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다른 사람의 그 무엇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다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아주 잘 찾아낼 뿐입니다.
- 시린 sirini@netian.com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아이들이 만들어 논 찰흙 부조물이며 소꿉 놀이 재료가 주인을 잃어버린 채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제 유년을 감싸 안아 주었던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모모 생각이 났어요.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던, 기워 입은 커다란 코트와 빗질을 통 안 한 듯 보이는 삐죽 머리카락의 7살 난 꼬마숙녀 말이죠.
그런데 만약, 모모의 모습이 그림으로 형상화되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도 그 소녀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순간순간 모모와 닮아있는 꼬마의 모습이라도 유추해 낼 수 있었을까요!
어쨌든 저는 지금부터 어린이 책에 소개된 그림에 대해서, 그리고 그 그림이 인간 본연의 잠재적 능력인 '직관'에 수용되고 재창조되기까지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를 몇몇 사이트를 통해 말하려고 합니다.
일러스트와 텍스트
일러스트의 어원은 'to make light' 로서 보이지 않는 대상에 빛을 비추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즉 인간의 감정이나 사상 등에 시각적 효과를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일러스트를 백과사전적으로 정의하면 '텍스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통해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결국 텍스트와 일러스트 간의 상호종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죠.
어린이 책의 역사 속에서 그림책의 초시는 J. 코메니우스의 [세계도회(世界圖繪, Orbis Sensualium Pictus, 1658)] 입니다. 당시는 청교도들에 의해 삽화의 게재가 허가된 터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중요한 사물의 모습과 명칭, 그리고 인간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 책은 처음부터 반대를 무릅쓸 필요 같은 것은 없었지요. 그러다가 1823년 그림책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조지 크뤽생크의 [그림의 요정이야기(Grimm's Fairy Tales, 영역 판)]를 거쳐 찰스 디킨스와 리처드 도일, 존 러스킨, 빅토리아 시대의 존 테니엘과 아서 래컴 등의 초기 삽화가들이 등장합니다.
이후, 미국의 하워드 파일은 자기 책의 삽화를 그리면서, 이야기와 삽화를 통일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했지만, 사실상 삽화가가 아닌 그림작가로는 영국의 에드먼드 에반스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에반스는 다소 조잡스럽긴 해도 컬러 인쇄를 시도했다는데요. 마더 구스 동요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는 군요. 그리고 드디어 칼데콧 상으로 기려지는 인물 랜돌프 칼데콧이 등장했습니다. 칼데콧은 게이트 그리너웨이와 더불어 에반스가 발굴한 작가들인데, 붓선이 적고 투박한 동선의 묘사에 뛰어난 화가였다고 합니다. 이상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그림 작가들에 대한 자료는 'Early Illustrators of Children's Books from the 19th and 20th Centuries'를 참조하시도록.
현대 그림책의 출발을 알린 랜돌프 칼데콧 (http://www.randolphcaldecott.org.uk/)
자, 그렇다면 칼데콧에 대해서 먼저 짚어봐야겠네요. 칼데콧은 1846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입니다. 어린시절 칼데콧은 동물과 나무 등의 스케치를 즐기던 소년이었고, 어른이 된 후 은행원으로 일하다 신문, 잡지 등에 만화와 삽화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전직을 했다는 군요. 칼데콧은 39세의 나이로 지병인 류머티즘을 앓다 죽습니다. 그때까지 그린 그림책이 모두 18권이고요, 그 중 13권이 마더 구스의 그림이라 네요.
위에서 말했듯이 칼데콧은 에반스를 통해 그림책을 내게 됩니다. 에반스가 반한 그의 그림은 [옛날의 크리스마스]라는 삽화였고요. 칼데콧의 그림은 "그림과 이야기의 절묘한 배합, 동작이 살아있는 선, 그림 곳곳에서 보여지는 해학과 재치로 현대 그림책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에서 매년 최고의 그림책을 그린 작가에게 주는 상이 칼데콧 상이 되었나 봅니다.
랜돌프 칼데콧은 칼데콧의 기념비적인 사이트입니다 (http://www.randolphcaldecott.org.uk/)
그의 작품과 연대기를 확인할 수 있고, 일년에 네번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뉴스레터와 각종 모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지요. 그러나 여느 사이트가 그러하듯 상업적인 요소도 다분합니다. 특별한 메뉴가 존재하는 곳은 아니지만 저는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는 그의 최후 작품인 [찰스톤에서 목화꾸러미를 싣고 있는 흑인들(Negroes unloading bales of cotton at Charleston, South Carolina, USA, 1886)]이라는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흑인의 서민적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에즈라 잭 키츠 (http://www.ezra-jack-keats.org/)
미국 그림책의 전성기는 1945년 이후였습니다. 그 중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면서 어린이의 갈등과 고통을 표현하려고 했던 모리스 샌닥 , 네덜란드 출신의 레오 리오니 , 지금 소개하고 있는 웹사이트의 작가 에즈러 잭 키츠 , 재미있고 매혹적인 학습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린 에릭 칼 , 극장 개봉한 영화 [슈렉]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윌리엄 스타이그 등은 각종 수상경력을 갖은 작가들이기도 하고요.
에즈라 잭 키츠는 폴란드계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뉴욕 브룩클린의 빈민가에서 자란 키츠는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고, 이 사이트의 메뉴 Keats characters를 보면 알 수 있듯 그의 작품 주인공은 모두 흑인입니다. 백인에 대한 증오 때문이라기보다는 흑인아이가 자신의 서민적인 정서에 훨씬 적합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에릭 칼과 같은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요, 때론 무늬가 들어있는 종이, 마른 잎, 천 조각과 오래된 발렌타인 데이 카드 같은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볼 때면, 배경으로 쓰인 키 높이 신호등, 붉은 벽돌담, 색 분필로 그려내는 낙서, 커다란 노랑꽃무늬의 벽지([휘파람을 불어요]) 등 흑인소년 피터가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묘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즈라 잭 키츠 사이트의 특징적인 부분은 'books, honors, arts' 라는 메뉴의 Fine art 부분에서 유화 분위기가 나는 키츠의 다른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 키츠의 화가로서의 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 글쎄요, 이걸 과연 게임이라고 불러야 할까, 의심스러운 'guessing game'. 키츠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이들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이 될 것 같군요.
'피터 래빗'의 작가, 비이트릭스 포터 (http://www.peterrabbit.co.uk/)
미국 그림책과는 달리 영국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간결한 짜임과 자유로운 그림 체로 희극적인 작품을 구사했던 존 버닝햄 , 그림책 삽화에 만화기법을 쓴 레이먼드 브릭스, 유아용 그림책에서 색연필을 소재로 한 섬세한 그림을 보여준 헬린 옥슨버리와 더불어, 이 사이트 그림의 모태가 된 비이트릭스 포터가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라고 볼 수 있는데요. 비이트릭스 포터는 칼데콧의 화풍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터는 주변생활의 잡다한 풍경들, 그 중에서도 작은 동물들을 관찰하여 메모를 해 두었다가 캐릭터를 완성하는 작가였다고 하네요. 이 말은 사이트의 메인을 보면 바로 확인하실 수가 있어요. 피터 래빗, 벤자민 버니, 지미마 퍼들 덕이 주요한 캐릭터인데, 특징적인 것은 스토리 버튼을 누르면 읽는 재미가 아니라 듣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언젠가 들어본 듯한 영어교재 속의 테입에서 듣던 목소리와 비슷해서 실망이지만요. 아, 그리고 'gift & books'에서는 아주 정중하게 쇼핑 몰을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사이트는 플래쉬로 제작되었고, 아무래도 교육용 컨텐츠들이 많아요. 물론 게임도 있지요. 아이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일본의 대표적인 삽화가, 이와사키 치히로 (http://www.chihiro.or.jp/english/index.htm)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 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일본의 교코 마스오카 씨의 1994년 IBBY 회의 발표문에서
보면 "일본의 도서시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 각국 어린이 문학들에 가장 열려진 시장이며 우리 일본 어린이들은 그것들의 열렬한 소비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100 년 동안 '서양을 만회하자'가 우리의 국민적 목표였고 일반적인 표어로 여겨졌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일본은 나름대로 많은 동화작가 내지는 그림작가를 배출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만 해도 이와사키 치히로, 하야시 아키코, 야시마 타로, 카나모리 사이지, 안노 미쓰마사 등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동양에서는 아마도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 그림작가의 박물관도 있습니다. 바로 이곳, '치히로 박물관'이 그곳입니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일본의 대표적인 삽화가이자 그림작가 입니다. 1917년에 태어나 1974년 간암으로 사망한 치히로는 그녀가 죽은 지 3년 뒤인 1977년에 박물관이 설립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나 봅니다. 아무렴요, "아이가 내 손가락을 부여 잡을 때마다 손을 조여 오는 그 힘을 사랑한다. 그토록 부드럽고 오동통한 손이 그렇게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다니. 그저 바라보며 스케치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런 내적인 움직임들을 그려낼 수 없다"며 스케치 없이 붓을 드는 작가였는걸요.
그녀는 서양의 수채화에 중국의 전통기법을 가미한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사이트는 그닥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치히로 박물관에 대한 안내와 작가소개, 그리고 숍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이 다예요. 그렇지만, 그녀의 일생을 담은 사진 페이지에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따듯해져 옴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작품 또한 그렇고요.
'미피'를 탄생시킨 딕 브루너 (http://www.nijntje.nl/).
그 밖의 이미 국내에서 번역서로 출판된 동화그림책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는 독일의 동화 작가 미하엘 엔데, 그림책 작가 베르너 홀츠바르트, 오스트리아 출신 안토니 보라틴스키, 스웨덴의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네덜란드 태생 딕 브루너 등이 있습니다.
미피는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서 만난 토끼가 모델이라고 하는데요, 그 외에도 브루너가 탄생시킨 캐릭터는 뽀삐, 보리스, 스피너 존 등이 있다고 하네요. 브루너의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팬시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데요. 아마 그의 그림책 독자의 연령층이 1~7세이기 때문에 최대한 사물을 단순화시킨 탓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그의 그림은 밝고 선명한 색과 손으로 직접 그려 원화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뚜렷한 선 때문에 그닥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사이트는 아주 다양한 메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card는 물론, DIY 동화 캐릭터 팬시 '멀티 미디어'까지 등장하고요, 온라인 게임, 그리고 아주 까무러칠 만한 딕 부르너 송까지 들을 수가 있더군요
수묵채색화의 쓸쓸함을 담아내는 한국 작가 김동성 (http://kds.psshee.com/)
한국 그림책의 역사는 90년대에 들어서야 눈에 보이는 발전이 있었어요. 이 시기에는 출판부터 표지, 삽화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문화를 담으려는 그림책들이 가장 눈에 띄었고, 소중한 우리의 것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주요한 경향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을 강요하는 그림책들은 다소 '한국적'이라는 단어에 얽매이거나 또는 작가의 포지션에 따라 독자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야말로 조우 되지 못한 그저 학습일 뿐이죠. 그림책은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점수 매겨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국 어린이책 작가는 동화작가 정채봉 , 그림작가 권윤덕, 류재수, 임길택, 김동성 등이 있습니다.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이 사이트는 그림작가 김동성이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고요. 그 이유 때문에 게시판에는 그림책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던져놓은 질문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작가 김동성의 그림은 유독 쓸쓸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수묵 채색화의 동양적인 화풍을 주로 쓴다고 하네요.
김동성의 사이트를 보면서 얻는 수확이라면 그의 그림책을 사이트를 통해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이예요. 그리고, 메뉴 'etc'의 그림책 관련 스크랩에선 그림책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마지막 팁으로 소개할 메뉴는 재즈를 좋아하는 작가의 앨범 리뷰 코너. 개인 홈페이지이기에 작가 개인의 취향을 맘껏 엿볼 수 있기도 하네요.
"어린이는 잠재된 과거의 경험과 내적 요구 및 생활경험 등을 주위의 사물과 함께 조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창조하고 상상한다" 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것은 비단 어린이한테만 국한된 말이 아닐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타인에게서 어떤 것을 체험할 때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혹은 자신에게는 없는 다른 사람의 그 무엇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다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아주 잘 찾아낼 뿐입니다. 따라서, 그림책에서 그림이란 아이, 어른의 구별 없이 자신을 거스르지 않고 가슴 깊이 그것을 받아들일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http://www.cultizen.co.kr/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