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세븐틴
최형아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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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움 출판사의 책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재미있었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기까지 조금 많은 고민과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워낙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고 요즘의 상황들이 얽혀서 정말 많은 생각들이 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또 깊은 생각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에 '미투'에 대해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투 운동은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연예계, 정치계, 교육계 등 여러 분야에서 정말 많은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이 연이은 폭로들을 보자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는지, 수많은 피해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상처받고 힘들었을지,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저 괜찮은 인간의 탈을 썼을 뿐이라는 것이, 참 놀랍고 경악스러웠다. 내 주변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학교들의 대나무숲에 교수들의 만행이 폭로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성범죄의 가해자들과 유명 인사들, 그들의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발언과 행동들은 끔찍했다.

그러다가 배우 조민기가 자신의 행동이 후회스러웠는지, 죄책감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살을 했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가족들을 남겨두고. 미투 운동으로 가해자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조민기까지 죽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마녀 사냥으로 사람까지 죽게 만드냐, 왜 그 당시에 말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말하는 것이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 여지를 줬었던 것 아니냐. 자신의 정말 가까운 사람이 직접 성범죄를 당해본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들은 지독하게 무신경하고 가차 없으며, 자신들이 바로 성폭력의 방관자이자 2차 가해자라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내고 있을 뿐이다. SNS에서 이러한 문구를 보았다. '미투가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밝혀지면 죽을 만큼 창피한 것이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이다.'

누군가는 성폭력의 가해자가, 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피해자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했던 사회와 세상이, 이제서야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서야 함께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배우 김태리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미투 운동에 대해 소신있는 발언을 했다. 김태리는 '이런 일련의 미투 고백이 기적 같이 생각된다. 이런 운동들이 폭로와 사과만 반복되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피해자들이 말씀을 해주시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앞으로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 같다.'며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를 밝혔고, '제가 그런 마음을 크게 느끼는 것은 가해자들의 사회적 위치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피해자분들의 고통의 크기를 알 수는 없지만 제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저 역시도 침묵을 해야만 했을 구조가 끔찍스러워서 그렇게 말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더 나은 사회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들이 참 당당하고 멋있어 보였다.

<굿바이 세븐틴>의 주인공 윤영은 여성전문 성형외과의 의사다. 아직 40살도 채 되지 않았고, 아름다운 외모에 커리어도 빵빵하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저 멋있는 커리어우먼 같아만 보이는 윤영에게는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가 새겨져 있다. 그녀는 17살 비오는 날 밤,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가던 길에 옆 학교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그 범죄자들은 그들의 죄에 합당하는 벌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인 윤영과 그 가족들이 도망치듯 서울로 이사를 갔다. 윤영은 단 한 순간도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정상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괴롭히고 망상에 시달린다.
그러던 와중에 다른 환자들과 무언가 다른 희진이 성형외과로 찾아온다. 그녀는 시도때도 없이 환자와 의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적인 질문을 하기도 하고 윤영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며, 영문모를 말들도 많이 한다. 윤영은 그런 희진을 조금 귀찮아하고 불편해했다. 그러던 중에 희진이 자살을 한다. 윤영은 그제서야 희진과 자신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파헤치다가 다시금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의 결말은 답답하고 화가 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좋았고, 다행이었다. 윤영은 나름의 복수를 실행에 옮겼고 어느 정도 성공했으며, 그녀의 상처를 조금씩 극복해 나갔으니까. 윤영은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까지 심각한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는 언제까지나 약하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머물지 않는다. 당연히 그녀의 잘못은 한 군데도 없기 때문에 당당해져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수치심과 자책감, 자괴감 등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피해자라는 틀을 깨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소설의 배경이 여성전문 성형외과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수많은 여성들이 결혼, 사랑, 콤플렉스 등의 여러 이유로 끊임없이 성형외과를 찾아오고, 얼굴과 가슴, 심지어는 성기까지 성형을 한다, 그저 현대인의 욕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되돌리고 바꾸려는 이유는 그들의 절망적이고 불공평한 상황과 얽혀 있기도 하다.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 안타깝고 씁쓸했다.

남자와 여자의 성관계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불공평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남자는 임신 가능성이라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수시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경험은 평등하게 바라봐야 할 것인데, 여자는 '처녀성'이라는 것이 그들의 약점이 되는 경우도 많다. 또 나의 경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장 기분이 나빴던 것은 나의 옷차림에 대해 오지랖 넓게 왈가왈부하는 남자들. 내가 어떻게 입든 대체 그들과 무슨 상관일까? 그 사람들이 좋으라고 그렇게 입은 것도 아니며,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자유이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할 권리는 없다. 이런 사소한 것도 성희롱인데, 과연 우리 나라에 성희롱을 당하지 않은 여성들이 존재하기나 할까? 나는 성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작은 소문에도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신경을 정말 많이 쓴다. 지금까지 소문들 때문에 많이 상처받았고 많이 울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나의 몸과 관련되어 있는 소문이라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너무 끔찍하다. 
가해자는 절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피해자가 그들이 저질러놓은 일에 어떤 생각과 상황에 시달리는지.  

(나의 모든 말들은 여성 뿐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

이 하나의 글 속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생각이 솟아오를 정도로, 성, 페미니즘, 미투 운동 등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끊입없이 말해도 부족하다.
미투 운동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유행이나 트렌드는 절대 아니지만, 피해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더 이상 피해자가 숨고 가해자가 당당한 사회의 분위기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피해자들의 발언과 폭로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용기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어떠한 강요도 행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성범죄자들은 그 죄에 합당하는 벌을 반드시 받아야한다. 동시에 미투 운동이 가벼워지거나, 이를 이용해 죄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미국 체조 대표팀의 전 추지의 래리 나사르는 수십 년간 어린 선수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죄로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156명의 여성들이 증언을 했으며, 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소녀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그들은 강한 여성이 되어 당신의 세계를 파괴하려 돌아온다."

한국 사회는 강압과 권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성혐오, 남성혐오, 페미니즘 등 모든 것을 넘어서서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성범죄자들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가벼운 형량을 받고, 당당해야 할 모든 여성들이 행동과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는 사회가 정상적인가? 소설에서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그것을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는 어떠한 안타까운 상황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만약에 그런 불행이 발생한다면 적어도 그들을 무시하거나 생각 없는 말들은 던지지 말자. 


*작가의 말: 여성에 대해 말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내가 여성이고, 나의 여성적 체험 안에 그 답이 어느 정도 들어 있을 텐데도 그렇다. 현재와 과거를 통틀어, 여성과 관련된 수많은 비참한 사회현상을 목격하고 분노하면서, 왜 끝없이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정작 내 안에는 아직도 어디선가 주입된 여성성에 대한 많은 터부와 억압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말하는 게 꺼려지고 말을 해도 조심스럽다. 어느 정도는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공격을 당할까 봐 불안하고 그러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만 싶어진다…여성이면서 여성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해온 나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 혹은 침묵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까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대답 하나는, 그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 침묵이고 어떻게든 변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 말이라면,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잊어버려도 되는 체험 따윈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한 개인의 체험은 우리 모두의 체험이기도 하다. 내가 곧 타인이고 타인이 곧 나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연결해줄 것이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건 어찌 되었든 무엇인가를 전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인습의 굴레에 묶인 여성에 대한 오래된 생각, 편견과 몰이해, 여성다움에 대한 강압적 사고와 비아냥, 심지어는 조롱까지도,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내가 믿는 진실은 그게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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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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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을 접하고는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한 류의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85학번이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 시간은 수많은 데모와 최루탄이 난무했던 시간, 박종철과 이한열이 죽고 대통령 직선제가 받아들여지고 6월 항쟁이 일어났던 시간, 동시에 88올림픽의 열기가 국민들의 고통을 잠재웠던 시간들이었다. 그렇다면 영화 <1987>과 비슷하게 주인공이 사람들과 함께 군부에 대항하여 시위를 벌이는 내용이 주이려나, 하면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생각했던 내용과는 많이 달랐고, 그렇기에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작가의 말을 읽어본다면 작가가 왜 이러한 소설을 썼는지, 왜 시위와 최루탄의 한가운데에서 처절히 민주주의를 외쳤던 현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기에 군대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썼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1987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라도 그해는 각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난해 2017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1987년이 절대 권력인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민주주의를 쟁취한 해였다면, 2017년은 그 부패한 절대 권력을 우리 손으로 직접 끌어내린 해였던 것입니다. 30년 사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발전해왔을 터입니다.
2017년, 영화 <1987>의 제작과 상영은 그런 점에서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국민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그것은 지난 30년 한반도의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987년 그해, 저는 군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항상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987>은 여러모로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장면마다의 리얼리티와 드라마틱한 각본, 군더더기 없는 대사에 조연 배우 한 명 한 명의 연기까지, 영화를 만든 모든 이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진 듯 보였습니다. 비록 영화라는 한정된 장르였지만, 87년으로 상징되는 그 시대를 그 이상 뜨겁고, 공감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하던 작업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그런, 87년 100만 시민이 명동, 종로, 을지로 거리를 메웠던 그 풍경이 내게 '익숙한 듯 낯선 것'이었다면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이었던 더 변방의 풍경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럴 거라는 생각이 용기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을 순수했기에 절망해야 했던, 한때의 젊은이들과,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바칩니다."


사실 나는 평소에 큰 일이 아니라면 그다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정치'나 '민주주의'라는 것들은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나와는 별반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7년은 우리나라에 정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해였고, 그때부터 조금씩이라도 우리나라의 정치,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중에 <1987>과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통해서 1980년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전두환 대통령, 6월 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87년 체제 등은 그저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공부했던 '옛날 정치' 얘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얼마나 처절하고 또 절망적이었을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어설픈 공감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를 포함해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감정적인 공감을 통해서라도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이윤은 30대 중반에 작지만 어엿한 출판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는 지인의 부탁으로 1980년대에 대한 글을 쓰게 되고, 깊이 파묻어놨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1980년대와 현재인 2000년대를 오가며 진행되는데, 격변의 시기였던 1980년대에 입대했던 이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민주화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담담하게 자기 주관을 지켜갔던 선임 하치우. 겉모습과는 다르게 정이 많고 군 내의 부조리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고 싶어하는 임 병장, 그리고 김영수. 그 시대에 흔히 고문관이라 불렸던 김영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반강제로 입대했다. 군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스스로 관심병사가 되지만 정부의 눈에 걸려 정신적, 육체적 폭력에 시달리고, 어쩔 수 없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료의 행적을 알아내고 보고하는 배신자가 된다. 그리고 이윤이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살을 하고 만다. 그의 죽음이 온전히 그의 의지로 이루어졌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김영수는 그저 자살한 관심 병사로 기억될 뿐이었다.

이윤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했던 과거의 인연들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모두가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고 달라졌다. 누군가는 의아할 정도로 변했고, 누군가는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다. 이윤 자신 또한 분명히 무언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가 굉장히 절묘하고 잘 지은 제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아프고 처절하고, 순수하기에 절망을 감당해야 했던 시대. 흔하디 흔한 '영수'라는 이름과 '85학번'은 격동의 시기에 고통을 짊어지고 군부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 시대를 공유했다고 해서 모든 개인이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영수는 끊임없이 시위에 참여했을 것이고, 어떤 영수는 사회를 떠나 전방을 지키는 군인이었을 것이고, 어떤 영수는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지만 포기했을 것이고, 또 다른 영수는 불의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누가 더 정의롭고 누가 더 잘났다고는 할 수 없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나름의 행동을 취했으며, 시대에 저항을 하든 순응을 하든 덜 괴롭고 더 괴로운 것은 없다. 

<1987>이나 <택시운전사> 혹은 격동의 시대에 관하여 내가 지금까지 보거나 읽은 것들은 대부분 뚜렷한 시대상을 담은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는 그 속에서 조금 더 개인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80년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와 시대상과는 조금 다른 85학번 영수의 이야기이다.

온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이것 하나는 말하고 싶다. 1980년대 젊은이들은 시위와 투쟁을, 3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촛불을 통해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리고 작던 크던 변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그저 하나의 공부거리나 지루한 정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나라와 세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것들은 우리의 삶과 연관이 없지 않으며, 1980년대, 2000년대 등 시대상과는 관련 없이 개인을 위해 열심히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에게 1980년대는 무엇이었을까. '87년 체제'와 '6월 항쟁'과 '88올림픽'과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함께 품은 시대는, 그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에게 어떤 운명을 강요했을까. 세월이 흘렀다고 80년대의 시공간은 우리들에게 추억일까. 2018년을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실업과 불평등과 좌절과 무기력의 벽은 또 하나의 '80년대'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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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대한민국 스토리DNA 16
전상국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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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등 분야나 연령대에 관련 없이 독서라는 행위를 정말정말 사랑한다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책을 모두 구매해 읽었고재미있게 읽은 책은 여러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내용을 외우겠다고 할 정도로 계속해서 읽고는 한다.(해리포터는 진짜 각 시리즈마다 최소 7번은 읽었다!) 그리고 단순히 흥미나 지식을 채우는 용도로 가볍게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책에서 어떠한 의미나 교훈을 얻고자 한다. 따라서 책을 한 번 읽고 던져두기 보다는 읽고 간단한 감상을 남겨두거나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넘어서 책에서 풍기는 각자 다른 종이 냄새도 너무 좋고, 책을 넘기는 특유의 소리들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그 책의 범위가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일본이나 서양 작가의 소설로 국한되었다. 예를 들어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나 기욤 뮈소같은 유명 작가들의 소설?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이나 문학작품은 접해본지가 꽤 된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때문에라도 정말 많이 읽었었는데..
이런 때에 기회가 닿아서 전상국의 소설 선집 '우상의 눈물'을 읽게 되었다. 전상국 작가님이 등단 55년을 회고하며 9편의 중단편을 직접 엄선해 묶은 책이기 때문에 한층 더 의미있다.


온전히 내 기준에서, 1900년대나 그 이전의 우리 나라 문학 작품은 내가 선호하는 소설들처럼 매우 흥미롭거나 여운이 남거나 감동적이지는 않다.(예전부터 공부할 때 많이 읽어서 그런걸까..?)하지만 시대별, 작가별로 특유의 분위기와 개성이 드러나는 글들을 읽는 건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 오랜만에 읽는 이런 류의 소설은 꽤 좋았던 것 같다.
총 9편의 중단편 소설 중에서 나는 전상국 작가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상의 눈물'에 대해서얘기하고 싶다. 이 둘 외의 이야기들은 6.25 전쟁이나 무속신앙 등과 관련되어 있거나 조금 더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들이라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는 조금 부족한 감상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우상의 눈물의 이야기가 나에게 조금 더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우상의 눈물'은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고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일진 문화, 서열 문화일까 예상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 사이의 물리적 폭력과 더불어 합법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위선적인 권력의 폭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주인공 이유대와 반장 임형우, 담임 선생님, 재수파 우두머리 최기표로 간추릴 수 있으며, 배경은 1980년대이다.
기표는 잔인한 폭력을 일삼는 악마같은 아이로 묘사된다. 재수파 아이들을 선동해 별 것 아닌 이유로 유대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담뱃불로 허벅지를 지지는 등의 가혹한 폭력을 가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이미 학교에서도 범죄자같은 아이로 낙인이 찍혀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기표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가 규칙에 반항하는 데에서 통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일종의 존경심을 가진다. 주인공 또한 심한 일을 당했음에도 기표를 미워할 수 없다고 표현한다.
한편 담임은 겉으로 드러나는 명예와 안정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초반에 그는 카리스마있고 엄격하지만 학생들을 좋은 길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담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힘의 논리에 따라 아이들의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는 학급의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자신의 명성에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위협적인 기표를 신경쓴다.
담임은 반장 형우와 합의하여 기표의 부정행위를 주도하는데, 이런 형우의 행동이 기표의 심기를 거슬러 형우는 심하게 맞는다. 하지만 형우는 기표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면서도 끝까지 그를 고자질하지 않고, 이를 통해 일약 영웅이 된다. 형우는 적대감을 숨기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의리를 과시한다. 이 과정에서 형우의 위선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다. 또한 담임은 기표가 없을 때를 틈타 형우와 함께 반 아이들 앞에서 기태의 약점인 가난과 힘든 집안 형편에 대해 폭로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표는 악마에서 그저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불안정한 아이로, 재수파는 의리있는 친구들로 둔갑했다. 반 분위기는 '실로 화기애애'해진다. 또한 기표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에도 실리고 유명해지면서 영화화도 확실시된다. 하지만 기표는 영화사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 날에 동생에게 편지를 한 통 남기고 가출을 한다. 그 편지는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담임과 형우는 자신들이 기표를 '구원'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자신들의 선함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기표의 입장과 감정을 진정으로 고려했는가? 그들은 '선함'과 '합법적 권력'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렸을 뿐, 뒤에서는 기표에게 정신적 폭력을 행사했다. 기표의 잔인함과 무자비함, 담임과 형우의 위선은 무엇이 다른가? 기표가 다른 아이들에게 행한 물리적 폭력도 정말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는 담임과 형우에 의해 시작된 위선적인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교실은 흔히들 '작은 사회' 혹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부른다. 당대 사회의 모습이 하나의 교실 안에 여실히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상의 눈물에서 기표, 유대, 형우가 생활하는 교실은 매우 거짓되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는 그 당시 사회와 현실도 매우 부정적이고 어둡다는 메시지를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우상의 눈물이 나에게 더 와닿았다고 말한 이유는 내가 중고등학교 생활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학교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교는 수업 방식이나 내용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관계도 중고등학교와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실망을 했고 그 때문에 깨달은 것도, 마냥 포기한 것도 많다.(그 과정에서 나의 잘못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서로 시기하고,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고 그 소문으로 한 사람을 재단하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더라. 정신적 폭력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지만, 학교라는 배경 안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순응과 모순, 위선 등을 보면서 새삼스레 여러가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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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 - 미노스의 가족동화
미노스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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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딸이 손녀 하윤이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도, 더군다나 동화 작가의 세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에 딸의 그 말에 그저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습니다...
딸은 진심으로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대여섯 살 때 아빠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다시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얻어 손주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딸에게도 들려줄 만한 이야기를 지어 보내주었습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서경이는 제 딸이니까요...
저는 무엇보다 가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의 첫 삶이 가족에서 시작되고, 가족의 품에서 생의 마지막을 마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동화'라 해보았습니다.'
자신을 미노스라 칭하는, 손녀를 가진 할아버지가 이 가족동화를 만들어낸 이유는 이와 같았다.


하지만 단순히 간단하고 유치한 동화는 아니다. 그리고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도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온갖 이야기는 넘쳐나도, 진정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무언가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진정한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힘든 시기이다.
글 솜씨는 서툴고 이야기의 얼개는 여느 프로 작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미노스는 이런 시대에 사랑이 담긴 마음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19편의 단편을 썼다.
사실 19편의 단편들이 아마추어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매우 흡입력이 있거나 인상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 전체에서 할아버지가 딸과 손주에게 전해주고 싶은 예쁜 마음이 드러나 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서프라이즈!'이다. 그 이야기를 읽자마자 우리 엄마 아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올해 들어 결혼 26년째를 맞이했는데, 결혼 기념일을 매년 챙기기는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엄마 아빠, 언니, 나 이렇게 4명이서 외식을 하거나 두 분이서 영화를 보고, 언니와 내가 결혼 기념일 선물을 챙겨 드린다. 그런데 '서프라이즈!'를 읽고 우리 엄마 아빠도 나중에 결혼 기념일 날 리마인드 웨딩을 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항상 자녀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고, 연애 시절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서로의 소중함은 알고 있으나 갈수록 이를 표현하지 않고, 이것에 익숙해져 당연시하는 부분이 많아진다. 우리 부모님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중에라도 꼭 언니와 함께 엄마 아빠의 리마인드 웨딩을 성사시켜서 두 분이서 어떠한 전환점을 맞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리마인드 웨딩같은 특별한 이벤트는 두 분에게 새로운 감정과 시각을 선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한 어린이 동화가 아닌 미노스의 '가족동화'는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부모와 자식, 이성간의 사랑, 시간, 운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독자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받았고, 내 주변, 특히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돌아보게 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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