대고 비슷한 울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연습을 쉬지 않았어요. 그냥 놀고 싶었던 저와 하나라도 꼭 가르쳐주고 싶었던 엄마. 아무도 모르는, 나와 엄마만이 아는 시간.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지루하고 힘겨웠던 시간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네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상대적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불행에 위로를 얻고 남의 행복에 좌절한다. '이 사람은 나보다 처한 환경이 불우하니까, 이 정도면 난 행복한 편이야.' 혹은 '누군 나보다 이만큼 더 가진 게 많은데,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불행해.' 이 책이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가진 조건 안에서, 내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남들에겐 다 있는 것들이 왜 나에겐 없느냐고, 자신에게 없는 것만 찾으며 처한 환경을 불평하고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에게 없는 나만의 것을 찾아 가꾸고 만들어가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P.58

남의 조건과 환경을 부러워하다보니 부러움이 비교가 되어버리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행복지수가 낮아진 게 아닐까. 내가 가진 것이 남보다 없다고 생각한 건 단순한 비교가 아니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은데 스스로 포기한 것은 아닐까.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행복과 불행은 절대적인 기준과 잣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과 불만에서 행복과 불행의 명암이 나뉜다. 구작가는 귀가 들리지 않고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된 불행 앞에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불행을 출발점으로 삼아 소리를 못 듣는 자기 대신 잘 들어주었으면 하고 귀가 큰 토끼 캐릭터 '베니'를 만들었다. 청각을 잃은 것도 모자라 이제 시각까지 잃어야 하는 불행을, 오늘부터 당장 버킷리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자극제로 삼는다. 눈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의 또 다른 인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감각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P.246

세상에 시각장애인 화가가 생각보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들에게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화가는 물감의 온도를 느끼면서 색을 고르고, 또 어떤 화가는 다른 한 손으로 더듬어가며 그리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귀가 안 들리지만 짧은 순간 많은 부분을 스캔하는 능력이 있고, 깊은 관찰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으니, 눈이 안 보이면 촉각과 후각이 굉장히 예민해질 것만 같아요. 물감의 온도, 그런 걸 섬세하게 느낄 수 있을지 아직은 상상이 안 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눈이 보일 때 수많은 색깔을 보았으니, 그 색들을 모두 기억해서 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손바닥이나 손에 쥐어진 붓으로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화가가 될 것 같아요. 슬픔 감정도 기쁜 감정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불행을 불행으로서 끝을 내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불행 앞에 우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불행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불행을 모면할 길은 없다. 불행은 예고 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불행을 밟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우리에게 있다. 불행은 때때로 유일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불행을 이용할 수 있다."

- 오노레 드 발자크

 

발자크의 말처럼 불행을 모면할 길은 없다. 귀가 안 들리는 구작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은 불행이 찾아왔듯이, 불행은 예고 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처럼 불행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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