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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평점 :
처음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을 접하고는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한 류의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85학번이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 시간은 수많은 데모와 최루탄이 난무했던 시간, 박종철과 이한열이 죽고 대통령 직선제가 받아들여지고 6월 항쟁이 일어났던 시간, 동시에 88올림픽의 열기가 국민들의 고통을 잠재웠던 시간들이었다. 그렇다면 영화 <1987>과 비슷하게 주인공이 사람들과 함께 군부에 대항하여 시위를 벌이는 내용이 주이려나, 하면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생각했던 내용과는 많이 달랐고, 그렇기에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작가의 말을 읽어본다면 작가가 왜 이러한 소설을 썼는지, 왜 시위와 최루탄의 한가운데에서 처절히 민주주의를 외쳤던 현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기에 군대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썼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1987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라도 그해는 각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난해 2017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1987년이 절대 권력인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민주주의를 쟁취한 해였다면, 2017년은 그 부패한 절대 권력을 우리 손으로 직접 끌어내린 해였던 것입니다. 30년 사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발전해왔을 터입니다.
2017년, 영화 <1987>의 제작과 상영은 그런 점에서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국민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그것은 지난 30년 한반도의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987년 그해, 저는 군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항상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87>은 여러모로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장면마다의 리얼리티와 드라마틱한 각본, 군더더기 없는 대사에 조연 배우 한 명 한 명의 연기까지, 영화를 만든 모든 이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진 듯 보였습니다. 비록 영화라는 한정된 장르였지만, 87년으로 상징되는 그 시대를 그 이상 뜨겁고, 공감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하던 작업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그런, 87년 100만 시민이 명동, 종로, 을지로 거리를 메웠던 그 풍경이 내게 '익숙한 듯 낯선 것'이었다면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이었던 더 변방의 풍경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럴 거라는 생각이 용기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을 순수했기에 절망해야 했던, 한때의 젊은이들과,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바칩니다."
사실 나는 평소에 큰 일이 아니라면 그다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정치'나 '민주주의'라는 것들은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나와는 별반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7년은 우리나라에 정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해였고, 그때부터 조금씩이라도 우리나라의 정치,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중에 <1987>과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통해서 1980년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전두환 대통령, 6월 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87년 체제 등은 그저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공부했던 '옛날 정치' 얘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얼마나 처절하고 또 절망적이었을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어설픈 공감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를 포함해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감정적인 공감을 통해서라도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이윤은 30대 중반에 작지만 어엿한 출판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는 지인의 부탁으로 1980년대에 대한 글을 쓰게 되고, 깊이 파묻어놨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1980년대와 현재인 2000년대를 오가며 진행되는데, 격변의 시기였던 1980년대에 입대했던 이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민주화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담담하게 자기 주관을 지켜갔던 선임 하치우. 겉모습과는 다르게 정이 많고 군 내의 부조리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고 싶어하는 임 병장, 그리고 김영수. 그 시대에 흔히 고문관이라 불렸던 김영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반강제로 입대했다. 군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스스로 관심병사가 되지만 정부의 눈에 걸려 정신적, 육체적 폭력에 시달리고, 어쩔 수 없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료의 행적을 알아내고 보고하는 배신자가 된다. 그리고 이윤이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살을 하고 만다. 그의 죽음이 온전히 그의 의지로 이루어졌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김영수는 그저 자살한 관심 병사로 기억될 뿐이었다.
이윤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했던 과거의 인연들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모두가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고 달라졌다. 누군가는 의아할 정도로 변했고, 누군가는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다. 이윤 자신 또한 분명히 무언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가 굉장히 절묘하고 잘 지은 제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아프고 처절하고, 순수하기에 절망을 감당해야 했던 시대. 흔하디 흔한 '영수'라는 이름과 '85학번'은 격동의 시기에 고통을 짊어지고 군부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 시대를 공유했다고 해서 모든 개인이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영수는 끊임없이 시위에 참여했을 것이고, 어떤 영수는 사회를 떠나 전방을 지키는 군인이었을 것이고, 어떤 영수는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지만 포기했을 것이고, 또 다른 영수는 불의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누가 더 정의롭고 누가 더 잘났다고는 할 수 없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나름의 행동을 취했으며, 시대에 저항을 하든 순응을 하든 덜 괴롭고 더 괴로운 것은 없다.
<1987>이나 <택시운전사> 혹은 격동의 시대에 관하여 내가 지금까지 보거나 읽은 것들은 대부분 뚜렷한 시대상을 담은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는 그 속에서 조금 더 개인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80년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와 시대상과는 조금 다른 85학번 영수의 이야기이다.
온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이것 하나는 말하고 싶다. 1980년대 젊은이들은 시위와 투쟁을, 3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촛불을 통해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리고 작던 크던 변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그저 하나의 공부거리나 지루한 정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나라와 세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것들은 우리의 삶과 연관이 없지 않으며, 1980년대, 2000년대 등 시대상과는 관련 없이 개인을 위해 열심히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에게 1980년대는 무엇이었을까. '87년 체제'와 '6월 항쟁'과 '88올림픽'과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함께 품은 시대는, 그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에게 어떤 운명을 강요했을까. 세월이 흘렀다고 80년대의 시공간은 우리들에게 추억일까. 2018년을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실업과 불평등과 좌절과 무기력의 벽은 또 하나의 '80년대'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