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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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는 참 이상한 공간이다.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의 공간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선후배, 교수 학생이라는 서열 중심의 권력관계를 통해 대부분의 생활들이 통제된다. 후배는 선배에게 복종해야 하며, 학생은 교수에게 복종해야 하며.... 그러다보니 정작 선배나 교수에게 할말이 있어도 그냥 참아버리기 일쑤이며 혹시라도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는 왕따가 되고 만다.

이런 고질적인 서열문화의 병폐는 ‘학문’과 결탁하면 더 심각해진다. 절대로 후배는 선배의 학문적 업적을 비판해서도 안 되고, 제자는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비판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더 심각해진다. 석사 논문을 따기 위해서 일단 지도교수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그렇다. 그 지도교수가 지정해주는 몇 개의 주제들을 벗어나서도 안 되고, 논조부터 참고할 서적들까지 교수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형편에 청출어람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석사, 박사 과정을 밟는 이들이 대학에서 시간 강사 자리라도 찾을 심산이면 이런 눈치 보기는 더 심해 질 수밖에 없다. 학문의 고질적 병폐. 그중에서 가장 심한 장유유서와 인맥주의 문화로 인한 스승에 대한 제자의 비판 불가침-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우리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스승 비판 / 전공불가침의 법칙 / 논문 형식의 실험 / 이성의 세계에서 추방된 주제들 / 생존 인물에 대한 탐구 / 진보 없는 보수, 보수 없는 진보 / 김우창 혹은 학제성 / 참을 수 없는 생태의 비생태성 / 문화비평에 ‘문화’와 ‘비평’이 없다 / 대중적 글쓰기의 허구성 / 근대성 콤플렉스'의 주제들로 나눠져 비교적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다. 물론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물음에는 여전히 답을 주지 못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공불가침의 법칙은 예를 들면 이렇다. 국문학을 전공한자가 사회학적인 주제에 관해 신문이나 칼럼 기고를 했다 치자, 그것이 또 나름대로의 비판적인 글이라면 보통 사회학 관련 분야의 학자들에게서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또는 “국문학 전공자가!”라며 일축해버리는 경향을 말한다. 비단 같은 전공 내에서도 그렇다. 동양철학 전공자가 서양철학 전공자의 학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 혹은 그 반대 등등의 현상에 거의 모든 학계의 반응은 “전공자도 아니면서, 전문가도 아니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만 나불댄다”라는 식. 이런 현상으로 학문 간의 자유로운 경계 넘기를 통한 풍부한 질적 논의는 이루어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논문 형식도 그렇다. 석사 논문을 보자. 대부분 지도 교수들이 즐겨 쓰는 논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된말로 ‘내용이 부실하면 형식이라도 제대로 갖춰라, 그러면 통과된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에세이 수준의 논문 형식은 논문이 아니라며 신변잡기식 칼럼 란으로 실려 버리는 현상들. 형식주의와 체면중심 겉치레 중심의 문화가 '논문 형식' 지키기에서도 꾸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자간, 장평, 글자 포인트 하나하나까지 맞추느라 진땀 뺀 기억을 돌이켜 보면 나 또한 정말 구역질이 나올 정도다.

생존 인물에 대한 연구가 금기처럼 되어 있는 현실도 그렇다. 일찌감치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에서 인물 비평을 시작한 것에 대해 학계에서 인물 비판이라고 들고 일어선 것이 단적인 예다. 물론 한 인물의 학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인격적 비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살아있는 인물 건드리는 행위가 반역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과연 살아있는 학문적 업적이 나올 수 있을까?

문화비평에 관한 부분이나 대중적 글쓰기의 장에 와서는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문화’에 대한 말빨만을 세우는 논객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는데, 진정 ‘문화’에 대한 ‘비평’은 사라졌다. 보통 개성적인 혹은 특이한 말투나 문체들을 앞세워 영화나 대중 문화에 대한 '똥침 놓기' 정도의 수준으로 그치고 만다. 문화 비평이 진정한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행동이 따라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 ‘문화 비평’은 논객들의 말빨 세우기에 그치고 있다는 점.

과연, 단지 쉽게 쓰는 것만이 능사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결코 예전 같으면 건드리지 못했을 학문적 영역도 쉽게 대중에게 읽히고, 팔려나갈 책으로 둔갑해서 이런 책들이 서점가를 우후죽순으로 뒤덮고 있다. 하지만 쉽게 대중적인 글쓰기 = 학문의 얕은 탐구에 대한 면죄부처럼 남발되고 있는 경향에 대한 비꼼은 이런 종류의 책 양산에 한몫하고 있는 몇몇 학자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듯 하다.

금기를 깬 자 그 자신이 금기가 된다는 이 책의 구절처럼 스승비판 불가침의 금기를 깨려다 학계의 왕따가 되고만 이명원의 예를 보면, 한국 땅에서는 진짜 올곧게 학문*만*하기란 참 힘든가 싶기도 하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이 참에 싹 접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말 못하고 내용보다는 논문 형식에 절절 매면서 골머리 썩을 생각을 하고, 그러면서 또 강사자리 하나 남을까 하여 되지도 않는 인맥을 눈치 보며 만들 생각을 하면. 그저 이렇게 읽고 싶은 책 읽으면서 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해보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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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8-23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배웠다는 넘들, 학계가 저런데 인터넷 블로그계, SNS계는 어떻겠나요? 허접한 비논리/무논리, 뜬구름 잡기식의 공허한 글에 대해 지적하고 열폭질에 대해 비판하면,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고 비아냥대기나 합니다. 그들의 반박이란 게 고작 내가 내 맘대로 쓰는데 뭔 오지랖질이냐, 걍 내비둬, 니나 잘햐, 이딴 식입니다. ㅎㅎㅎ 우리 한국 찌질이들은 다 똑같다고 봅니다. 아래나 위나 찌질이인 건 마찬가지란 것이죠.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72년쯤밖에 안 됐으니까 당연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를 과소평가하는 경우도 많지만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그 수준에서 놀아야죠 뭐~ ㅎ

갈 길이 멉니다. (← 이 문장은 댓글을 입력하려는 순간, 메이저 리그 야구 텍사스 레인저스 대 LA 에인절스 경기 중계 캐스터가 “갈 길이 멉니다” 하더라고요. 왠지 딱 맞아떨어지는 ‘멘트’인 것 같아서 적어넣었어요. ㅋ)

잠자냥 2017-08-23 13: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qualia 님 글을 RSS 리더기로 잘 구독하고 있는데,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암튼 qualia 님 서재에서 하시는 말씀 구구절절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 댓글도 그렇고요. ㅎㅎ

2017-08-2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