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인들 - 김선우 장편소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주문처럼 말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사랑과 소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하루를 견디고 또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밥을 먹고 잠들 수 있는 힘은 어떤 분노이거나 증오에서 나오기도 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존재를 넘어서기 위해 그가 무참히 짓밟히는 그 날을 고대하며 사는 삶도 있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불행을 안고 태어난 삶이 그러하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나 형제의 잘못으로 그 삶이 대물림 되는 경우,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새로운 불행이 잉태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감하게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누군가에는 끊고 싶은 고리가 누군가에는 다시 이어가고 싶은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김선우의 소설에서 ‘고리’는 사랑이다. 끊어야 할 고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된 폭력이며, 이어가야 할 고리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죽이고 복역 중인 지숙은 딸 유경을 사랑했기에 자살을 선택했다. 유경의 인생에 걸림 돌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경은 엄마의 고향인 ‘와이강’에 유해를 뿌리고 일부를 가지고 스톡홀름으로 향한다. 북유럽을 꿈꿨던 엄마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유경은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한다. 그가 한국의 와이강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경에겐 충분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와이강을 찾는다. 평온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곧 돌아오겠다던 그는 사고로 죽고 그 충격으로 유경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흐르던 사랑이 멈추자 유경의 삶도 멈춘 것이다. 유경이 다시 와이강을 찾은 건 해울의 편지 때문이다. 해울은 와이강의 물을 보내고 자신을 도와달라는 의문을 편지를 보냈다. 와이강에서 버려져 그곳의 당골네가 손녀 수린과 함께 남매처럼 키운 아이였다.

 

 유경에게 와이강은 엄마와 그를 떠올리는 소중하면서도 아픈 곳이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와이강은 버림 받은 이들, 상처 받은 이들을 품어주고 치유해 주던 강이 아니었다. 정부 정책이라는 이유로 곳곳이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강이 파괴되면서 몸이 굳어가는 수린을 위해 해울은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숙, 그, 수린, 해울은 와이강이 존재했기에 살 수 있었던 이들이다. 와이강은 죽은 지숙에게 맑고 순수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었고 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었으며 수린과 해울에겐 엄마였다. 그리고 유경에겐 멈추었던 삶을 흐르게 할 유일한 곳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붙잡을 수 없었던 그의 이름, ‘연우’를 찾고 생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에 대해 단순하게 사랑 이야기라고 예상한 건 오산이었다. 『캔들 플라워』를 떠올렸어야 옳았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민한 글로 그림자이거나 그늘인 삶에 빛의 길을 터 준다는 걸 기억해 내야 했다. 그녀는 극도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우리의 무감각을 흔들어 깨운다.우리가 함께 지켜지고 지속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것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괜찮아요. 아주 오래 살아도 좋았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어.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와이강이 오빠랑 내게 늘 들려주던 얘기인데요.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지 않으면 흐를 필요가 없어요. 어제에 멈춰 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거기까지 말을 마친 수린이 힘이 드는지 가만히 숨을 내쉰다. 희미한 단내가 풍기는 수린의 숨소리가 물소리처럼 흐른다…… 라고 유경은 느낀다. 응, 죽은 거나 마찬가지로 살았어. 이제는 안 그럴게. 어제보다 오늘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할게. 그렇게 흘러갈게. 그게 사는 거니까.’ 257쪽

 

 그러므로 김선우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사랑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 너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물에 대한 사랑 말이다. 수린의 말처럼 강이 멈추지 않고 흘러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는 사랑이 흘러야 할 것이다. 작은 물줄기가 흘러 다른 물줄기를 만나 커지고 더 많이 흐르듯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흘러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