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 가장 인상적인 세계 명작 속 요리 50
다이나 프라이드 지음, 박대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귀리죽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것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 오트밀을 먹으면서 리뷰

책소개를 보고 대충 기대했던 것 이상의 책이다. 여기에는 역시 개인적 경험이 들어가서 더 그렇기도 하지만. 

음식 책인데, 왜 개인적인 경험이냐고? 그렇지, 내가 이번생에 요리와 먹는 즐거움을 포기했다고 매일 노래하니깐,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음식이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심지어 나 같은 사람에게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먹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 그러니깐 책은 마음의 양식. 내가 마음의 양식은 그 누구보다도 쩔게 먹고 있어요. 


그래서 그동안 문학과 음식을 콜라보레이션한 책이 엄청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더 맘에 드는건,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양식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지. 그동안은 후자에 포커스를 맞춘 책들이 대부분이었거든. 적어도 이런 음식 사진 나오는 책들은 99%라고 생각하는데.



사진을 밤에 작업실에서 찍었더니, 노란불빛이 작렬. 여기서 노란불빛 제거하고 봐주세요. 설마 조명 때문에 검정색이 금색으로 보이고,파란색이 흰색으로 보인다거나 하는건 아니겠지? (아, 나는 파검파) 




첫번째 나오는 사진부터 맘에 들어. 그래, 이 책에 사진은 무척 중요해. 


서문이 재미있는데,


책은 2년쯤전,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의 작은 디자인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내가 읽은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음식들을 요리하고, 디자인하고, 사진으로 찍을 생각이었다. 사진기와 곧 망가질 것 같은 삼각대 하나, 홀푸드 상품권, 그리고 짝이 맞지 않는 접시들로 가득한 찬장이당시 내가 가진 전부였고, 프로젝트 마감일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첫번째 사진들로 '올리버 트위스트', '호밀밭의 파수꾼', '모비딕',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그리고 '용 문신을한 여자'를 찍고 나서 완전히 그일에 빠져들고 말았다. 


결국 저자는


책 덕분에 내가 늘 즐겨 하는 일상 활동 한 가지, 즉 상 차리는 일을 마음껏 할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일의 성격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 즐겁고도 강박적인 보물 찾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품을구하는 일이 나의 삶과 내 은행계좌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친구들과 친척들의 찬장을 강탈하는가 하면,중고품 할인점이며,벼룩시장, 이베이, 엣시, 그리고 미심쩍은 마당 세일까지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완벽한 식탁보나 버터 나이프, 혹은 소금통이나 플라스틱 장식품을 찾느라 늘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모비딕'에 꼭 맞는 큰 백랍 맥주잔을 입수하기 전에는 그 책의 사진을 찍지도 않았으니, 책에는 그것이 나오지 않는데도 왠지 사진에 꼭 그게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소위 항공샷이라고 하는 위에서 내려찍기. 

그 백랍잔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만, 서문에서 저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살면서 한번쯤 홀딱 빠져서 자나 깨나, 아침에 눈뜨자마자,밤에 자기 전에, 뭘 봐도 그 생각만 나고 그런 일이 있다는건 멋진 일이다. 내게는 좋은건지 나쁜건지 (나쁜면은 위에 저자가 말했듯 계좌강탈) 그런 일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기에 저자의 기분이 느껴져 공감의 웃음이 지어진달까.


역시 서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디자이너이고,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소품을 모으고 테이블세팅을 했다. 요리꾼들이 만든 책과는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껴진다면 그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시피가 없는 것이 어색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생략'과 '상상'의 묘미가 있어서 나는 좋았다. 


롤리타에 


늘 그랬듯이 태양이 집 주위를 돌면서 오후도 무르익어 저녁으로 접어들었다. 술 한 잔을 마셨다. 한 잔 더, 또 한 잔 더. 진과 파인애플 주스를 섞어 마시면 늘 기운이 샘솟는지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다. 제멋대로 자란 잔디밭을 돌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관심'이다. 민들레가 잔뜩 자라있고 지긋지긋한 개 한 마리가 - 나는 개를 싫어한다 - 해시계를 올려놓았던 평평한 돌을 더럽혀 놓았다. 대부분의 민들레는 이미 해님에서 달님으로 변해 있다. 진과 롤리타가 내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접의자 몇 개를 치우려다가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핏빛 얼룩말들! 


이 정도의 문장이 나와 있다. 



파인애플 주스와 섞인 진 칵테일과 함께 안주 땅콩도 같이 놔준다거나 

요리가 하나 언급되어 있으면 옆에 마실것도 같이 놔준다. 책에 안 나온 음료는 무슨 음료인지도 (게다가 위에서 찍어서 더 )알 수 없지만, 이런 상상력이 재미있다고 느껴진다. 


대단하게 꾸미고 찍은게 아니라 소소하게 주변에서 힘써 찍었다는게 글로도 사진으로도 드러나는데, 그게 또 소박하니 맘에 든다



걸리버 여행기는 귀엽고 



앞에보면 세팅하는 사진도 들어가 있다. 세팅들이 진짜 소소하다. 걸리버 여행기 대각선 위에는 아마 로빈슨 크루소 찍을때 사진인가보다. 갈매기가 엄청 많았다고 회고하는 부분이 들어가있다.



향수병에 흙을 먹는 '백년동안의 고독' 




코맥 맥카시의 '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먹었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복숭아 통조림과 배통조림 





보봐리 부인. 음식 위에 장미나 인형은 세팅인줄 알았는데, 책에 나온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귀리죽'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오트밀과 비슷. 물론 내 오트밀에는 시나몬 계피 설탕이 들어있지만.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먹다남은 음식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50가지 문학작품 속의 문구를 읽는 것도 즐겁고, 저자의 상상력에 동참해 책 속의 주인공들이 먹었을법한 요리와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다. 


책 인용 아래에는 사소한 것들,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만, 저자가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메모해뒀을법한 것들이 트리비아로 적혀져 있다. 요리의 유래라던가, 작가 이야기라던가, 책 속의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레시피가 어디 처음 나왔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즐거움을 줬던 책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comi 2015-03-1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기대하고 있었는데 제 예상과 다른 부분이 많네요. 특히 작가의 이미지 메이킹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은 과정샷이 흡사 소설의 메타내러티브처럼 낯설게 느껴지네요. 작가분이 노력하신 흔적은 보이지만 사진 촬영 기법과 소품들도 생각 보다 너무 현대적인 것 같고..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네요. (백년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흙은 심지어 고급 차tea 같아요) 뭔가 좀더 묵직하고 회화를 보는 듯한 옛스러운 고전적인 느낌을 원했는데 너무 큰 바람이었군요.ㅜ
자세한 후기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이드 2015-03-13 14:29   좋아요 0 | URL
문학을 디자이너 입장에서 접근해서 `요리`로 풀어냈다는 점이 기존의 비슷한 주제의 책들과 달라서 좋았어요. ^^

cocomi 2015-03-1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선한 시도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학과 요리를 붙여놔서 반색했는데 기대가 너무 컸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