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사바하틴 알리 지음, 이난아 옮김 / 학고재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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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책을 읽다가 곧잘 울었다. 눈물이 많은 편이기도 했지만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불쌍한 것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부터 맺혔다. 지금도 대책 없이 울 때가 있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여느 사람들과 좀 다르다.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눈물이 솟구치는 때가 많으면서도 유독 ‘사랑’이야기에는 울지 않는다. 특히나 감동적이기를, 순애보이기를, 신파이기를 작정하고 쓴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팔짱을 끼고는 비판하는 태도로 읽으니 더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꽤 감동하면서 읽었다는 사랑 이야기를 읽고 눈물을 흘린 일은 드물고, 그런 작품을 좀처럼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런 내가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읽으면서는 울컥 무언가가 치밀더니 정말 뜨겁게 울어버렸다. ‘라이프 에펜디’ 그의 회한과 그의 어리석음. 그의 절망과 그의 한숨. 그의 고통과 그의 눈물이 모두 나의 것인 듯 느껴져서 걷잡을 수 없었다.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그녀의 삶이 어떤 면에서는 한없이 가엾어서 눈물이 났다. 라이프와 그의 마돈나 ‘마리아 푼데르’ 두 사람 모두 애처로워서 더 슬펐다. 아, 이 어리석은 사람들….


터키 문학은 아직까지는 내게 낯선 영역이다. ‘오르한 파묵’ 정도나 알까? 그런데 나는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대단한 작가임은 알겠는데, 왠지 내 취향에는 잘 맞지 않는 그런 작가 있지 않은가. 오르한 파묵이 내게는 그렇다. 그러던 터에 ‘사바하틴 알리’ 그를 이렇게 뒤늦게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 아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찾아왔다.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로. 이 작품을 읽다보면 라이프가 마리아의 자화상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탕달 신드롬’과도 같은…. 그런데 내가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읽으면서 라이프가 마리아의 자화상을 보면서 받았던 그런 충격을 고스란히 느꼈다면 과장일까.


사바하틴 알리, 그는 왜 이토록 늦게 찾아왔을까? 감시와 검열이 심한 체제, 터키 정부로부터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혀 온갖 억압을 당하던 그는 조국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게 되자,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로 망명을 결단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터키 정보국 소속으로 짐작되는 극우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때는 1948년.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출간한지 5년이 흘렀을 즈음이었다. 그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고 시신 또한 죽은 지 두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었지만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는 반세기 이상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해지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 터키 출판 시장에서는 여러 해 1위 자리에 올랐으며 2016년에는 영미권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이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 보면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라는 제목은 독자가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치명적인 여인에게 반해서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다가 결국은 어쩐지 버림 받는, 왠지 행복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랑을 한 불쌍한 남자의 시점으로 그려진 이야기일 것 같다. 나조차도 제목과 책표지를 봤을 때는 이런 예상을 했고 그런, 어쩌면 진부한 사랑이야기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않는 터라, 처음에는 이 작품을 외면했다. 그런데 알라딘 추천 시스템이 자꾸만, 이 책 한 번만 눈여겨 봐달라고 들이미는 게 아닌가. 아, 정말 귀찮게 하네, 어떤 작품이기에 그러는지 자세히 정보를 읽다 보니, 장바구니에 이 책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를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호기심이 발동했고, 미리보기로 책을 몇 장 넘겨 읽다 보니, 왠지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았다. 단 몇 쪽 만으로도 문장이라든가, 그 문장 곳곳에 담긴 의미가 ‘그저 단순한 사랑이야기’는 아닐 듯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예상은 꼭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절반쯤 읽었을 때 이미 올해의 발견이다, 발견, 이런 흥분에 휩싸였다.


은행 말단 직원으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한 나(‘라심’)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번번이 퇴짜만 맞고 곧 완전히 곤궁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때 우연히 만난 옛 친구 ‘함디’의 도움으로 새 일자리를 얻게 되고 그곳에서 동료로써 ‘라이프 에펜디’를 알게 된다. 그를 지켜볼수록 그가 남들과는 무척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라심. 어느 날 그가 그린 그림을 우연찮게 보고 나서는 ‘라이프 에펜디’에 대한 호기심은 호감으로 변한다. 그렇게 서서히 ‘라이프’와 가까워지면서 그가 어쩌다 그토록 삶에 무심한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하여 그저 목숨만 붙어 있는 존재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그의 비밀에 조금씩 다가서게 된다.

라이프가 무척이나 오랜만에 마음을 열게 된 존재인 라심에게 자신의 노트를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하고, 그 노트를 통해 라심은 라이프의 지나간 삶을 만나게 된다. 그 노트 속에서 라이프와 마리아의 통렬하고도 절절한 사연이 펼쳐진다. 이렇듯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는 액자식 구성인데, 중심 이야기인 라이프와 마리아의 사연은 말할 것도 없고, 액자 밖 이야기 라이프와 라심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처음에 라심은 라이프를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아간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남들과 조금 다른 면모(삶을 초월한 듯한 태도)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호기심 및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라이프와 마리아의 관계에서도 조금 모양을 달리할 뿐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라이프가 마리아를 우연히 알게 되고 호감을 느끼는 장면들이 라심이 라이프에게 느끼는 그것과 강도만 다를 뿐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가련하고, 심지어 가장 바보 같은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복잡한 영혼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러한 내면을 헤아리려 하지 않고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섣불리 이해하고 손쉽게 판단’하고 만다. 라심이나 라이프나 그들 모두 그렇게 라이프를, 또는 마리아를 쉽사리 자신의 잣대만으로 판단하고 다가선다. 어쩌면 마리아 또한 라이프에게 그러했으리라. 이렇게 시작된 관계는 그들 인생에 저마다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라심에게 라이프가 그러했고, 라이프에게는 마리아가, 마리아에게는 라이프가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호감을 느끼며 다가서고, 인간관계를 맺어서 그 관계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 그들은 행복감에 젖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하지만 그 관계가 틀어지는 것 또한 이처럼 섣부른 자기만의 판단(오해 또는 망상)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라이프가 바로 그런 씻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 결백한 사람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배신이며, 그러한 죄악을 저지른 나는 절대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것’(291쪽)을 비로소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유폐해버리지만 이미 너무나도 늦었다.

‘라이프’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이 바보! 하면서 가슴을 치게 된다. 그 가운데 압권은 그가 다시 터키로 돌아가기로 하는 장면이다. 진심으로 이 답답한 사람을 어이할꼬 싶어진다만, 동양 그것도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남자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마리아와 그런 면에서 또 한 번 좁힐 수 없는 차이 또는 간극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바로 그 장면에서 대부분은 그의 선택을 말리고 싶어지리라. 왜냐하면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 사건은 결국 운명이 우리를 희롱하는 ‘진부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임을 모두가, 어쩌면 라이프 그 자신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진부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에 희롱당하는 장난감일 뿐이며, 진짜 삶은 이런 평범하고 하찮은 사건 조각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익히 보아왔다. 우리의 논리와 세상사의 논리는 절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여자가 기차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창틈으로 석탄 부스러기가 날아와 눈에 들어가고, 여자는 무심하게 눈을 비빈다. 이렇게 평범하고 사소한 사건들이 맞물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 (250쪽)



라이프가 그토록 마리아를 사랑했음에도 끝내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불멸의 그 마돈나를 잃고 마는 까닭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멀게 하는’ 그 평범하고 사소한 사건들 때문이다. 대부분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 삶 또한 그러하기에 그의 이야기는 통렬하게 가슴을 울린다. 그 어느 누구에게나 삶에서 한 번쯤은 ‘마돈나’와 같은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한 순간의 ‘석탄 부스러기’와도 같은 사소한 일들로 그런 존재를 가졌다가도 놓쳐버리고 만다. 거기에서 삶의 온갖 비애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단순한 ‘러브스토리’로만 읽히지 않는 것이다.


라이프의 ‘마돈나’와도 같은 존재를 단 한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었던 사람,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행복하게 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125쪽) 이런 심정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바하틴 알리의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를 절대로 쉽게 읽고 쉽게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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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1-2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어도 눈시울이 따뜻해지는데요... 맘도요...

잠자냥 2018-01-24 14: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ㅎㅎ 그런데 책은 아마 훨씬~~ 좋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