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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평점 :
죽이고 싶을 만큼 밉지만 그 미움보다 더 깊이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놀랐지만 동시에 공감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엄마라고,
그만큼 깊이, 온몸과 온마음으로 사랑받고 싶어하고 사랑하고 싶어하는 존재는 아이의 우주에서 엄마가 유일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 작가가 엄마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또 그 사랑의 깊이만큼 얼마나 상처받고 괴로워했을지 잠시 헤아려보다가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책을 덮으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아이가 엄마를 다시 사랑하길 선택하겠다고 말해서,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엄마를 선택하겠다는
그 마음에 담긴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어 엄마의 "시작하는 마음"을 돌아보는 아이
알코올 중독자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엄마를 돌봐야 했던 아이, 이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이.
그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따라 울었다.
아이가 가여워서, 그 가여운 아이의 엄마가 안타까워서 울었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양육자를 가진 내가 평생 마음속에
키워온 원망과 미움 때문에 보지 못했던 엄마의
'시작하는 마음'을, 나는 이제야 겨우 본다. 267쪽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엄마를 믿지 않을 수 없어서
괴로웠다. 그녀의 보살핌에는 불규칙한 공백들이 있었다.
하지만 듬성듬성이라도 내게 주어진, 양육자로서 그녀가 남긴
편안했던 순간들이 또한 분명 존재했다. 284쪽
이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엄마가 존재할까. 어렵겠지.
완벽하게 나쁜 엄마도 존재하기 어렵지 않을까.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내가 책임지고 키운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 것 같다. 이제는, 아주 조금은.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울퉁불퉁했지만 따스하고 즐거웠다.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안온한 순간들도 있었다. 나의 양육자, 나의 우주, 나의 엄마.
나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또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나를 먹이고 입히고 키웠을까. 내가 엄마를 돌봐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엄마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엄마가 나를 돌봤던 것처럼.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도 잘 해내고 싶다.
엄마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법
나도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아니 나와 엄마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책, 아니 마음의 흔적을 남기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내가 애써 돌아보지 않으면 휘발되거나 영영 사라져 버릴 기억들, 순간들. 더 늦기 전에 꺼내 보고 싶어졌다. 엄마를 기억하는 건 곧 나를 기억하는 것이다. 엄마와의 시간을 더 깊이 사랑하는 건 그 시간 소에서 자라고 어른이 되어 온 나를 돌아보고 꼭 안아 주는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용기를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