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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 에볼루션 - Since 1989 듀스에서 도끼까지
김봉현 지음, SUIKO 그림 / 윌북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누군가를 이해하기에 앞서 그를 알아내는 기본적인 방법은 가장 객관적인 데이터를 먼저 수집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힙합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힙합을 즐겨듣지도, 유행하는 티비 프로그램에 집중을 해본적 또한 없다. 그런 내가 <한국 힙합 에볼루션>이라는 책에 관심을 가진다니 웃긴 일이지만 내겐 꽤나 중요한 과정이다. 이 책을 통해 힙합, 래퍼라는 그들을 알게되는 발판이 만들어지기를 소망했다. 내게 소중한 누군가와 더 가까워질 기회를 바라며 말이다.
힙.알.못인 내가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단어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전문성도 지니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자를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내 무지로 인한 단어들과의 불화가 이 책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 놀라운 점은 저자가 딱딱한 말투를 가지고 있지만 숨어있는 재치와 센스를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성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책이라면 구성 또한 누가 읽어도 읽기 편해야한다. <힙합 역사 에볼루션>은 제목이 역사인 만큼 연도별로 정리되어있다. 이는 진짜 힙합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순차적 시간의 흐름을 타게된다. 그 연도 속에서 매년 한 아티스트를 우리는 만나게 된다. 1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꽤나 긴 시간이라 연도별로 뽑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는 결국 해냈다. 또한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반박이라는 코너까지 존재한다. 노래를 모를 사람들을 위해 재미있게 노래에 대한 설명과 노래가 중요한 이유를 표시한 칸도 있다. 책이어서 그렇지, 한 프로그램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만큼 알찬 구성이다.
긴 줄글로만 설명되어있다면 책을 보다 검색하고, 책을 읽다 또 다시 검색하다가 결국엔 책을 끝까지 끝마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매우 친절하다. 정확한 사진들보단 그림, 일러스트에 가깝지만 그림들이 삽입되어있고 표, 그래프 어느것도 가리지 않고 깔끔히 정리되어있다. 말 그대로 이해가 쏙!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만큼 모르는 인물들이었다.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공감이 되지 않는 경우와 모르는 사람이기에 집중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 때는 차라리 책이 말하고 있는 노래를 들어보는 것을 선택했다.(책을 읽기 전에 목차를 보고 따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들으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노래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일까 ? 음악과 그를 설명한 책이 함께하니 책속의 인물들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이후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올 때는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정확하게 인식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어설프고 부족했던 우리도, 우리니까.'
우리나라의 힙합 역사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힙합에 대해 무지했던 시기가 길다. 이렇게 힙합 열풍이 불고 열광하는 시기가 온 게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기를 창피하다고 부족하다고 모른체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인식하자는 표현에서 저자가 힙합을 바라보는 시선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초반부쯤에 나오는 문구지만 책을 읽은 후에도 저 문장이 계속 생각나서 잊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 시선을 읽고나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책과 끝까지 함께할 수 있기도 했다.
지금 힙합을 즐기는 어린 나이의 청소년들은 과거의 래퍼들을 창피해하거나, 옛날 사람? 철 지난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을 자주 보게된다. 처음에는 나같은 초보자가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그들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이들도 읽는다면 조금은 인식이 변화할 기회를 줄 좋은 책이라는 결론이다. 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노력한 사람들을 무시할 권리가 없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닌 현재의 래퍼들 또한 이 곳에 가득하다.
나의 소중한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 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됐다.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직접적인 연결이 생긴게 아님에도 항상 존재하던 거리감이 한뼘 가까워졌다. 가까이서 보니 그들의 허세는 열정이고 그리 부르짖는 스웩은 표현방식이었다. 기본적인 힙합에 대한 이해가 생겼으니 이젠 정말 즐길 시간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