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 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이 책은 <숨어사는 외톨박이>라는 책에 대한 글로 시작한다. 저자가 소장하고 있는 3,000권의 책 중에서 제일 소중한 한권으로 꼽겠다는 이 책은, '뿌리깊은 나무'라는 출판사에서 펴냈고 1991년에 절판된 책이다. 절판된지 8년만에 독자의 끊임없는 요청에 의해 다시 출간된 바 있으나 출판사 자체가 문을 닫으면서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일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다는 이 책.
아마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뭐 읽을만한 책이 없을까 하여 내가 수시로 탐색하던 아버지의 책장에서 발견한 책, 바로 저자가 말한 <숨어하는 외톨박이>였다.
'숨어사는 외톨박이? 무슨 책이지? 내가 읽어도 되는 책인가?'
궁금해서 꺼내어 읽어보았던 기억. 내시, 백정, 각설이꾼, 무당, 장돌뱅이, 기생, 머슴, 남사당 등, 그야말로 우리 문화의 한 자락을 담당하고 있지만 떳떳하게 내놓고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못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어 만들어진 책인데, 중학생이었던 내게 독특하긴 했지만 그닥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다 읽으신 듯 하여 야금야금, 결국 끝까지 다 읽었던 책이다.
독서광이라기 보다는 책 수집가라고 해야할 것 같은 저자는 책을 수집한지 25년째, 3,000권의 책을 모았다고 하니 그 동안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은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는 희귀본에서부터, 1,800쪽이나 된다는 책, 장정만 해도 거의 예술에 가깝다는 책, 이 오덕 선생과 권 정생 작가 사이에 오고간 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었다가 다 회수된 사연 등 (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나중에 따로 들어 알게 되었다 -->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1 ) , 책 수집을 하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가 책장을 술술 넘어가게 한다.
<숨어사는 외톨박이>부터 그렇더니 별로 책을 골고루 읽지 않는 나에게도 익숙한 책들이 꽤 여럿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에서였는지 만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저자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서일까? <Word power made easy> 라는 책도 소개한다. 이건 영어 단어 공부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 영어 글자 속에 담긴 철학서라면서 직접 그 일부를 실어 놓기도 했다. 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한 문장 자체가 문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명문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고 하기엔 문학적인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이 내게 없긴 하지만, 나 역시 지금도 그 예문 중의 일부를 가끔 인용할 때가 있다.
작년이었나, 사진집 <윤미네 집>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좋게 평가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것이 원래 1990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많은 사람들의 요청 끝에 20년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 지난 해였던 것이다.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의 평범해보이는 사진첩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 속에 담겨있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이 흑백 사진 속에서도 살아서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절판된 책을 구하는 방법은 헌책방을 돌아다니거나 인터넷 중고서점을 계속 검색하는 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고서점과 헌책방은 다르다는 것도 설명해준다. 우리 나라 책인 경우 1959년 이전에 나온 책을 고서(古書)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언젠가 헌책방에 가서 운좋게도 찾고 있던 귀한 책들을 한무더기 구입해서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후배가 하는 말, "또 누가 한분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라고 했다고. 그러니까 책을 수집하고 있던 사람이 세상을 뜨게 되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이 가는 경로가 그렇다는 것이다.
제목 <오래된 새 책>이란, 오래되고 구할 수 없던 책이 다시 출간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서, 저자는 오래되고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언젠가 모두 '오래된 새 책'으로 다시 태어나길 소망한다고 썼다.
다음은 <숨어사는 외톨박이>중 백정이 소를 도살하면서 소의 명복을 빌기 위해 스님을 불러다가 외었다는 염불인데, 사슴을 사냥한 인디언이 죽임을 당한 사슴에게 남겼다는 글과 함께 깊은 감동을 준다. 광우병이니, 구제역이니 해서 근래에 우리가 죽여야했던 많은 가축들 생각때문일까.
'산천에 눈이 녹아 만산에 꽃이 피니,
풀 뜯던 우공 태자 극락에 가는구나
저리고 아픈 고역 속세 인간 위해 바쳐,
극락에 계신 천왕님 그대를 가상타 하리,
관세음보살 하감하소서, 나무아미타불'
* 내 인생의 단 한권을 뽑으라면, 혹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 한권을 뽑으라면, 내가 정하는 가장 진귀한 책을 말하라면...등등, 이런 식의 문구가 너무 자주 등장. 강조의 효과를 넘어서 조금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옥의 티.
내가 가지고 있는 <Word power made easy> 책에서, 저자가 본문에 예로 든 부분을 찾아보았다. egotist 라는 단어를 설명한 부분이다.
이 책을 읽다가 생각나서 찾아보긴 했는데 내가 저 Word power made easy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1991년 10월 30일에 구입했다고 되어 있다. 1992년 3월 7일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써놓은 날짜. 다 보는데 얼추 여섯 달이 걸린 것이다.
오랜 만에 먼지 떨어내고 잠시 추억에 잠겨...