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문의 비밀 -상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에 역시나 같은 저자의 <방각본 살인사건>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제목이 주는 왠지모를 빈약감 때문에...읽기전에 좀 망설인감은 없지 않아 있지만, 막상 읽어보니 '정조'시대의 시대상같은 것은 집어치우더라도 일단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재미에 홀딱 빠졌었다. 

이 '백탑파'의 두번째 이야기인 <열녀문의 비밀> 또한 역시나 제목은 참 빈곤하다. 글쎄..제목이 빈곤하다는 것은 왠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상상력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우려감이다. 기껏 고른 책이 더군다나 역사추리소설인데...재미가 없다면 다음번에 같은 장르의 책을 고르는데에 있어서 애를 먹기에 우선은 제목이 풍부한 맛이 있어야 쉽게 책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다행이랄까...역시나 1부인 <방각본 살인사건> 못지 않은..아니..그보다 더 재밌다고 해야할까...암튼...거의 비슷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책은 그 뒤('방각본 살인사건'을 해결한지)로 5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잠깐 줄거리를 소개해보자면...그러니까...'백탑파'들이 '정조'의 뜻대로 규장각에 들어간 후 여러 잡무를 보다...이번엔 열녀를 정려하는 일을 맡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이명방(직업은 의금부 도사 참상--종육품) 또한 규장각일을(규장각 일이라기 보다는 '백탑파'의 일) 도와 전국에서 올라온 열녀 정려를 품신하는 글들 중에 사기성이 농후한 것들을 가리는 일을 같이 진행한다.

그런데...또 한명...이명방의 친구이자...서얼 출신인 조선의 홈즈라 마땅히 부르고도 남을 '김진'(아직 이 양반은 더욱 더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관직에는 오르지 않았다.) 또한 일을 같이 맡게 되는데...그 중 완벽하게 올라온 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열녀를 떠나...너무나도 인간적으로도 완벽한 한 여인을 품신하는 글... 적성에 사는 김씨라는 완벽녀가 눈에 띄인 것이다.

그래서...이 열녀에 대한 조사를 하기로 한다. 왠지 이들에겐 뒷맛이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열녀 정려가 결국 나라에서 승인이 되면 이 아녀자는 정말 말 그대로 조선 시대의 본보기로 떠받게 되고...열녀로 칭송받으며, 아녀자가 살았던(열녀는 죽은 아녀자에게만 해당) 마을엔 열녀문이 세워지게 되고... 마을 또한 충,효의 마을로 이름을 날리며, 열녀가 몸 담았던 가문은 말 그대로 가문의 영광을 얻게된다. 또한 여러가지 혜택이 돌아가니...열녀를 정려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물론...이 책에서는..)

그런데 이 와중에 '간서치'(혹은 '책만 보는 바보'로 유명한) 이덕무가 마침 적성 현감에 부임하게 되는데.. 이 적성이라는 곳이 바로 앞서 말했던...열녀(김씨)가 살았던 고장이다. 그래서...더욱 더 이 일에 매진하기로 하는데...

또한 이명방은 의금부 도사라는 직책으로 이 '적성' 고을을 엄찰하기로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있으니..조선에 몰래 들어와 계속 세를 확장하고 있는 '야소교'(여기서 '야소'라 지금 '예수'로 불리우는 말이다. 즉, 천주교를 의미한다.)의 교주와 그 일당들을 일망타진 해야 하는 또 다른 임무가 있다. 그래서 이명방은 '열녀'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야소교'만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결국 이명방은 '열녀'를 먼저 감찰하기로 하고(솔직히..어명으로) 김진과 더불어 먼저 '적성'으로 떠난다.

이게 이 책의 초반부이다. 역시나 조선의 후기로 가면서...새로운 소재가 등장한다. 이제 실학이라는 뼈대에 더욱 더 살을 붙여...'야소교'를 등장 시키며, 또한 그 반대 급부로서 '열녀'라는 소재를 같이 떠 안음으로써...조선의 근간을 이루지만, 어느 순간부터 썩어빠진(물론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교'의 '충,효 사상'을 부각시켜 이 둘을 대립시킨다.

이 구도가 매우 좋게 느껴졌다. 아니...참신하게 느껴졌다. 이 두 소재를 가지고 직접적인 노론과 백탑파(북학파)의 대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어차피 싸움도 되지도 않겠지만...) 간접적인 그들의 정치적 사상을 보이지 않게 충돌시키려는 작가의 치밀함이 엿보인다. 앞서 말했던 '열녀 정려를 품신한다는 내용'과 '야소교의 등장'은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되며, 독립적이 아닌 각각 종속적으로 두 사건을 풀어간다.

또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소설에는 '열녀'를 통하여 유교'의 바탕을 얼굴마담식으로 내밀곤 있지만, 오히려 뒤집어 놓고 생각해 보면, 조선 후기의 시대적 배경과 어우러져 '여성'의 사회 참여 혹은 지금 말로 하면, 페미니즘 사상을 저 이면에 깔고 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친구(이명방과 김진)들은 실학 사상 위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내보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고위관직에 있는 사대부 양반들을 통해 그들이 애써 지키자 하는 것은 허울만 있는 체통뿐이라는 것을 드러나게 함으로써...그 당시 조선이라는 국가가 점점 더 닫혀만 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망한 명나라를 그리워하고 새로이 들어선 청나라를 증오하니...이는 이미 자취도 사라진 명을 그리며 조선 혼자 대중화사상에 빠져 새로운 문물을 막아서고 있는(당시 청나라를 오랑캐로 봤기에...) 현실의 안타까움도 절로 들었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것들이었는지..이 책을 보면 알겠지만, '열녀'로 품신하려는 이 가문의 사람들은 결국 이 조선의 사대부들과 다름이 없다. 오직 중시하는 것이 체통이다.

이 소설속에서 이 적성의 열녀 가문은 곧 조선이다.  아직 조선은 '정조'시대이긴 하지만, 가문의 비극적 결말(어차피 이 가문이 좋지 않게 끝날것이라는 것은 책 좀만 읽으면 알 수 있으므로 '비극적 결말'을 언급하였음..)을 통해 조선이 어떻게 나갈것인지..그리고 어떻게 망할 것인지...투영해 놓은 점이 매우 고급스럽게도 보였다.

이명방은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명방은 충직한 조선의 신하로 어명에 따라 본직에 충실한 인물이지만, 이명방의 왕인 '정조'는 무수리와 임금간의 사이에서 난 자식(영조)의 손자이다. 종친이자 의금부 도사인 이명방보다 더욱 더 지위가 분명하지 않으며, 이명방의 친구들은 모두 다 실학을 존중하는 백탑파들이고 서얼 출신들이다. 하지만 이명방은 정통의 유교의 물들어있는 인물이기도 하며, '야소교'를 추격하지만, 본의는 그럴려고 하는 것이 아닌...점점 더 '야소교'(여기서는 천문쪽이 더욱 더 가깝게도 볼 수 있겠다. '담헌 홍대용'의 영향때문인지도...)에 눈이 떠가고, 중국의 사서(즉 대설大說)와 더불어 소설(小說)도 같이 즐기는(왕명으로 소설은 금지되어 있는 상황..이명방은 소설..특히 방각소설을 다 수집하여 불태운바있다.) 매우 감정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방각소설 살인사건>에서는 그의 든든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홍국영(노론 탕평파)'과의 사이도 매우 틀어졌었다. 물론...5년이 지난 지금 '홍국영'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서 전에 읽었던...'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가 오버랩되는 것은 결코 자의적이 아니다. 이명방은 그 자신이 믿고 있는 유교를 사람의 도리로 봤지만, 이 당시 유교는 사람의 도리와 신하의 도리, 그리고 아녀자의 도리, 대장부의 도리등...여러가지로 갈려져 있다. 그리고 오직 체통과 체신에 의해서만 이런 것들을 행하려는, 그때 그 당시의 세기말적인 시대의 혼란상이 더불어 같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좀 빗나간 얘기일 수 있지만...'요시무라 간이치로'나 '이명방'(혹은 백탑파)이나 달리 보이지 않는다..

백탑파 세번째 이야기는 내년에 나온다고 하니...이 역시 기대되는 바이다. ^^"

<덧붙임>

1. 이 리뷰에서 언급한 얘기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 불과하고..사건을 해결하는 이들(솔직히 김진의 능력...이명방은 항상 김진의 뒤만 쫓아가다 끝남..그래서 더욱 더 애착이 가는 것일지도..)의 능력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겠다. 그리고 끝에는 그리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반전이 도사리고 있어서...좀 단순했다고 생각한 <방각본 살인사건>보다는 더욱 더 이야기가 짜임새가 있고, 한결 구성졌다고 보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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