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눈, 푸른 눈.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작가가 모순된 말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어떤지를 묻고 잇는 것이 아니고, 여주인공의 눈 색깔 자체가 중요한지 어떤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여인의 눈 색깔을 언급해야 하는 소설가들에게 나는 연민을 느낀다. 선택이란 거의 있을 수 없고 어떤 색깔이 선택되든 필수적으로 진부한 암시가 따른다. 그녀의 눈이 푸르면 순진함과 정직함의 암시가 따르고, 검으면 열정과 깊이를 암시한다. 그녀의 눈이 초록이면 야성과 질투를 암시하고, 갈색이면 신빙성과 상식을 뜻한다. 그녀의 눈이 자줏빛이면 그 소설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쓴 것이다. 이런 진부한 암시에서 벗어나려면 해당 여인의 성격에 대한 보충 설명 괄호를 한 자루는 써야 될 것이다. -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中-
마지막 문장에서 웃었다. '그녀의 눈이 자줏빛이면 그 소설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쓴 것이다' 풉-
그러네. 확실히, 외국 소설에서는 눈의 색깔이 주인공의 성격을 나타내는 클리쉐가 되기도 한다.
진부한 암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꽤 만만한 장치이지 않은가.
챈들러의 소설에 나오는 '그녀'의 눈이 '자줏빛'인걸 무얼 의미하는지 더 말해보면,
자줏빛은 아마 purple eyes 혹은 violet eyes를 의미하는 것일게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거의 존재하지 않는 눈 색깔이다. purple 은 신화에나 존재할법한 컬러이고, violet은 blue계에서 나오는데(유전적으로, 색상적으로) 아주 희귀하게 존재한다고 한다. (위키의 예를 보면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지방 뭐 이런 곳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violet eyes 가 있다.
그녀의 눈은 사실, 그린- 블루 계통에 가깝지만, 빛에 따라 변화무쌍하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신비한 눈빛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바비 인형의 컬러 역시 '바이올렛 아이즈' 이다.
다시 처음의 줄리언 번즈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의 인용부분으로 가자면, 위의 눈 색깔 이야기는 <보봐리 부인>의 엠마의 눈색깔 이야기 중에 나온 얘기다. 보봐리 부인의 실제 모델이 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의 눈은 색깔이 불분명하여 빛에 따라 초록, 회색 또는 파란빛이었으나, 호소하는 듯한 표정이 그녀의 눈에서 떠나는 일이 없었다' 고 나오고 있다.
리즈 테일러 역시, 그런 불분명한 색깔의 호소력 짙은 눈빛이라는데 한 표.
무튼,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은 바이올렛의 아이컬러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렛 아이즈'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역시 아이콘 중의 아이콘.
purple color 를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눈색깔이라고 했지만,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Alexandria's genesis 라는 유전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색깔은 purple이라고 한다. 위와 같이
위의 사진이 합성인지, 콘택트인지, 실제 눈 색깔인지는 알아서들 생각하시고,
이 병의 증상으로는 퍼플 아이즈, 몸에 털이 없고, 피부가 하얗고, 반짝이며 흠이 없고, 병에 걸리지 않으며, 생리를 안 하고 .. 응? 배설을 하지 않거나, 거의 하지 않고, 평균수명은 170세이며, 노화현상이 거의 없고....
도시괴담 혹은 신화에 가까운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챈들러의 책을 많이 읽기는 했는데, 여주인공의 눈 색깔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문장을 읽는데, 확- 공감이 가서 웃음을 터뜨리기는 했는데.
거의 존재하지 않는, 혹은 괴담, 신화속에서나 존재하는 violet eyes 혹은 purple eyes 의 '그녀'들을
등장시키는 챈들러. 라고 생각하니, 뭔가 새로운 면을 알게 된듯하다.
올 여름은 챈들러를 다시 읽으며, 그녀들의 눈 색깔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