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을 읽고
전망 좋은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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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좀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다. 너무 길다 싶을 정도로 불필요한 세부 묘사라든지 시대적 배경이 현대와 동떨어지기 때문에 소설에 몰입이 덜 된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데 E.M 포스터의 작품은 그 배경이 현대와 살짝 동떨어져 있어도 흥미진진하고 무척 재미있다. <전망 좋은 방> 역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의 시대 배경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다. 책 표지에 있는 남녀를 보면(1985년 제임스 아이보리의 동명 영화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루시 허니처치’와 어떤 남자가 나중에 잘 될 것인지 뻔히 보인다. ‘행복한’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뻔한(?) 결말의 로맨스 소설인데도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포스터의 아이러니컬한 문장이 큰 역할을 한다. 비꼬는 듯, 비아냥대는 듯, 곳곳에서 키득키득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포스터의 소설이 거의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진 이유는 아마도 생동감 있는 캐릭터, 마치 실제로 어떤 전경을 바라보는 듯한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묘사’가 아닐까. 특히 이탈리아의 제비꽃 밭에서 루시와 조지가 키스를 하게 되는 장면 묘사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전망 좋은 방’은 여러 가지로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루시와 샬롯이 묵게 된 펜션의 방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좋지 않은 전망’을 갖고 있다. 창을 열고 이탈리아 풍경을 한껏 바라보기를 꿈꿨던 루시에게 ‘좋지 않은 전망’의 방은 얼마나 청천벽력인가! 낙담하고 있던 그녀에게 펜션의 또 다른 손님인 애머슨 부자가 나타나 자신들은 남자이니 ‘전망’ 따위는 필요 없다며 ‘전망이 좋은’ 자신들의 방을 사용하라며 루시와 샬롯에게 방을 바꾸기를 권한다. 이때 루시는 처음으로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조지 애머슨’을 처음 알게 된다. ‘전망 ’좋은 방’은 첫 번째로 루시와 조지가 서로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원래 사귀던 사람인 ‘세실’과 결혼을 약속한 뒤 루시와 세실이 나누는 ‘전망’에 관한 대화에서 ‘전망 좋은 방’이 갖는 두 번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정말 그래요. 아무래도 제가 시인인가 보네요. 당신을 생각하면 배경은 언제나 방 안이에요. 재미있는 일이네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응접실입니까? 바깥 전망이 보이지 않는?" "네, 전망이 없는 방이에요. 그게 뭐 문제인가요?" "나는 당신이 나를 생각할 때 이런 넓은 야외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그가 질책하듯 말했다. "세실,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p.156)

루시는 세실을 생각하면 ‘전망 없는 방’을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아마도 이 구절을 읽으면 루시에게 걸맞은 상대는 역시 루시가 좋은 ‘전망’을 떠올릴 수 있는 ‘조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열려 있는 공간, 다른 모든 것들을 꿈꿀 수 있는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교양, 인습,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 즉 ‘좋은 전망’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전망 좋은 방’을 포기했던 남자 ‘조지’가 ‘루시’가 찾고 있는 그 ‘남자’라는 것을 이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은 ‘루시’뿐.

품격을 내세우는 영국 귀족들이 보기에 한없이 모자란 조지와 그의 아버지 ‘애머슨 부자’를 내세워 포스터는 케케묵은 인습과 고루한 예의범절에 갇혀 사는 ‘중세 시대’ 사람들을 꼬집는다. 그러면서 인간의 자유,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과 몸이 원하는 진실한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찬양한다. 100여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이 지금도 여전히 많은 공감을 얻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전망’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을 선택하는 수많은 ‘중세 시대’의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열정이란 저항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예의범절이라든가 심사숙고라든가 그 밖에 교양이라는 이름의 각종 족쇄를 잊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통행권이 있는 곳에서 허락을 구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p.158)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루시가 조지 에머슨을 사랑한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의 입장에 선다면 그게 그렇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정리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살기는 혼돈스러우며, 우리는 언제나 <신경>이라든가 다른 피상적인 말들로 내면의 욕망을 가려 덮으려고 한다. 그녀는 세실을 사랑했다. 조지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누가 그녀에게 두 문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줄 것 인가? (p.206)

이런 식으로 갑자기 포스터(작가)가 개입하는 장면 너무 웃기다. ㅋㅋ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보다는 제 사랑의 방식이 더 낫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맞아요. 제 방식이 더 낫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 품에 안겨서도 당신 자신의 생각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루시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루시, 머뭇거리지 마요……. 이렇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 지난봄에 그랬던 것처럼 그냥 나한테 달려와요. 그런 뒤에 내가 예의를 갖추고 모든 걸 설명할게요. 나는 그 남자가 죽은 뒤로 계속 당신을 좋아했어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부질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하고 결혼할 여자인걸>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이 세상이 온통 물과 햇빛에 감싸여 눈부시게 반짝일 때 다시 당신을 만났어요. 당신이 숲에 들어왔을 때 나는 달리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외쳤어요. 살고 싶어서, 내 인생에 기쁨을 줄 기회를 잡고 싶어서." (p.241)

꺄.. >_< 멋있는 조지!
 
사랑하는 사람들은 헤어질 수 없어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요. 사랑을 비틀고 무시하고 혼탁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걸 떨쳐 버릴 수는 없어요. 경험을 통해서 나는 시인들의 말이 옳다는 걸 알아요. 사랑은 영원합니다." 루시의 눈에 분노의 눈물이 솟구쳤다. 분노는 곧 사라졌지만 눈물은 남았다. "다만 시인들이 이걸 좀 말해줬으면 좋겠어. 사랑은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말이야. 몸 자체는 아니지만,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아! 우리가 그걸 인정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고통이 줄어들까! 그런 작은 솔직함이 우리 영혼을 해방시킬 텐데! 아가씨의 영혼 말이에요, 루시양! 나는 영혼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말을 둘러싸고 퍼부어지는 미신들 때문에 말이오. 하지만 우리에겐 영혼이 있어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있어. 그리고 아가씨는 지금 그 영혼을 억누르고 있어요. 그걸 가만 두고 볼 수가 없구려. (중략) 하지만 우리 아들놈이랑 결혼해요.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또 사랑이 서로 응답하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를 생각해보면……. 아들놈하고 결혼해요. 이세상은 다 그런 일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요." (293-294)




이탈리아 제비꽃 밭에서의 키스신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상상이 더 낭만적인가;)



꺄.. 이 장면 정말 낭만적이다; (루시 머리가 좀 웃기지만;;)



두근 두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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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9-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오스카 수상식에서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서 참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구나 싶었는데 포스터의 책이
었군요.

아쉽게도 영화나 책 모두 만나 보진 못
했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안고 있네요.

잠자냥 2017-09-21 15:07   좋아요 0 | URL
영화와 책 모두 좋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만나보시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