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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가끔씩, 아니 어쩌면 매순간,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 가슴 속에 그 무언가가 꽉 들어차서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너무나도 많이 비어있었기에,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숨 막히게 만든 것 같았다. 뭔가가 들어있어야 하는 곳이 한없이 깊고도 깊은 빈 공간으로 남겨지는 그 순간들이 나에게… 문제는 그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지도 모를 만큼 내 머리까지 점점 그런 숨 막힘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채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한 채, 그냥 그런 답답함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숨을 쉰다. 휴 ㅡ.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한숨도 꼴에 숨이라고, 나도 모르게 숨의 목적이 되는 생을 찾게 되는 책, 『허기의 간주곡』을 만나게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가장 먼저 끌렸고, 더군다나 작가가 서울 체류 중에 집필한 작품이라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 『허기의 간주곡』이었다. 또한 그의 어머니를 모델로 쓴 소설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도 그런 것들에 대한 많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단순한 호기심 따위에 크게 영향 받지 않지 않는 작품이기에 말이다.
『허기의 간주곡』은 주인공 ‘에텔 브룅’이 세상으로 나가는 과정,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종조부 솔리망의 관심과 사랑 속에만 존재하던 에텔은 그의 죽음과 동시에 아버지 알렉상드르와 어머니 쥐스틴의 불화, 그들을 감싸고 있던 세상에서 벌어진 전쟁 등으로 인해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던 코탕탱 가의 살롱을 벗어나 뜻하지 않게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그냥 회피해버리고 마는 낯선 세상 속에서, 에텔은 그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구멍들을 메워가며, 열 살의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아이에서 어느 한 순간 훌쩍 자란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야기는 개인의 삶으로 큰 세상을 이야기하고, 큰 세상 속의 개인을 이야기함으로써 지난 기억, 지금의 기억, 혹은 우리 앞에 펼쳐질 날들에 대한 기억을 펼쳐 놓는다. 그렇게 ‘르 클레지오’는 이 작품에서 ‘기억’의 간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허기’를 이야기하고, 그 허기를 통해서 드러나는 ‘생의 의지’를 통해서 우리의 삶,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허기의 간주곡』은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며 시작해서 지난 허기의 기억을 들려준다. 군인들이 던져주는 음식들을 잡기위해 달려가던 기억, 기름진 음식에 굶주리던 기억, 처음으로 만난 흰 빵에 대한 기억 등. 하지만 쉽사리 나의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작가가 가진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게끔하는 그런 허기를 나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육체적인 허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그렇다고 또 다른 허기를 느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작가가 지난 허기의 기억에 이어 들려주는 또 다른 허기처럼 말이다.
많은 이들이 욕심은 나쁜 것, 단점이라고만 생각하며 그것을 경계하고 멀리하려고만 애쓴다.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그 욕심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그것으로 인해 뭔가를 더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애쓴다. 평면적으로 좋게만 보이는 어떤 것들보다 오히려 나쁘게만 보이는 어떤 것들이, 삶에 있어서 보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허기의 간주곡』을 통해서 ‘허기’라는 것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허기를 경계하고 멀리하려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나의 경우를 이야기하라면, (앞에서도 살짝 이야기했지만…)안타깝게도(?!) 전자였다. 딱 그 수준에서 멈춰있었던 것이다. 맞서는 것이 아닌 그냥 회피해버리는 것… 어쩌면 빈 공간은 더 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빈 공간을 메워야 한다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것이 생(生)에 대한 강한 의지로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