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도 있고, 못 만날 사람이 있지만” <여행생활자, 유성용>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사두고선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을 들쳐보게 된다. 어떤 때는 ‘이 책을 왜 샀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 책을 사야 하는 이유가 꼭 있는 편이다.

유성용의 『여행생활자』(갤리온, 2007년)를 사게 된 것은 저자 서문에 쓴 앞의 문장 때문이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고 지금까지 배우고 강조받아 왔고, 지금도 여전히 약속은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지킨 약속 못지않게 지키지 못한 약속도 많고,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약속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도 ‘약속은 지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스스로 마음의 빚을 지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지나 않았나.
“세상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도 있다”는 그 말에 적어도 이 저자의 여행기는 과장과 거짓을 섞어서 늘어놓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못 만날 사람도 있다”는 구절에서도 위안을 얻는다. 만나야 한다고, 만날 것이라고 굳게 믿어온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 얼마인가. 어쩌면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믿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스스로 그러한 착각을 만든 것은 아닌가. ‘못 만날 사람도 있다’는 심리적인 여분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결국 세상에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드물고, 여행을 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내가 다 보지 못한 것, 또 보지 못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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