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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평점 :
1.
오늘 소개드릴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입니다. 얼마간 도킨스가 저술했던 책들과는 제목부터 궤가 다른 느낌이에요. 실제로 이 책의 포지션도 그렇습니다. 서문에서 본인이 밝히고 있다시피, 여태 본인이 저술했던 책들의 논리를 증명할 실제 증거들을 담은 책들이에요. 그렇다면 왜 이런 제목이 붙었나. 첫째, 원래 붙이려고 했던 제목인 <그저 하나의 이론 (Only a Theory)>은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에. 둘째, 더 완벽한 제목이기 때문에...
2.
그러니까 <만들어진 신>을 비롯해 <이기적 유전자>에서 시종 파격적이고, 그만큼 반발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결코 반박은 할 수 없을 단단한 얘기들을 해 온 저자잖아요. 이번엔 소매를 걷어붙이고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 자체'를 보여주겠다고 하는 중심을 잡은 책이니 얼마나 밀도가 높겠습니까….
책은 총 13장의 장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니까 도킨스는 애초에 형식으로 뭔가 돌출점을 만든다는 식의 불필요한 잡기는 전혀 쓰지 않아요. 이미 내용 자체가 시종 파괴력이 대단하므로. 우선 1장에 대한 애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은데 도킨스가 처음에 사용하려고 했던 제목인 '그저 하나의 이론'은 물음표가 덧붙여서 1장의 소제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론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실은 무엇인가. 다소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에서 진정 장르를 필요에 따라서 횡행하는 저자의 자유분방함은 이미 많은 독자들이 혀를 내두르기도 하고, 열광적으로 좋아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2장의 제목은 개, 소, 그리고 양배추입니다. 그렇습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요. 도킨스는 13개의 장을 통해 쥐, 곤충, 양배추, 개, 원숭이 그리고 바다에서 뭍으로, 세포에서 효소와 새로운 종으로, 날개, 망막에서 끝내 생명의 장엄함으로 글을 마치고 있습니다.
3.
“생물의 몸에도 온통 생물의 역사가 쓰여 있다. 생물의 몸에는 로마의 길, 성벽, 비석, 그릇에 해당하는 생물학적 유물들이 빽빽한 털처럼 덮여 있다.심지어 생물의 DNA에는 고대의 비문과 같은 것이 조각되어 있어서, 학자들에 의해 해독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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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털이라고? 그렇다, 말 그대로 그렇다.우리가 겁에 질렸거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고 그 비길 데 없는 솜씨에 경악할 때, 우리는 소름이 돋는다. 왜? 우리 선조들은 이상적인 포유류처럼 온몸에 털이 나 있었고… -p451“
마법처럼 흡입되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니까 자연과학을 설명하는 지긋한 교수님들은 왜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걸까요? DNA와 RNA의 구조적인 측면에 관한 지루한 설명들, 분류계통수와 영장류와 조류를 단계통군으로 묶어 털이라는 고유형질을 갖는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전공서적들.....리처드 도킨스의 저술들은 여전히 그러한 전공서들을 부끄럽게 할 유려한 문장을 선보입니다. 영장류의 털이라는 형질을 저렇게 표현한 겁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은 사실 굳이 추천하지 않고도 몇 페이지만 넘겨보면 계속 넘기게 되어요. 당장 소재부터가 자극적인데 표현조차 유려하거든요. 논리는 꼼꼼해서 반박하려고 소매를 걷어붙여도 얼굴만 붉어올 뿐이지요. 그뿐인가요. 책은 유머까지 가집니다. 이를 테면 서문부터 책은 이렇게 얘기해요.
"이 책은 진화가 사실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에 관한 책이다. 종교에 반대하려는 책이 아니다. 그 일은 내가 다른 곳에서 이미 했다."
4.
그러니까 대중들은 지금 시점에서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읽을 것이냐.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가 가장 완벽한 대안이 될 겁니다. 대안이라기보다는 확실히 더 나은 선택이 될 테지요. 특히, <만들어진 신>을 충격 속에서 읽었던 기존의 독자이고, 그 충격이 시종 머리 속을 달콤하게 맴돌았다면, 이번 책 역시 독자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느끼게 해 줄 멋진 책이에요. 굉장히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하는 유려한 서술들과 거침 없는 진행, 군더더기 없는 논지전개가 일품인 클래식으로써 많은 분들께 교양서로 추천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