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버전으로 감상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1. 인문학 열풍

  



고전 읽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일상에 치이는 우리 시민들에게 고전을 직접 읽고 소화할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지만 앎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똑똑한 사람들과 출판사는 경쟁적으로 고전을 잘 정리하고 각색해서 시중에 여럿 괜찮은 입문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어느 책을 골라도 쉽게 잘 설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제대로 된 입문서는 독자로 하여금 직접 원전을 찾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잘 소화하고 대신 씹어주는 해설서들은 읽기엔 편할지 몰라도, 스스로 노력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턱을 낮추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떠먹여 주는 것엔 반대합니다. 인문학 열풍 이면에 있는 손쉽게 무언가를 획득하려는 태도, 지식의 이해와 체화가 아니라 잘 정리된 지식의 단편적 암기로 빠지려는 경향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가이드북의 도움을 받더라도 여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소화하려는 태도를 갖고 싶습니다.


 

(▲ 개인적으로 한길사의 인문고전 시리즈를 선호합니다. 모아두면 뿌듯해서요)


2. 인간의 고유 능력

 



학부생 4학년 시절, 문헌정보학과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주요 업무는 강의실 청소였는데, 제가 청소하기로 배정받은 시간을 쓰시는 교수님은 항상 강의를 10, 15분 늦게 마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졸지에 청강생이 되어 문헌정보학10분 토막 지식을 듣는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보를 다루는 그 학과의 특성답게 요새 각광을 받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해 교수님이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보의 분류는 크게 3가지가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숫자는 Data, 맥락이 부여되면 Information,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면 Knowledge. 여기서 4차 산업혁명이란 인공지능이 인간에게서 Data에 투여되는 단순 노동을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정치학밖에 모르고 살던 저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설명이었습니다. 이 설명을 거꾸로 뒤집으면 인공지능이 침범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지적능력은 맥락을 부여하는 능력의미를 추구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강연을 듣고 고전은 사람맥락의미사이의 거친 호흡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인간은 맥락부여와 의미추구라는 인간만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시대마다 또 장소마다 새로 읽힘으로써, 읽는 이의 현시점, 현 상태, 현재 원하는 바, 읽는 이가 살아왔으며 또 살아갈 역사와 사회의 특정 한 국면이 우연의 도움을 받아 맞부딪힐 때, 독특한 어떤 의미가 창출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한 사람은 같은 책을 두 번 읽을 수 없으며, 같은 책도 다른 사람은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고, 사람마다 부여하는 맥락이나 창출해내는 의미, 고유한 개성이 부딪히며 나는 무늬()’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고유한 지문처럼요. 인간의 고유성과 개성을 동시에 확인하는 행위, 그리고 그것을 고양하기 위한 지적 노력이 고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요?





3. 논리와 가치


 


▲좌 : 장현근. 2011.맹자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한길사

▲우: 동양고전연구회. 2016.맹자. 민음


 

2014년 초에 맹자를 읽었습니다. KBS의 사극 정도전에서 고려의 신진사대부이던 정도전이 맹자의 역성혁명’ 부분을 읽고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겠다는 결심을 하는 부분에서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입니다정치학도로서 조선왕조를 주도적으로 설계했던 정도전의 삶과 혁명'이라는 키워드는 매력적이었습니다그래서 저는 그 당시 맹자의 수많은 대목 중 정치사상 부분을 특히 유심히 여기며 읽었습니다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는가에만 초점을 맞췄던 게지요그러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1년 반 만에 다시 읽은 맹자는 저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었습니다그리고 저는 유독 이 한 구절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 한 어린아이가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갑자기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선 누구나 겁을 먹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건 그 아이의 부모와 사귀려들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에게서 칭찬을 들으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비난의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공손추 상·6 (장현근. 2011.맹자 :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 한길사. p.120)

 




어린아이 하나가 우물에 빠진 것을 목격해도 겁을 먹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사람인데, 우물보다 넓은 바다에 하나보다 많은 304명의 억울한 목숨이 바다에 빠진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는 조롱과 비난과 편 가르기와 소모적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방관했으며, 심지어 동조했습니다. 이 당시 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격의 파탄공감의 부재에 큰 절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뒤에 다시 읽은 맹자의 글이 정확한 인과관계와 사실관계에 입각한 논리가 정연한 글이라기보다, 당위에 호소하며 가치를 추구하는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마디로 문장의 과학이 아니라 공감의 철학이었던 이지요. 다시 읽은 맹자는 제가 무의식적으로 듣고 싶었던 우리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었습니다. 저라는 사람맹자라는 책에서 세월호의 맥락을 부여해, 잠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를 다시 얻어내고자 그렇게 발버둥을 쳤던 것이지요.


 


 

4. 기존의 사실과 새로운 의미

 



한 학기 동안 네이버 열린 연단의 고전강의를 들었습니다. 이승환 교수는 <동양의 고전 : 동양 고전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서언> 강연에서 고전 독서의 5단계를 제시했습니다. 앞의 4단계는 사실 확인을 철저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고, 마지막 단계는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나만의 새로운 해석을 보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과정을 조금 삐딱하게 봤습니다. 저런 복잡다단한 과정이 일반인들의 지식 접근을 차단하는 높은 문턱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턱을 낮추는 과정과 지식을 대하는 자세는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접근성을 좋게 만드는 과정과 별개로, 지식을 추구하는 업을 가졌다면 소명의식을 가지고 문구 하나하나, 문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뜯어 살피는 데 영혼을 바쳐야 한다고 막스 베버 선생의 책,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읽었습니다.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어떤 일을 하십시오.



-(막스 베. 전성우 역. 2013. 직업으로서의 학문.나남. pp.33~34)





그리고 좌절했습니다. 엄격한 형식요건을 갖춰야 하기에, 사실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몇 없겠구나. 두려움과 막막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래서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가짜 뉴스와 권력을 등에 업은 방송신문사가 최소한의 객관성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아 생기는 문제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적어도 학문은 그렇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석사과정을 막 밟기 시작한 제가 고전을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텍스트 하나하나의 의미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을 정신무장과 나의 고집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빼먹지 않는 양심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동시에 강연에서 훈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낳은 사생아였고, 고증학이 청 왕조의 폐쇄적 검열에 따른 불가피한 조처였다는 내용이 특히 귀에 잘 들어왔습니다. 동서고금의 부패한 집권세력이 객관성을 빙자해 새롭고 비판적인 의견을 탄압하는데 오용했던 역사적 상흔을 배운 탓인지, 저는 너무 사실관계에만 치중하려는 풍토가 힘없는 자들에게 불리한 여건을 만들 거라는 다소 좋지 못한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판결문의 형식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엄격함이 헌법 정신을 수호하듯, 형식의 굳건함은 가치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5. 번역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야만 달성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지배 계급은 공산주의 혁명이 두려워 전율할지도 모른다.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진우 역. 2015.공산당선언. 책세상. pp.59-60)

 




학부 2학년 때, 묘한 호기심에 공산당 선언을 읽어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 책이 뭐길래 전 세계의 절반이 붉게 물들고, 청년들의 가슴이 식지 않는 정열로 타올랐던 것일까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서점에 가 이진우 씨가 번역한 문고판 공산당 선언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불같은 성격으로는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는 저였기에, 당연히 이 책을 읽으면 가슴이 두근거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독서는 지루함이 멈추지 않았고, 실망은 곱절로 돌아왔습니다



명색이 선언문인데 글에서는 전혀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떤 기백조차 담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뒤흔들 유령을 보낼 두 철학자의 혼백은 전혀 담기지 않았습니다. 특히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라니요. 냉정한 머리로만 한 딱딱한 번역은 내용은 담고 있으나 느낌은 전혀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글을 읽고 누가 혁명에 가담하겠습니까? 지루하고 난삽한 번역 탓에, 저는 처음 접한 맑스의 저작에 굉장한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학부 4학년의 필자는 서점가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삽화와 새로 번역된 공산당 선언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맨 마지막 장을 펼치고 앞에 언급한 해당 구절을 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소리 내어 읽어봤습니다. 그래 이 맛이지. 이래야 선언문답지. 원작이 아닌 번역의 문제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스러운 일로 여긴다. 그래서 자신들의 목적이 기존의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힌다. 지배 계급들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하라. 이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부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일러스트 공산당 선언 · 공산주의 원리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종대 역. 2015.공산당선언. 미메시스. p.93)

 





잘못된 번역이 놓치는 것은 내용뿐만이 아닙니다. 뉘앙스나 맥락이나 감정, 정신, 기백과 같은 부분도 함께 사라집니다. 책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탄탄한 논리 구조와 내용의 알참도 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과 호소력 짙은 문체도 한몫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소실된 내용을 각주를 덧붙여 복원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저는 이 책이 그 시대 그 사회에 주었던 느낌을 잘 살려내는 과정도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 시대 사람들이 왜 이 책에 매혹되었고, 오늘날의 우리는 이것을 다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차이점이 명확해지면서, 거기서 엄청난 가능성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 보면 현재의 시점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으로 그 시대의 단점만 들추거나 덮어놓고 무조건 숭상하는 오류가 좀 줄어들진 않을까요?


 

 

6. 주체성의 실종

 


앞서 저는 인간 고유의 능력은 그 자체로는 죽어있는 단순한 숫자나 조각 사실들을 외우는 능력이 아닌, 맥락을 부여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고유의 능력이며, 고전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활성화된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스스로 꾸역꾸역 거친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트이고 사고력이 향상되고 책의 기술적인 논리와 테크닉을 파악하고, 또 나만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면서 나만의 무늬, 주체성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고전 교육은 주입식입니다. 남이 간결하게 정리한 요약본을 그냥 암기하는 방식이지요. 이렇게 해서는 어떠한 인간의 지적능력도 자극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독서는 스스로 괴롭게 고민하며 읽되, 다채로운 시각은 즐겁게 함께 공유하는 기쁨이 있길 바랍니다.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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