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작년보다 가격이 오른 백신과 가격이 내린 백신이 있다고 의사는 말했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간호사는 주사를 놓은 자리에 귀여운 캐릭터 밴드를 붙여주었다. 동그란 밴드를 보니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예방주사를 맞는 일은 돌아와서 할 일 중 하나였다. 잠시 여기가 아닌 거기에서 생활했고 돌아왔다. 여기를 떠나는 일은 쉬운 일임에도 결정을 내리는 일은 요원하다. 긴 잠에서 깨지 않았고, 짧은 잠에 빠져들었다. 수술 후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다. 충동적이었으나 신나는 일이었다. 텔레비전의 빛을 의지해 혼자 맥주를 마시며 살짝 취기를 즐기는 일, 맥주 한 캔의 시간, 그것은 호쾌한 웃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거기에서 나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거기에 내가 있다는 이유로 나를 만나러 달려온 친구¹과 친구². 우리는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다.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도착한 친구였다. 친구¹과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말했고, 어느 공간에 대해 상상했고,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느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건 나의 일부를 안다는 일이다. 그 일부는 우리를 지탱하는 자양분이고 격려하는 시작점이다. 우리가 말한 책은 이렇다.

 

 

 

 

 

 

 

 

 

 

 

 친구¹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며칠이 지나고 친구²가 왔다. 두 딸의 엄마가 아닌 내 친구로만 존재하는 순간, 긴 시간을 나눌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집중해야 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속상했던 일을 나누었다. 고민과 걱정거리가 해결될 수 없더라도 조금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언제라도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참 고맙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진다.

 

 소설과 시를 좋아하고 그것에 조금 더 가까이 닿기를 바라는 독자인 내게 SNS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일들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내가 읽고 간직한 문장들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시집을 정리했다. 누군가는 시는 시일뿐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설을 읽고, 시를 읽는다. 이런 문장을 흠모한다. 친한 동생이 선물한 소설(읽지 않았다)을 넘기다 발견한 문장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두 뺨이 달아오른 채 잠에서 깨어났다. 관자놀이에서 피가 뛰고 몸에서 열이 났다. 서늘해진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자 목련나무 가지들이 마구 흔들리며 진줏빛 꽃들이 솜뭉치처럼 마당에 길게 떨어져 흩어졌다. 하늘에도 땅에도 이제 달은 없었다. 하늘과 땅에 똑같이 새하얀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은하수에서, 부드럽게 빛나는 팔 한복판에서, 참혹한 고통을 겪으며 별들이 태어났다. 꽃들이 떨어져 흩어지면서 그 화사함이 빛을 잃고 향기가 사그라졌다. 마르소는 울고 싶었다. 가차없는 비애가 그를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분노의 날들』, 204쪽)

 

 

 우리는 모두 분노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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