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과 브레히트 - 예술과 정치의 실험실 엑스쿨투라 7
에르트무트 비치슬라 지음, 윤미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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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트무트 비치슬라의 『벤야민과 브레히트: 예술과 정치의 실험실』(2015, 문학동네)은 당대의 가장 예리한 비평가와 작가의 만남을 다룬다. 동독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저자 에르트무트 비치슬라는 현실 사회주의의 공식 시인 브레히트가 아니라 체제의 모순을 파헤치는 예술가 브레히트에 주목한다. 반면 벤야민은 동독에서 낯선 존재였고, 현실을 돌파하는 해방의 기획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에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비치슬라는 벤야민과 브레히트의 관계를 문헌학적으로 살펴보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맺어진 역사적 배경과 그들 사이의 교류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두 사람이 쓴 공식 논문을 비롯해 일기와 편지 등 다양한 출처의 기록을 모아놓았기에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책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브레히트의 자장 안에서 벤야민을 해석하는 걸 넘어 그걸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이 가끔 거슬린다. 일종의 전략적 배치일 텐데, 게르숌 숄렘과 테오도어 아도르노를 비롯한 벤야민의 친구들이 벤야민과 브레히트 사이의 관계를 당혹감과 걱정 속에서 바라본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숄렘은 브레히트가 벤야민의 유대-신학적 관점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아도르노는 브레히트의 '유물론적' 접근에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숄렘과 아도르노, 브레히트[이들 사이에는 그레텔 카르플루스(후에 아도르노와 결혼해 그레텔 아도르노라 불린다), 에른스트 블로흐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막스 호르크하이머 등이 끼어 있다]에게 벤야민은 저마다 자신의 이론적·정치적 입장을 투사하고 해석하는 장처럼 보인다. 서독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아도르노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했고, 숄렘은 역시 벤야민을 자기 쪽으로 견인하려 한다는 문제의식이 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벤야민과 브레히트 사이의 우정은 둘의 이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 브레히트는 벤야민의 유대-신학적 관점에 비판적이었고 때로는 애석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단적으로 브레히트는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그 소논문은 (형이상학과 유대적인 사유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고 간단하다"고 말하면서 유대-신학적 관점의 관념론과 뚜렷하게 선을 긋는다. 그럴 때마다 벤야민은 브레히트와의 차이를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했을 것이다. 벤야민에게 카프카 해석과 보들레르 해석이 그렇듯, 유대-신학적 사고라는 한 극단과 역사유물론이라는 또 다른 극단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벤야민과 브레히트는 미완의 기획이었던 잡지 『크리제 운트 크리티크(위기와 비평)』를 준비하며 '개입하는 글쓰기'를 관철시키고자 시도한다. 게다가 두 사람은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의 편에 선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비치슬라가 저자 후기에 인용한 벤야민의 문장 그대로. "우리 자신에게는 과거의 사람들을 감쌌던 바람 한 점이 스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듣는 목소리들에는 이제는 말이 없는 목소리들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지 않은가?" 


  수십 페이지를 채운 미주에 지쳐갈 즈음, 저자 후기를 읽었을 때 통일을 전후로 한 동독에서 벤야민과 브레히트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다. 비치슬라는 헤겔과 마르크스, 막스 베버, 한나 아렌트 등을 읽는 세미나에서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읽었다고 적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세미나의 주최자였던 카리스마 있는 목사가 사실 수십 년 동안 동독 비밀경찰의 스파이였음을 덧붙인다. 영화 <타인의 삶>을 연상시키는 이 부분에서,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국가보안부로서는 벤야민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는 우커마르크 출신 스파이의 서류뿐 아니라 자이델과 레클람 출판사의 편집부 직원의 통화를 도청한 증거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국가보안부의 한 자료에는 "작가들 사이에 벤야민이라고 불리는 신참자 또는 초보자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결과적으로 벤야민은 문화부에서 일하는 한 젊은 직원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보고 업무를 맡은 이 남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나약한 사람으로, 지적이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기 쉬운 인물이라고 한다." (403쪽)


  비밀경찰은 언제나 '앎(지식)'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벤야민에 대한 국가보안부의 해석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어쩌면 그들이 제대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주 세속적이고 피상적인 한도에서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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