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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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가닿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 어머니의 유년시절이나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사라진 공간, 역사적 장소 같은 것 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와 기록을 토대로 그것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연 내가 그 시간, 그곳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서명숙의 『영초언니』를 읽으면서 그랬다.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안다고 할 수 없는 삶이 거기 있었다.

 

 어린 시절 세상의 소식은 오직 뉴스를 통해서 접했다. 선거, 투표, 정치는 어른들의 것이라 여겼고 그것에 대해 나에게 자세하게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운동권이라 불리는 풍물패 동아리 활동을 하는 선배들을 통해서 나와 닿지 않았던 세상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 나른 세계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봐도 창피하고 부끄럽다. 

 가닿을 수 없는 그곳엔 철없고 무지한 대학생이었던 나와는 다른 서명숙과 천영초가 있다. 고대신문 기자였던 79학번 서명숙이 71학번 천영초를 만난 건 피할 수 없는 절대적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천영초는 담배를 처음 알게 한 나쁜 언니였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 스승이자 멘토였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 아닌 능동적인 변화를 이끄는 시작에 영초언니가 있었다. 대학교 4년 동안 많은 시간을 학과 공부가 끝나면 술이나 마시러 다니던 내게 여학생들의 모임인 ‘가라열’은 매우 경이로웠다. 함께 생각을 나누고 세상을 말할 수 있는 여자들, 얼마나 멋진가. 

 ‘가라열은 남자들의 제국 고대 사회에서 유일한 해방구였고, 꽉 막힌 유신체제에서 가느다랗게 열린 숨구멍이었고, 우리 여자들의 대안학교였다. (…) 우리는 가라열에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여자들끼리의 수다도 얼마든지 진지한 토론이 될 수 있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58쪽)

 그 멋짐은 독재정권을 고발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영초언니의 자취방에서 등사기로 유인물을 찍어내고 시위에 참여한다. 가라열에서 가장 조용했던 이혜자 언니가 시위를 주도하고 독재 타도를 외치는 모습은 잔 다르크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교과서를 통해 읽은 기록과는 달랐다. 비겁하고 비열하게 잠복하고 미행하는 형사들, 시위대를 가혹하게 진압하고 고문하는 장면은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하고 아파서 읽을 수가 없었다. 제주도에서 저자가 형사에게 연행되어 서울로 올라 와 눈을 가린 채 밀실에 도착해 시작된 치욕스러운 시간. 고통스러운 신체 고문과 영초언니와 동료를 배신하게 만들려는 형사의 세뇌에 지쳐 자살을 감행한다. 나는 조금이나마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껏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통제와 감시로 일관된 유신체제의 삶을, 뜨겁게 타오르던 청춘의 몸짓을. 

 서로를 걱정했던 영초언니와 저자는 구치소에서 안부를 확인한다. 그러나 너무 짧은 해후였다. 영초언니는 독방으로 저자는 다른 방에 수감된다. 감옥에서 236일 동안 인간 이하의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온 영초언니와 저자의 앞에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독재자 박정희는 암살되었지만 다른 독재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 1980년 짓밟힌 광주를 목도한 영초언니의 삶은 다른 곳을 볼 수 없었다.  

 무엇이 그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힘이었을까? 투쟁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과 그것을 함께 나룰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영초언니』속에서 만난 익숙한 이름들, 그리고 그들의 현재 행보. 기억에서 꺼내기에 너무 아픈 과거를 밟고 우리는 살고 있다. 이민을 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뇌를 다치고 기억을 잃고 어린아이가 된 영초언니와 곁에서 그를 지켜보고 그리워하며 기억하는 가라열 멤버와 그 시대를 건너온 이들도. 

 저자가 고통과 악몽 속에서 건져올린 긴급조치 발동, 동일방직 노조 똥물 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잊어서는 안 되는 현대사를 직시한다. 70년대와 80년대 치열했던 민주주의 투쟁사. 그 안에서 피어난 영초언니와 저자의 우정. 운동권 여학생들의 거룩한 연대. 가닿을 수 없는 그 현장에 나는 서 있는 듯하다. 완벽하게 가닿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들었던 마음과는 달라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스스로도 가능하기 힘들었다. 시위를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가고 호적에 빨간줄’ 그어지는 걸 감수하겠다고 각오한 것도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꾼의 자세를 견지할 자신도 없었다. 그 어느 쪽도 내가 결심할 수 있는 건 없었다.’ (76쪽)

 영초언니를 만나기 전의 나는 저자가 처음 시위 대열에 참여하기 전 마음처럼 두렵고 무서웠다. 이제는 내가 택하고 지향해야 할 길이 어느 쪽인지 분명하게 안다. 정확하게 몰랐던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음을 믿는다. 천영초 란 한 여자를 기억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응원하겠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런 삶에 가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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