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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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바쁜 4월이다. 안 그래도 책 읽을 시간이 없는데 하필 고른게 고전문학이라 속도가 매우 더디다. 고전은 어떻게 해야 빨리 읽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디스토피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1903년생인 오웰 선생은 장차 인간 사회가 국가의 독재로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수십 년 전부터 꿰뚫어본 문학계의 현인이다.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동받은 건 좋은데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이렇게 리뷰 쓰기 곤란한 책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을 기준으로 고전문학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이 책처럼 유명한 문학들은 사실 리뷰 쓰기도 민망한데, 뭐 어차피 볼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하하하.


수십 년 전, 혁명 이후 런던은 지독한 사회주의로 바뀌었고 시민들의 웃음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혁명군 지도자 ‘빅 브라더‘는 혁명전에 일어난 모든 과거를 조작하고 거짓 정보들로 사람들을 세뇌교육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똥으로 메주를 쑨다는 당의 말을 그대로 믿게 되었다. 이제는 도시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의 감시 때문에 말도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또한 텔레스크린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뉴스에 열광하지 않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표정만 지어도 빨갱이가 된다. 겉으로는 남들과 똑같이 행하지만 주인공은 이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에서 과거의 모든 기록들을 날조하는 일을 하는 윈스턴은 거짓이 사실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표현 없이 한탄해한다. 그리고 당은 사전에 있는 단어를 매일매일 폐기하여 인간의 사고의 폭을 좁혀가고 있다. 그걸 왜 시민들도 찬성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렇게 해야 의견들이 쉽게 일치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본인들이 바보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근데 이 책을 읽어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빅 브라더는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차단하면서 거짓으로 자유를 박탈시켰다. 이러한 당의 독재에 불만을 가진 반 혁명가 골드스타인이 외치는 것은 자유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국가 간에 전쟁은 지금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현실을 계속 왜곡시킴으로써 자신들이 계속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사회가 원하는 특수한 심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좋은 게 전쟁이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이라는 슬로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이 원하는 이상은 모두가 같은 정신, 같은 행동, 같은 슬로건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과 정반대로 현실은 썩어가고 있다. 인간이 누릴 당연한 것들이 다 사라져가고 있는데 아무도 불만을 갖거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생각은커녕 다들 잘만 적응해서 살아간다. 물품 배급은 줄어드는데 경제가 200% 성장했다고 뉴스가 나오면 그걸 그대로 믿는 이 거지 같은 현실을 당연시하게 여기고, 심지어 2세들은 자기 부모들조차 당에 신고할 만큼 인간병기 비슷하게 자라난다. 이게 나라냐?


2부에서는 윈스턴이 자신과 뜻이 같은 줄리아를 만나고서 사랑에 빠진다. 남녀 간에 사적 만남을 금지하는 감시망을 피해 두 사람은 열심히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 태어난 여자의 생각과 사고는, 과거를 아는 남자와 너무도 달랐다. 진실이 무엇이든 결과가 같다면 날조든 뭐든 상관없다는 줄리아의 태도에 말문이 막혀버린 윈스턴. 그게 왜 잘못된 건지 모르는 줄리아의 생각을 바로잡아주는 윈스턴의 대사에서 작가의 심정을 알 수 있다. 모든 기록들이 거짓으로 변조되어 역사가 정지되어도, 전혀 증명할 길이 없어도 끝까지 진실을 기억하는 것. 바뀐 역사가 맞다고 모두가 우긴대도 그 말에 맞서는 것. 진짜 인간이라면 그런 정신과 자세와 용기를 탑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반대로 줄리아처럼 과거를 모르고 자라난 세대들은 진실된 역사도 올바로 믿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부는 윈스턴이 감옥에 끌려가 고문당하는 내용이다. 그들에게 혁명은 독재 정권을 위한 수단이며, 최종 목적은 순수한 권력이었다. 그래서 윈스턴을 절대 죽이지 않고 빅 브라더를 따르도록 정신 개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 또한 흥미롭다. 책에서는 ‘이중사고‘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당이 A가 맞다고 했다가 B가 맞는다고 정정하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대로 믿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멍청이처럼 무조건 네 말이 맞아, 가 아니라 모든 논리와 증거에 의해서 맞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가령 2+2는 5라고 했다가 3이라고 바꾸면, 이전에 5라고 들었던 건 싹 리셋하고 새로운 기억장치가 돌아가는, 바로 이것이 이중사고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인간성을 지닌 최후의 1인 윈스턴은 죽음 앞에서도 거짓은 진실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바꾸고 과거를 지배한다 해도 개인의 정신과 기억은 지배하지 못한다고 대꾸한다. 이 정도면 뭐 독립투사 아닌가. 실존 인물인 줄 알았네.


작가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은 희망을 주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내 자신이 부재중인 상태가 되면 절망뿐인 미래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다움, 진실한 인간성을 갖추어 미래를 설계해나가야 한다. 21세기에도 빅 브라더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위협받고 있다. 최근에 중국 기사 하나를 읽었는데, 2020년부터 중국이 국민에게 사회 신용시스템을 적용한다고 한다. 금융거래 실적과 세금 납부 등의 기준으로 전 국민에게 레벨을 부여하는데 이 레벨이 떨어질수록 불이익이 제공될 거라고 한다. 정부를 욕하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하락되는 이 제도를 두고 ‘중국판 빅 브라더‘라며 말이 많다. 오웰 선생이 기가 막히게 미래를 내다보셨더군. 올해는 고전문학 좀 많이 읽어보도록 해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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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9-04-21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가 의무가 되어버리지 않게 된 시점부터 고전의 매력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시를 조각조각 잘라서 해석하지 않게 된 이후로 시의 맛을 제대로 음이하게 된 것처럼요.
고전을 읽을 때마다 자주 놀라곤 합니다. 현재 상황에 접목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묘사나 분석,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을 보면요. 저는 Canon이 떠오릅니다. 달라지는 것 같아도 어떤 기본적인 바탕 위에 조금씩 변주되는 것이 아닐까 하구요.
저도 올해에는 틈틈히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고전읽기 온라인 독서모임이라도 해야 할라나요? 워낙 느려터진 독서 속도에 추진력이라도 들러붙게ㅎㅎ

물감 2019-04-22 10:35   좋아요 0 | URL
고전은 읽게되는 시점이 따로 있는것 같아요. 의무로 읽었다면 오히려 거부감 들었을지도...ㅎㅎ 캐논곡에 대한 설명도 신선하네요! 역시 시를 쓰시는 분이라 남다르심^^ 이 책을 기준으로 고전문학을 모으는중이에요. 저랑 같이 독서해요ㅎㅎ

나비종 2019-04-22 13:02   좋아요 1 | URL
그럴까요? 읽으실 책 정하시면 말씀해주세요. 같이 읽어요. ㅎㅎ
나름 온라인 고전읽기 독서모임, 결성되는 건가요? 모임 이름은. .초창기 멤버, 나비종.물감의 합체. . ˝나물˝ㅋㅋㅋㅋ

물감 2019-04-22 13:17   좋아요 1 | URL
나물ㅋㅋㅋㅋ작명센스 굿입니다. 일단 지금 독서중인 서평단 책이 있어서 그거 끝나고 말씀드릴게요ㅎㅎ감사해영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