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 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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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  


다만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의 가치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의 중요함은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

-p, 15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어야 할 일이 생겨서, 데미안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분명 도서관에 있는 걸 확인하고 갔음에도 책은 보이질 않았고, '이렇게 된거 헛걸음 할 순 없으니까 가볍게 읽을 책 몇 권만 빌려가자'는 생각으로 신작도서 서가를 훑어봤고 그렇게 도서관을 나올땐 7권의 책을 품 안에 안은 상태였다.


이게 다 <데미안>이 없었던 탓이라며 애써 책에 대한 과욕을 포장해본다.


7권의 책 중 요시모토 바나나의 <어른이 된다는 건>이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만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본 여류작가 중 한명이기도 해서 자연스레 집어왔는데 아마 나도모르게 제목에 더 끌려버린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재미가 없는건가' 하며 수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중이니까.







 

요시모토바나나 어른이된다는건.JPG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겉표지가 벗겨져있어 하얀 눈을 배경으로 찍기엔 살짝 추워보이기도 한 이 예쁜 보라색의 책은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제목과는 다르게 참 가볍다. 가볍다는 건, 두께가 얇은 책이라 책 무게가 가벼워 가방 속에 넣어다니며 시간이 날때마다 꺼내읽고싶은 책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의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가볍고도 담백한 분위기가 이 책에서도 드러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책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한번쯤은 꺼내볼 8가지 질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지, 

공부는 꼭 해야 하는지, 

친구란 무엇인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인지, 

산다는 것에 의미는 있는지, 

열심히 한다는 건 무엇인지. 


이 어려운 질문에 그녀의 생각을 담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카페에서(테이블은 반 정도 손님이 앉아있었으면 좋겠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담백한 차를 앞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그녀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꼭 던지게 될 저 질문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어보는 건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저런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지기는 쉽지만 타인에게 꺼내기엔 무거운 분위기가 되지는 않을까, 너무 감성적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것들이니까. 하지만 고맙게도, 그녀와는 그런 걱정 없이 이런 무거운 주제를 두고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앞으로도 여전히 이런 질문들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해도 해도 끝이나지 않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런 질문들을 물을때마다 그녀와 가졌던 이 편안한 시간이 떠올라 이 질문이 (이 질문이 풍기는 분위기처럼)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모두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어린 시절에는 자기가 책임 지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겠지요.

어른이 되면 어떤 일에든 책임과 위험 부담이 따르니, 그 무게 때문에 피곤하고 지쳐 버리곤 하죠.

하지만 모두가 말하는 '어린 시절'이란,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풍요로운 공간 아닐까요.

어른이 되면 많은 것들이 이미 익숙한 듯한 기분이 들고, 멍하게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어요.

저는 수업 중에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자는 일이 많았는데, 그 시간이 만들어 준 머릿속의 풍요로운 공간을 지금도 똑똑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태도로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듯하지만, 의미는 있었던 것이죠. 해야 할 일이 많은 어른의 생활 속에서 그런 에너지를 되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행을 떠나 눈에 보이는 경치라도 바뀌지 않는 한,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공간뿐이니까요.

어린아이 같은 풍부한 에너지로 어른의 자유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면…… 저도 그럴 수 있기를 늘 바라고 있답니다. 

-p, 31~32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현대는 그렇게 평범함의 장점마저 잃어버린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어디까지나 제 추측인데요, 그런 사람들은 평범한 자신을 어떻게든 그렇지 않다고, 이런 건 평범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기에 더욱이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 감각이 중요해지는 것이죠. 감각은 사건이나 사물의 이면에 있는 무언가를 보게 합니다. 

또 자신의 감각을 정말 믿을 수 있다면, 남들이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척'을 할 수 있겠죠. 다른 사람에 대한 일종의 배려로 말이에요. 그러다 여차해서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선이 생기면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고요.

한편, 모두와 똑같이 행동한다고 해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애써 평범하게 군다고 누가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는 것도 아니고 먹여 살려 주는 일도 없죠.

저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은 인상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는 쪽이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

그러니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합니다.

-p, 64~67 (똑같다는 건 뭘까?)



그 시절의 자신은 그런 줄을 모르고, 앞날에 훨신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제한했죠. 비키니도 열심히 입고, 요란한 화장도 해 보고, 더 신나게 먹을 걸 그랬어. 안 그래도 꽤 한 편이지만, 더 많이 많이.

그러고는 퍼뜩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구나,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의 내가 본다면 30년 후에 살아 있다치고 건강을 잃었다면, 지금의 나를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할 거야, 하고 말이죠.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껏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것이 미래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p, 96~98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일까?)



제가 생각하는 자립은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아무 말을 않고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부모 대신 친구와 의논해도 좋지만, 그 일을 부모와 형제자매에게는 말하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문제를 몇 번 해결한 때가 자립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젊은 시기에 자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 역시 부모에게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 그즈음에 자립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이켜보면 마흔 살쯤이 아닐까 싶네요. 자신의 두 발로 서서 홀로 걸어가려는 의지도 중요해요. 하지만 평생을 자립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무리해서 열심을 강요해선 안 되겠죠.

다만 저 자신은 혼자 서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풍요로운 느낌이 들어서예요.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고, 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느낌이. 마지막에 가서는 부모를 대할 때,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네, 하는 그렇게 되서야 비로소 자립한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 124~126 (내일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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슝슝희 2015-12-0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가장 좋아하는데도 리뷰를 멋지게 쓰지 못했는데, 이렇게나 잘 쓸 수 있다니...
:D 가끔씩 님 서재에 방문하고 싶네요^^

세은 2015-12-02 21:22   좋아요 0 | URL
과찬이세요ㅠ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