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작은 새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벚꽃,벚꽃,벚꽃... 그리 넓지도 않은 공간을 활짝 핀 벚꽃이 거의 빈틈없이 뒤덮고 있었다. 카운터 중앙에 거대한 항아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에라도 전시되어 있을 것 같은, 고색창연해 보이는 커다란 항아리다. 그 항아리를 대담하게도 화병으로 삼아 근사한 벚나무 가지를 꽂아두었다. 활짝 핀 벚꽃 사이로 톤을 낮춘 조명이 어렴풋이 비친다. 깨끗한 카운터와 바닥, 테이블이 연홍색 어둠에 쌓여 있었다.  

이런 바 어때요?  

"어서 오십시오."
벚꽃 저편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맑은 여자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여자 바텐더가 혼자 꾸리는 가게 같다.  

에그스탠드.라는 이름의 가게로 20대 후반이나 그 좀 더 위의 나이인 여자 바텐더. 가지런히 자른 짧은 머리와 적갈색 헤어밴드로 깔끔하게 드러낸 시원스러운 이마가 지적인 인상을 주는 여자 바텐더가 꾸려 나가는 바.   

내가 좋아하는 몇가지 패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바' 가 배경인 이야기이다. 술도 나오고, 바텐더도 있고, 안주도 있고, 미스터리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  

을 찾다가 추천 받은 <손 안의 작은 새> 가노 도모코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는데, 이번이 네번째 책이다. 제목들은 낯익은걸 보면, 거부감 드는 표지 (그러니깐 내 취향과 거리가 극과 극인) 들로 볼 생각도 안 했던 책들이다.  

추천 받고 뒤늦게 읽은 곤도 후미에. 만큼이나 문장들이 귀엽고 와닿는다.  

다섯개의 단편집으로 되어 있다. 연작.이라고 해도 좋은데, 읽으면서 무지 기대한 마지막 단편이 약간 실망스럽긴 하다. 밝혀주길 바랬던 수상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내 나오지 않았어서 말이다.  

주인공은 다케시와 사에. 이 둘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단편에 나왔던 인물이 그 다음 단편에 나오는 등, 연작집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저 멋진 단편들만 늘어 놓는 것보다는 이 편이 더 재미나다. (주인공들의 시점 변경은 좀 헷갈리긴 하지만)  

표제작인 ' 손 안의 작은 새'는 다케시의 이야기이다. 다케시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배와 선배와 결혼한 다케시의 예전 짝사랑 요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에와의 만남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단편 하나인데, 두가지 이상의 미스터리가 있다는 점도 지금 생각하니 좀 헷갈리네. 요코의 미스터리와 사에의 미스터리. 요코 때문에 열받아서(?) 바에 들어갔다가 만나게 되는 사에. 그러고보니 시점이 헷갈렸던건, 단편별로 바뀌는 것뿐 아니라 바로 이 '손 안의 작은 새'라는 한 단편 안에서 바뀌기 때문에 헷갈린 느낌 받았었구나. 여튼, 바에서 별 볼일 없는 남자와 인생의 우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과거 경험을 말하고, 다케시가 끼어들어 어릴적 사에의 미스터리를 풀어준다. 

그 다음부터는 대부분 사에가 미스터리를 제시하면, 다케시가 풀어내는 식이다. 그 둘이 늘 가는 바의 이름은 '에그 스탠드'로 리뷰 맨 위에 이야기한 바로 그 바이다. 바의 여주인이자 바텐더에 대한 미스터리도, 그리고 단편집 마지막의 '에그 스탠드' 라는 제목에서 '에그 스탠드'의 유래도 나오는데, 그 또한 재미나다.  

로맨스.보다는 미스터리. 일상미스터리.라고 부를만큼 코지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미스터리는 아니고. 각각의 독백, 특히 다케시의 독백들이 와닿는다.  

에그 스탠드라는 바에는 술도 있고, 여자 바텐더도 있고, 늘 꽃도 있다. 첫 에피에는 흐드러진 벚꽃으로 시작하지만, 황매화일때도 있고, 튤립일때도 있고,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런 분위기들과 사에와 다케시의 점점 발전되어 나가는 연애라던가.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이 봄 날에 어울리는 미스터리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맞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에 대해 몹시 낙담한 나 자신을 깨달았을 때는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찻집 창밖으로 멀리 그녀를 발견했을 때도.
그녀는 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나부끼며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 일부러 뒤를 돌아보았다. 그럴 만도 하다. 보통 스무 살 넘은 젊은 여자는 시내에서 전력질주 따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사에는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 같은 기세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나 자신을 지극히 냉정 침착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쿨한 녀석이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분하지만) 나는 감동한 자신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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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1-03-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인용하신 대목, 참 귀엽네요. ^^ (분하지만) 감동한 자신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라니.
읽어보고 싶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런 표지는 제발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