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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평생을 엄혹한 자연과 함께 살아온 노인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220쪽)

이 책에서 한 문장을 고르라면 이 문장을 고르겠다. 자연과 투쟁하며 산 삶의 흔적이 어찌 평화로울 수 있을까? 투쟁의 역사가 얼굴에, 표정에, 말씨에, 행동에 굴곡으로 새겨있을 것 같은데 평화롭다니.

수십년전, 알래스카를 여행하고 오신 이모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얼음 바다에, 풀도 겨우 자라는 척박한 곳으로 상상하고 있던 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 호시노 미치오는 어느 날 내셔널 지오그라픽 소사이어티에서 출간된 알래스카 마을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1973년 알래스카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머문다. 그의 나이 스물을 갓 넘었을 때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알래스카대학 야생동물 관리학부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동물 사진뿐 아니라 알래스카의 자연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 작품을 발표하고 사진전을 열었다. 1996년, 알래스카를 마주보는 러시아 연방 추코트 반도를 거쳐 캄차카 반도로 떠났고 쿠릴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자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아 급사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찌보면 미완의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사진도 훌륭하지만 글은 마음 속 더 깊은 곳까지 스미고 들어온다. 어떤 의욕이나 욕심이 느껴지지 않는 참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글. 알래스카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 아닌가. 인간이 지어놓은 결과물이 아닌,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그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고 있는 알래스카 사람들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의 글에서 그런 무채색의 물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알래스카에는 큰까마귀 (raven)가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큰까마귀 신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큰까마귀 모양의 토템이 여기 저기 남아 있고, 대부분 나무에 새겨져 있는 이것들이 썩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캐나다 박물관이나 대학에서는 이것들을 자국으로 이전하여 제대로 보존하려고 하는데, 알래스카 사람들은 그것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썩어가게 두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 여긴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평생을 엄혹한 자연과 함께 살아오면서도 평화로운 얼굴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큰까마귀 신화에 의하면 큰까마귀가 처음 창조한 것이 곰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아주 가까이에서 찍은 불곰, 흑곰, 그리즐리곰의 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다. 물로 녹아들어가 얼음과 물의 경계가 모호한 강의 모습, 까만 밤하늘에 펼쳐진 오로라, 흑고래가 숨쉬는 소리를 듣는 기분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누가 잡아끄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빙하와 크레바스, 빙하 사이를 카약을 타고 이동하며 그곳의 동물과 자연을 관찰하여 카메라에 담는 저자의 머리 속에 다른 잡념이란 없었을 것이다. 빙하의 대평원에서 큰까마귀도, 곰도, 인간도, 사진에서 잘 찾아야 보이는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영적인 힘을 믿고, 자연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며 살고 있는 알래스카 부족들이 언제까지 이 지구상에 그 믿음이 사라지지 않게 존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자네에게 인디언의 말을 하나 가르쳐 주지...."
"네....."

"초우친."

"그건 무슨 뜻인가요?"
"사랑한다는 말이네."

(208쪽, 96세가 된 아사바스칸족 인디언 장로 피터 존과 저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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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12-04-1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과 글을 보고 있으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생겨요.
마치 제가 저자가 서있는 그 자리에 선 느낌도 들고요.
이 책은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다음 주문 때는 장바구니로 갈 듯해요. ^^

hnine 2012-04-15 00:35   좋아요 0 | URL
예, 그거요, '경외심'.
그냥 감탄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두려운 마음이 따라오지요.
저에게는 이 책이 저자의 첫작품인데 이전 작품들도 찾아보려고해요. 어떻게 마지막 작품집을 제일 먼저 읽게 된 셈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4-1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노 씨의 알래스카 사진 중에 북극곰(흰곰)을 찍은 것이 있나요? 동물다큐를 보면 알래스카에선 불곰(갈색)만 나오거든요. 알고 싶어요.

hnine 2012-04-15 21:17   좋아요 0 | URL
예! 이 책엔 나와요. 코카콜라 선전에 나온 그 흰곰이요 ^^

노이에자이트 2012-04-16 16:12   좋아요 0 | URL
오...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