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울지 않는 아이 + 우는 어른 - 전2권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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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반짝반짝 빛나는> 을 통해 에쿠니 가오리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의 소설에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와 캐릭터에 매료되었고 어느새 그녀의 소설을 전부 찾아 읽어 내려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그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곤 합니다. 이때 찾게 되는 것이 그 작가의 에세이집이지요. 자서전처럼 작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써내려간 글이라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녀의 에세이 중 처음으로 접한 건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이라는 에세이였어요. 지금 저의 블로그 이름이기도 하지요.

에쿠니의 감성을 닮고 싶어서 그녀의 모든 것을 따라하던 때라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나열해 놓은 이 에세이가 정말 좋았습니다. 다음으로 읽은 에세이는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로, 에쿠니의 결혼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재밌었고 '나도 나중에 이런 결혼생활을 한다면 참 좋겠다.' 싶었더랬지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그녀의 에세이집이 무려 두 권으로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기대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에세이집보단 절 만족시키지 못했어요.

 

에쿠니의 글은 역시나 너무나 훌륭해서 책을 다 읽고나선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한아름 이었지만 뭔가 전체적인 느낌으론 ...

특히 이 에세이집엔 에쿠니가 읽은 책에 대한 독서기록이 있어서 어떤 책을 읽고 뭘 느꼈을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제가 아는 책이 없어서 그런지 와닿지가 않아서 속상했어요.

 

그래도 제가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공감할 글들 나눠볼게요.

 

< 울지 않는 아이 中 >

 

일주일쯤 전에 남자 친구와 꼬치 커틀릿을 먹으며 그런 얘기를 했어요. 독신인 그 친구는 결혼한 여자와 연애한 적은 한 번도 없고, 결혼하게 되면 아내가 아닌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일도 절대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는 ‘요컨대 의지의 문제’라고 했어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겁이 나서 절대로 누군가의 아내가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결혼 후 몇 년 동안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한 번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남편의 의지라면 아내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남편이 자신의 강한 의지 때문에 날마다 집에 돌아오는 것이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면 매 순간 불안해서 어떻게 견디겠어요. 불안해서, 너무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겠죠. 매 순간 불안해하면서 몇십 년을 같이 산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다들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연인이라면 적어도 그 사람이 놀러 왔을 때, ‘내가 보고 싶었나 보다’ 하고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반가워서 껴안을 수 있잖아요. -p, 17

 

 

종이에 갇힌 또 하나의 공간을, 제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제 눈으로 읽어나가면서 해방시키는 능동적인 작업이 지닌 즐거움. -p, 66

 

 

책 읽기는 고혹적이다. 금단의 열매. 그만 읽고 싶은데 그만 둘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을 때의 흥분감은 거의 육체적 쾌락이라 할 수 있다. -p, 67

 

 

읽고 싶어 사놓고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잔뜩 쌓여 있고, 전에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책도 잔뜩이다. 그런 데다 일 때문에 읽을 필요가 있는 책, 누가 보내주었으니 읽고서 고맙다는 편지라도 써야지 하면서 그냥 그대로 놔둔 책, 읽어야 할 책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책꽂이를 한차례 죽 훑어보고는 한숨을 쉬며 읽고 싶은 책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골치 아픈 것은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것 자체가 아니다.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들고 만 것이다.

전철을 타거나 목욕을 할 때, 또는 치과 로비에서 책을 읽는 버릇이 붙고 말아 무슨 책이든 들고 가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책 따위 하나도 읽고 싶지 않은데, 책보다는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싶은 기분인데도 책을 읽고 싶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탓에, 읽고 싶은데 읽을 거리가 없다는 갈증에 허덕이는 꼴이 되는 것이다. -p, 67, 68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한다. 그리고 물론 그와 똑같은 정도로 증오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증오다.

 

모든 가족은 변태적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배타적인 집단이 한곳에 모여, 그들만의 리듬으로 그들만의 아우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 해도 기이하다. -p, 72

 

 

어린애보다 어른이 친절하고, 훨씬 더 선량하며 마음도 약하다는 것을, 야마다 씨는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이 어른은 연애를 하고 친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는 무엇이나 고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없이 감미롭고 또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p, 102

 

 

흥미로운 것은 작가와 번역자의 운명적이라고 해도 좋을 궁합이다. 가령 샘물 같은 문장을 미치시타 씨가(마찬가지로 페리에 같은 문장을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번역했다면 이렇게나 (또는 그렇게나) 아름다운 번역문으로 완성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작가와 번역자 사이에는 번역 인력이 존재하는 듯하다. -p, 141, 142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p, 146

 

 

그래서, 그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이란 참 묘한 장소다. 불과 한두 시간 머물러 있을 뿐인데, 들어설 때와 나설 때의 사람이 전혀 달라진다. 머리 스타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용 전과 사용 후. 미용실에 가면 나는 언제나 장난감 병원을 떠올린다. 망가지고 헌 인형들의, 아주 단순한 수리 공장.

수리를 끝낸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설 때의 그 개운하고 좋은 기분은 다른 장소에서는 맛볼 수 없다. 일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초췌해 있을 때조차 미용실에 있는 동안에는 그렇다는 것을 잊어버리―기보다 강 건너 일처럼 멀게 느껴진다―고, 문을 나설 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기운이 솟는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기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머리 손질을 했다곤 해도 눈에 띄게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해도 절대 예뻐졌다는 느낌은 아니다. -p, 160, 161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말에 대해.

내일 또 보자.

밤에 잠들기 전, 나와 동생이 반드시 나누는 인사말이다.

잘 자라고 말한 후에(또는 대신), 꼭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단박에 행복해진다. 내일도 놀 수 있다고.

내일이 있다는 것은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면 새삼스럽게 기쁘다. 안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또 보자.

얼마나 행복한 말인가. 내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

결혼하고서 남편에게도 그렇게 말해보았다. 나는 주로 밤에 일을 하는데, 서재에 틀어박히기 전에 “내일 또 봐요”하고서 손을 흔들었다.

남편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어디 가?”

잠옷 차림으로 텔레비전을 보던 그는 어이없게도 순순히 손을 흔들며,

“너무 과하게 마시지 마. 모두에게 안부 전하고.”

하고 신뢰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모두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요즘’ 남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p, 236, 237

< 우는 어른 中 >

 

불현듯 칼로리가 뇌리를 스치는 일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나약한 생각을 떨쳐낸다. 이렇게 호사스럽고,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버터는 내 몸 안에서 뼈를 반짝반짝 빛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3년 전에는 아빠가, 올해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근자에 두 번이나 화장터에 다녀왔다. 언젠가 내가 죽으면 화장터 사람이 뼈를 보고는 놀라리라. 튼튼하고 하얗고 반짝반짝 빛날 테니까.

“호사스러운 분이었군요.”

화장터 사람이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먹거리란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p, 20

 

 

나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것에 무척 욕심이 많다. 언제나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휴가라는 개념도 별로 없다. 휴가는 커녕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을 한다. 그렇잖은가. 만약 주말이나 휴가 때 놀기 위해서 다른 날 일을 해야한다면, 그 ‘다른 날’이 너무 많아 괴로워진다.

나는 하루하루를 한결같이 즐겁게 살고 싶다. 곰돌이 푸처럼. 푸는 멋지다. 맛있는 꿀과 친구와의 교류, 그는 그 조촐한 즐거움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곰돌이 푸』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것으로 가득하다.

제목도 저자의 이름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 언젠가 읽었던 책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온갖 쾌락 뒤에, 잔다는 쾌락이 아직 남아 있다.’

이건 거의 내 삶의 신조다. 뒤집어 말하면, 가령 어떤 우울한 날에도 최소한 ‘잔다’는 쾌락은 있는 셈이다.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행복이나 쾌락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는가 하는. -p, 30, 31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가 들어오게 하고는―비 내리는 날에는 자잘한 빗방울이 날아든다. 수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풍경은 내게 작은 행복이다―욕조에 몸을 쭉 뻗은 채로 나는 언제나 책을 읽는다. -p, 57

 

 

이 세상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멀리에서 또는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끌리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다는 것은 때로 너무 어렵다. -p, 109

 

 

칭찬이란 하는 사람의 자질을 묻는 것이다. 문장력이 없는 사람에게 글을 잘 썼다고 칭찬을 받아봐야 기쁘지 않고, 미각이 둔한 사람이 어느 레스토랑의 음식을 칭찬한들 신빙성이 없다. 평소 감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옷차림을 칭찬받는 날은 슬퍼지고 만다. -p, 117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되려면,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서로에게 조금도 미련이 없을 것. 다른 한 가지는 양쪽 다 행복할 것. 행복이란 애매한 말이기는 하지만……. 즉, 제대로 살고 있을 것. 일이든 친구든 가정이든 연인이든, 아무튼 자신이 있을 곳을 갖고 있을 것. 그러면 오랜만에 만났을 때 가공의 존재처럼 처신할 수 있다. 편하지만 현실적으로 얽히지 않는 상대.

(…)

아마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현실을 좋아하는 사람 성격에는 맞지 않는 우정의 형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에,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에게 남자는 애당초 서로가 판타지다. 언제든, 그 누구에게든,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러니 가끔은 판타지로 도피해도 좋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고 싶다. -p, 140, 141

 

 

그런데 나는 친구가 여자아이를 낳으면 그 여자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멋진 여자가 되어야 해. 멋진 여자가 되어서 남자를 울리는 거야.”

또 친구가 남자아이를 낳으면 그 남자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멋진 남자가 되어야 해. 여자를 울리지 않는 멋진 남자가 되는 거야.”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멋진 여자는 남자를 울리지만 멋진 남자는 남자를 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내 안에 있는 듯하다. 여자는 멋진 남자 때문에 제멋대로 우는 것이지, 그가 울려서 우는 것이 아니다. -p, 155, 156

 

 

달이 갖고 싶다고 안달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난감하게 한 공주님 이야기가 있다. 제임스 서버의 동화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달이 갖고 싶다고 할 때 난감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본인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동경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도,

그래도 여자라면, 뭔가를 동경하는 에너지를 아끼는 그런 여자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p, 162

 

 

어른의 연애(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연애 관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라는 낯부끄러운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한다. 연애를 하면서 어른스럽게 굴어봐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데다 연애는 애당초 어른이 하는 것인데, 그 이상 어른스러워 어쩌자는 것인지.

좋아하는 사람과는 줄곧 함께 있는 게 당연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의견도 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한다. 원래 혼자인데, 그 이상 혼자가 되어 어쩌자는 것인지. -p, 190

 

 

인생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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